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라이 빛나는 청춘이라는 불빛
있잖아, 나를 비추는 환한 불빛은
왜 이리 나를 지워낼까?
바람에 흔들리는 내 등불이
너머에 닿을 수 있을까?
볕이 어스름해지면
피워 낼 수 있을 텐데
> 여기를 누르시면 오늘의 노래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
청춘 (靑春) : 새싹이 파랗게 돋아나는 봄철.
인생의 푸르른 젊은 한때를 이르는 말이다.
어른들이 말하는 청춘은 그저 시리도록 푸르고
아름답기만 한 줄 알았는데.
그 청춘을 이겨내는 입장이 되어보니
이토록 처절하고 불안한 때가 또 없으리라.
어느 곳에도 제대로 자리잡지 못하고
때로는 ‘꿈’이란 단어에 기대어 헤매다가,
다시 ‘현실’의 벽에 부딪혀 주저앉고 마는.
주저앉고 일어섬을 무한히도 반복하는
우리네의 찬란하고 애절할 청춘.
이 곡이 그려내는 ‘반딧불’은 우리의 모습이다가도,
또 청춘이 바라보는 꿈을 그려낸 상징체라 생각했다.
아스라이 빛나는 작은 불빛이
어떨 땐 선명하게 보이다가도,
조금만 날이 밝아오면 금세 또 사라져 버리니까.
불빛을 잃어버릴까 조마조마 애타하며
그 불빛의 꽁지를 따라 한참이나 달리는 모습이
꿈을 잃고 싶지 않아서
그 간절한 마음으로 꿈을 쫓아가는
청춘의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보통 빛은 긍정적 이미지로 나타나고는 하는데
반딧불이라는 작은 불빛 앞에
환한 불빛은 오히려 그 작은 빛을
집어삼켜버리는 존재가 된다.
“찰나엔 흐려도 괜찮을 거야” 하면서 스스로를 달랜다.
그 위로도 잠시, 다시 쓰러지고 가라앉는
스스로를 붙잡고 일으켜 세워
불안한 항해를 이어나가야만 하는 청춘.
언젠가 ’ 청춘‘에 대해
끝없이 생각을 이어가 본 적이 있다.
청춘은 왜 아름다울까.
그 시기를 겪는 이들에겐 이토록 큰 어둠이 없을 텐데.
그러다 생각했다.
모두 그 어둠의 터널을 지나온 이들이라면,
그 터널 앞에 보이던 반딧불만한 작은 불빛이
자신만의 태양이 되어 환히 비추는 날이
곧 오리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하지만 그 결말을 알지 못하고
그저 어둠 속에서도 발걸음을 내디뎌야 하는
불안하고 쓰린 이들이
얼마나 발버둥 치며 버티고 있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래서 이제 그 시기를 지나
환한 태양도 떠나보내고 황혼에 다다른 어른들은
청춘이 아름답다 찬사 하는 것이 아닐까.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았을 때 희극이라 한다.
눈앞의 캄캄함을 딛고
한참을 더듬더듬 짚어가며 앞으로 나아가다 보면
저마다의 빛을 만나게 될 것이다.
꼭 그렇게 되리라고 믿고 싶다.
그래서 나도 말할 것이다.
청춘은 아름답노라고.
시리도록 아프고 처절하게 아름다운
인생에 다시 오지 못할 청춘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