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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길에 잠시 맡겨둔 행운

by 힐링작가 김영희

즐겨 찾는 산책길 클로버 밭에 야생 오리들도 나와서 뒤뚱뒤뚱 산책을 하고 있다. 요즘 날씨가 좋으니까 오리들도 물밖으로 나와 노는 모습을 자주 본다. 풀밭에서 먹을 것이라도 찾는 모양인지 주둥이를 연신 아래로 박았다가 쳐들곤 하는 녀석도 있다.


나는 산책길을 따라 걷다가 호숫가 근처 클로버꽃이 펼쳐진 곳에 이르면 발길을 멈춰서 클로버 밭을 살피곤 한다. 몇 년 전에는 클로버가 온 공원 가득 퍼져 있었는데 어느 해 혹한을 지나고 난 후로 두서너 해 동안 클로버가 보이지 않았었다.


풀밭에도 해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어 보면 전에 익숙하게 보던 풀들은 사라지고 낯선 풀들로 교체되어 있는 걸 볼 때가 있다.


잔디밭에 나는 잡초들도 해마다 바뀌는 걸 볼 때면 왜 올해는 전에 못보던 다른 종이 더 많을까 생각해 보게 한다. 한겨울 혹한에 얼어 죽거나 한여름 무더위에 말라죽거나 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또 집 앞뒤 잔디밭에 나는 잡초가 다른 것으로 교체된 걸 볼 때는 그 이유가 뭘까를 생각해 보게도 된다. 바람에 씨들이 날아와서 새로운 종류가 자리를 잡게 될 수도 있고 잔디 깎는 기계 같은 데 묻어와서 다른 씨들을 퍼뜨리는 게 아닐까 추측해 보기도 한다.


암튼 몇 해 안 보이던 클로버가 올해는 공원 여기저기에 넓게 자리를 잡고 하얀 꽃을 피우고 있어서 반가웠다. 산책길 걷다가 호숫가 앞에 멈춰서 클로버 밭을 유심히 보게 되는 것은 혹시 전에 네 잎 클로버를 찾았던 그 근처에 네 잎 클로버가 있지 않을까 싶어서 찾아보게 되는 것이다.



그제 산책을 하다가 호숫가 근처 클로버 밭에서 쪼그리고 앉아서 네 잎 클로버를 찾던 중 드디어 행운의 네 잎 클로버를 찾긴 했다. 그런데 잎이 작고 네 잎 중 한 잎이 약간 긴 게 모양새가 예쁘지 않아서 그 네 잎 클로버를 뜯지 않고 그대로 두고 일어섰다. 조금 더 자라면 모양도 좀 예뻐질 것 같은 마음도 들었다. 혹시 다음에 지나더라도 기억하려고 저 멀리 서있는 나무를 마음에 표시해 두었다.


오늘 한 번 보고 싶어졌다. 그제 분명히 큰 나무가 저 멀리 정면으로 보이는 장소라는 갈 마음에 찍어 두었었다. 쉽게 찾을 수 있으려니 생각했다. 오늘 그 자리에 가서 네 잎 클로버를 찾아보았다. 어쩐 일인지 찾을 수가 없다. 한참을 그 주변을 뒤져 보았으나 찾지 못하고 그냥 일어서야 했다


아쉬운 마음을 안고 일어서서 가던 길을 걸어가다가 미련이 남아선지 뒤돌아보아진다. 내 기억을 못 믿어서도 아니고 공연히 숨겨 놓았던 행운을 도둑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내일이고 모레고 다시 그 자리 지나갈 때 찾아보리라 맘먹었다. 행운의 상징인 네 잎 클로버를 잠시 풀밭에 그냥 놓아둔 게 어리석은 판단이었을까 하는 자책도 해보게 된다. 툴툴 털고 일어나 걷다가 고운 꽃무더기를 만났다. 인디언 국화, 루드비키아, 야생 해바라기, 내가 이름을 불러 주지 못하는 낯선 꽃들도 어울려 꽃춤을 춘다. 내 마음도 금새 꽃춤으로 일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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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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