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립테루스의 죽음과 아들의 책임감
"엄마! 난 라바가 죽으면 정말 슬플 거야"
며칠 전 막둥이 사랑이가 한 말입니다.
사랑이의 취미는 물고기를 기르며 어항을 꾸미는 것이고,
그에게 어항 관리는 행복해지는 마법의 시간인 듯 즐겁게 보살피며 꼼꼼히 점검합니다.
"으~아~"
아침에 사랑이는 포효하듯 울부짖었습니다.
"또 일이 벌어졌군."
'라바'는 폴립테루스이며, 아가미와 폐호흡을 동시에 하는,
일상에서 편하게 어류라고 부르는 관상어입니다.
그 물고기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사랑받던 라바 폴립테루스가 밤새 어항을 탈출한 것입니다.
'으-어~'
한동안 정적이 흐르더니,
사랑이는 그 라바를 조심스레 만져보고 경련이 느껴진다며 자작한 물에 담가 응급처치를 했습니다
하지만, 눈이 말라 있어 살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진단했습니다.
오후 동안 살을 촉촉하게 해 주고 산소를 공급하며 살아나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그러나 너무 오랜 시간 물 밖에 말라 있었습니다.
"엄마 난 라바가 죽어 정말 슬퍼"
라바는 좋은 환경인 어항 속을 두고 물 밖의 다른 세상으로 도전을 해야 직성이 풀리나요?
폐로 숨을 쉴 수 있다고 해도 죽을 줄 모르고 무모하게 행동하다니요.; 물고기에게 무모하다는 말은 어울리지 않지만요.
어항 밖이 파라다이스인 줄 알았는지,
돌처럼 굳어버린 모습이 안타까웠습니다.
죽은 물고기가 원망스럽기까지 하더라고요.
사랑이가 슬픔과 상실감을 느끼고,
뚜껑을 더 튼튼하게 만들지 못한 것에 대한 죄책감을 느낄까 봐 걱정이 되었습니다.
뭐, 그런 감정을 죄다 느낀 모양이었습니다.
부정적인 감정도 배워야겠지요.
그 순간도 사랑이가 조금만 힘들어하기를 바랐습니다.
또, 이 엄마는 어쩔 수 없이 공부에 방해가 되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사실은 그가 어항과 물고기에 시간을 쓰는 것이 못마땅합니다.
벌써 고등학생이기 때문이지요.
장수풍뎅이, 사슴벌레, 개미, 햄스터, 새들로 키우는 것들을 바꿔가며,
집안의 몇 평을 그의 애완동물들에게 내주어야 했습니다.
"언제 사랑이가 클까!"만 기다렸습니다.
"크면 바쁘니 그만하겠지."
그런데 가로 90cm, 세로 30cm, 높이 45cm의 3개 어항이 거실을 차지하고
폭포수 같은 소리를 내는 산소 공급기가 집 안 전체를 계곡에 있는 듯한 느낌을 만듭니다.
어느 날 가스 검침 아주머니께서 현관문을 열자마자 귀를 쫑긋 세우셨습니다.
"어머나, 세상에! 어디서 이런 계곡 물소리가 나는 거예요?"
마치 계곡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물소리에 깜짝 놀라신 거죠.
하지만 우리 가족은 이미 그 소리에 익숙해져 마치 배경음악처럼 여기고 있었습니다.
아주머니께서 무슨 소리를 하시나 했지요.
"물소리요? 혹시 수도꼭지가 잘못됐나?" 화장실을 확인했습니다.
시간 맞춰 밥을 챙겨주고 물을 갈아주는 것은 물론, 어항 속 인테리어도 합니다.
어항 인테리어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라 열정을 다합니다.
하루는 아크릴과 화이트폼을 잔뜩 사 오더니 '물에 잠긴 잊힌 도시'를 꾸밀 거라며 일주일을
그림 그리고, 붙이고, 깎으며 어항 물속 뒷배경에 위치할 칼과 도끼를 든 기사를 만들고 사슬을 하나하나 깎아 잇고, 가운데 만들어 놓은 문 옆에 위치시켰습니다.
"겨울 방학이니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는 것도 좋겠지!"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날리는 스티로폼과 여기저기 놓여 있는 연필과 스케치북, 그리고 조각품들이 사랑이 방을 일주일간 가득 채웠습니다.
꾹꾹 참았습니다.
"완성하면 치우겠지."
그렇게 완성은 되었고 생각보다 멋지게 만들어졌습니다.
대견하기도 했습니다.
“시킨 것도 아니고 학교 과제도 아닌데 왜 이리 열심히 하니?"
"넌 이런 게 하고 싶니? 난 못하겠다."
"엄마도 그랬잖아요. 저 어릴 적에 맨날 나무로 침대 만들고, 수납장 만들고 했는데..."
아! 그랬습니다.
육아만 하는 것이 단조로워 가구 만드는 것들에 몰두한 적이 있었는데 나는 잊고 있었습니다.
"저는 엄마 닮았는데요..."
그러니 사랑이 취미의 시작은 엄마였네요.
그와 함께 산에 가서 이끼를 채취하고,
물고기 놀이터로 쓸 돌을 찾고,
정보 도서관 근처 어항 관련 물품을 파는 곳에서 물고기를 구경하고
책도 읽는 것은 행복한 시간이고 소중한 길이었습니다.
함께 하며 그의 생각을 듣는 것은 더욱 그랬습니다.
이제는 혼자서도 잘하는 나이가 되었지만요.
그가 더 커도 엄마에게 수다를 떨어줄까요?
자라는 아이를 바라보는 것이 흐뭇하지만 아쉽기도 합니다.
라바가 세상을 떠나 하루 종일 막둥이의 한숨을 들어야 했지만,
어떤 위로의 말을 건네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저 진화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진화는 그렇게 엉뚱한 도전과 새로움에 대한 막연한 동경으로 수많은 희생을 치르며 지금의 우리를 만들었던 거야. 감사해야 할 일이지."
라고 길게 말하고 싶었지만,
실제 아들과 엄마의 대화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진화란... 쯧쯧.
여기가(어항 밖이) 저들 보기엔 파라다이스인 줄 알았나 봐."
며칠 지나 개학을 한 바쁜 고등학생은 일상으로 돌아갔습니다.
파라다이스가 존재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물고기 라바가 그곳에 있었으면 합니다.
아들이 어항 앞에서 물고기들을 바라보며 평화로움에 빠져 있을 때는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생명을 보살피는 책임감이 지나치게 무겁게 느껴지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사랑이의 물고기 사랑과 그의 성장을 응원합니다.
폴립테루스(Polypterus)는 다기어목 폴립테루스과에 속하는 담수어류고 고대어인 폴립테루스는 공룡시대부터 살아남아있는 생물이며 현재도 이집트 지층에서 화석으로 발견됩니다. 외형은 길고 원통형의 몸을 가지고 있으며, 등지느러미가 여러 개의 작은 지느러미 조각으로 나뉘어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아가미와 함께 부레를 이용하여 공기 호흡을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