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은 진정 지옥인가?

천국도 지옥도 결국 선택의 문제

by 오렌지샤벳



타인은 천국이 될 수 있을까?

사람 좋아하는 나는 어린 시절부터 유난히 사람을 따랐다.

궁금한 것도 많고 알고 싶은 것도 많았던 나는,

마늘을 다듬고, 양파를 까는 어른들 틈바구니에 껴,

어른들의 말을 주워듣는 것도 좋아했다.

그러나, 사람 곁을 맴도는 나는 늘 외로웠다.

영화 ‘연가시’ 속 연가시가 지배한 숙주는

물을 마셔도 마셔도 갈증을 느낀다.

어린 나는 사람에게 다치면서도

여전히 사람을 그리워하고 좋아했다.

갈증을 느끼는 숙주처럼...



어릴 적 장애가 있던 언니를 놀리는 남자아이들을 혼내준 적이 있었다.

내게는 당연한 일이었다.

다른 사람의 아픔을 놀림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명백한 잘못이었고, 나는 당당했다.

연탄집게를 들고나가 놀리지 말라고 소리쳤다.

남자아이들은 내 기세가 불편했는지,

쪼끄만 계집애에게 혼난 게 억울했는지,

동네 가운데 있는 큰 나무 앞으로 나오라고 했다.



잘못한 건 그 아이들이었으니까!

당당하게 나간 나는 남자아이 네 명에게

각목으로 흠씬 두들겨 맞았다.

하나라면 어떻게 해보겠는데, 넷이나 되니 감당하기 어려웠다.

겨우 초등학교 2학년, 3학년 때의 일이었다.



그때의 감정적, 신체적 충격이 컸는지,

아직도 선명히 기억이 난다.

잘못한 건 그 아이들인데 비겁하게 무리 지어 나온 것도,

각목을 구해와 때린 것도 잊을 수가 없었다.

얼마나 많이 맞았는지 며칠은 학교에 가지 못할 정도였다.

그때 정신이 오락가락 끙끙 앓으며 일기를 썼던 기억이 난다.

글자들이 눈앞을 둥둥 떠다니던 기억, 온몸이 쑤시던 기억!

내 기억 속 좌절은 거기서부터 시작이었던 것 같다.

외사랑도!



뭐가 옳은지 그른지 모호했다.

아빠도, 엄마도, 사람들도 모두 틀린 걸맞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잘못이라는 건 뭔지, 옳다는 게 뭔지 헷갈렸다.

힘들고 답답했던 나는 집 앞 절에서 구해온 불경을 읽었다.

불경을 읽으면 무언가 알게 될 것 같은 희망이 있었다.

당연히 어린 내가 모두 이해하기에는 어려운 것들이었다.

사람의 마음도, 왜 정당하지 못한 것이 당연히 이기는지도!

폭력 속에서, 외면 속에서 나는 몸보다 마음이 아팠다.



드라마 도깨비에서 김고은은 말한다.

“지옥이 꼭 지옥에만 있는 건 아니야!”

어쩌면 지옥보다,

인간들이 모여 사는 세상이 더 지옥일지 모르겠다.

욕심과 욕망에 사로잡힌 인간들이 사는 세상이 지옥이라

굳이 지옥이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

사람을 사랑하지만,

사람은 지독히 악하기도 하다.

선택에 따라 악마가 될 수도,

천사가 될 수도 있는 것이 사람이다.



고대 체로키 인디언 이야기 속 늑대 이야기는 실재한다.

두 마리 늑대는 실제로 우리 안에 살고 있다.

한 마리는 악을 먹고, 한 마리는 선을 먹는다.

악을 먹이기로 작정하면

악은 점점 자라나 우리를 먹어 치운다.

선을 먹이기로 마음먹으면,

선은 열심히 제 영역을 넓힌다.



인간은 선택에 따라 선해질 수도, 악해질 수도 있다.

여러 가지 상황과 이유는 항상 있겠지만,

모든 것은 선택의 문제다.

어느 늑대에게 먹이를 먹일지 결정하는 것은 결국 자신이다.

나는 그래서 여전히 인간을 사랑한다.

누구나 가슴속에 품고 있을 선한 늑대 한 마리!

선한 늑대가 이기고 있는 사람도,

저 뒤편, 깊은 곳 어디에선가 웅크리고 있는 이도 있을 것이다.

선한 늑대를 품고 있을 그 가능성에 나는 기대고 싶다.


여전히 악은 쉽고 선은 어렵다.

세상은 점점 더 선보다 악을 수용하는 쪽으로 변화하고 있다.

악이어도 괜찮다고, 손쉽게 살 수 있다고 꼬드기곤 한다.

그럴만한 이유를 찾기로 마음먹는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세상이다.

돈, 명예, 성공, 안락한 삶 그 모든 것을 위해

기꺼이 우리는 선을 버릴 수 있다.

그렇게 타인은 지옥이 된다.



경쟁에서 밀리고, 밟고 일어나야 하는 대상이 되고,

인간은 그렇게 다른 인간에게 지옥을 선사한다.

더 갖기 위해, 이기기 위해, 우위에 서기 위해

스스럼없이 악을 선택하기도 한다.



물론 선한 선택과 결정으로 성공과 명예를 얻고,

안락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도 많다.

그러나 선한 선택만으로 그것을 이루기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우리는 늘 무언가를 뺏어야만, 이겨야만 잘 살 수 있다고

암암리에 배워오진 않았나?

그렇게 배운 삶은 결국 타인을 지옥으로 만든다.


아귀처럼 먹어도 먹어도 배고픔을 느끼는 존재로

인간은 타인을 희생시킨다.

자신과 똑 닮은 쌍둥이 같은 인간을 이겨야만,

빼앗아야만 더 가질 수 있는 세상

왜 우리는 그런 선택을 했을까?


복잡하게 다른 사람의 삶이나 여건, 상황을 살피는 것보다

내 생각만 하는 것이 편하기 때문이다.

양심이라는 브레이크가 끽끽 소리를 내도 외면하는 이유다!

고장 난 브레이크는 아무리 소리를 내도 걸리지 않는다.

속도가 고장 난 자동차처럼,

우리는 그렇게 자신의 성공과 안위를 위해 끊임없이 달린다.

이리 치고 저리 치고, 들이받으면서도 질주한다.

자신과 같은 존재라는 존엄성마저 무시하며,

자신만 특별해지기를 스스럼없이 원한다.

그러니 타인은 지옥이 될 수밖에 없다.



타인 지옥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을까?

내가 먼저 타인의 지옥이 되지 않아야 한다.

진부한 이야기 같지만, 원래 진리는 평범하다.

지옥이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손해도 좀 봐야 한다.

무의미한 일이라고 할지 모르겠다.

무슨 소용이냐고 항변도 할 것이다.

당연하다.

이 말을 하는 나조차도

종종 이게 맞나 싶은 게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마음들이 모여 커질 때 그만큼

지옥은 줄어든다.

타인이 지옥이 되고, 세상이 다시 지옥이 되지 않으려면,

지옥을 줄여나가는 것이 시작이다.

내가 먼저 지옥을 나와야 하고,

내 사람들도 함께 지옥을 나와야 하고,

차츰차츰 지옥의 땅을 야금야금 먹어 나가야 한다.


기우제가 성공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비가 올 때까지 기도하는 것이다.

그 뜻을 놓지 않고 꺾지 않고 꾸준히 부여잡고 가다 보면,

씨가 뿌려질 것이고, 싹이 틀 것이다.

꽃도 피고, 열매도 맺을 것이다.

그러니 부디 나부터

천국은 못되더라도 지옥이 되지 말자고 애써보자.


타인의 상처에 무감하고,

아무렇지 않게 나의 감정에 따라 해치고,

내 탓이 아닌 남의 탓으로 돌리며 안도하는 그 작은 행동들!

그 작은 행동들에 마음을 주고 관심을 주는 것부터 시작이다.


정의의 히어로가 돼서 세상을 구하자는 말이 아니다.

타인의 상처에 말을 뱉고, 찌르는 선택 대신,

함께 공감하며, 눈물 흘릴 수 있어야 한다.

내 감정이 지옥이라고,

타인도 그래야 한다고 당연히 생각하지 마라.

당신이 모르는 지옥을 사는 사람들이다.

내가 아프니 너도 아프라고, 해치고 다치게 하지 마라.

결국 그 칼날이 누굴 또 찌를지 알 수 없다.



나의 잘못은 나의 잘못으로 인정하고,

타인에게 떠 넘기지 말자.

내가 힘들 듯이 타인도 버거운 게 삶이다.

굳이 서로 보태고 덮어씌우지 말자.


의좋은 형제는 쌀가마를 밤새 나르고

누군가는 탓을 밤새 나를지 알게 뭔가!

결국 우리는 선택할 수 있는 인간이다.

그 선택이 나만을 위한 선택인지 아닌지

우리는 얼마든지 판단할 수 있다.


선한 늑대를 키워 세상을 밝히고 영역을 넓힐 것인지,

악한 늑대를 키워 스스로와 타인 모두

함께 잡아먹히게 둘 것인지는

당신의 선택에 달렸다.


사진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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