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햇살 속, 가족의 마음이 조용히 스며드는 순간들
프롤로그: 가을의 시작
아침 안개가 마을 길을 살짝 덮은 날이었다. 아버지는 밭으로 나가셨고, 가을 햇살이 부드럽게 흙 위를 스쳤다. 창가에 앉아 커피잔을 들고 아버지의 모습을 바라보니, 세월이 묻은 나무 의자와 주름진 손등 위로 햇살이 내려앉았다. 바람에 섞인 흙냄새와 풀 향기가 마음을 채웠다. 아이들을 키우던 여름날의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부모님의 묵묵한 하루
엄마는 아침부터 아이들의 옷을 입히고, 아침밥을 챙기셨다. 아이들은 유치원 생활이 서툴러 작은 장난과 울음으로 하루가 분주했다. 아버지는 밭에서 곡식을 살피며 아이들을 걱정하셨다.
“조금만 더 조심하렴.”
그 한마디 속에는 언제나 아이들을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 담겨 있었다.
엄마는 잠깐의 휴식도 없이 아이들을 돌보며 하루를 이어갔다. 아들은 편식이 심해 안 먹는 음식이 많았다. 신맛을 좋아하지만, 엄마는 고기와 비린 것을 잘 못 먹어 할머니가 아이를 위해 따로 음식을 준비하곤 했다. 그 모습 속에서 부모님의 세심한 사랑이 느껴졌다.
작은 사건, 큰 마음
가을 수확이 한창일 때였다. 엄마가 옥상에 고추를 널고 정리하던 중, 아이가 스라브를 나무로 긁으며 경쾌한 소리를 냈다. 그 순간 벌집에 있던 벌들이 아이를 공격했고, 엄마는 옷과 빗자루로 막았지만 아이는 얼굴과 팔, 다리에 물려 부어올랐다.
병원에서 긴급 치료를 받고 돌아온 아이를 퇴근 후 품에 꼭 안았다. 얼굴이 밤탱이가 되어도, 그 작은 손을 잡고 함께 잠들며 부모의 사랑을 다시 느꼈다.
아들은 할머니를 무척 좋아했다. 할머니 무릎에 안기고 뽀뽀하며 마음을 터놓았지만, 엄마와의 애착은 조금 달랐다. 출퇴근 거리 때문에 자주 함께 잠들지 못했고, 가끔 백허그를 하려 해도 아이가 서운하게 거부할 때면 마음이 아팠다. 그러나 그 모든 순간이 가족의 삶 속에 차곡차곡 쌓였다.
길 위의 기억
나는 출근할 때 감악산 아래 신산리 직선거리를 140km로 달리곤 했다. 동네 이장님이 “순옥이 완전 제트기처럼 날아다닌다”라고 했다며 엄마가 저녁에 나를 훈계하셨다. 길이 험하고 장거리 운전인데 왜 그렇게 빨리 다니냐며 휴직을 고려하라는 말까지 들었다.
군용차를 만나면 허탈한 한숨부터 나왔고, 추월할 때면 사고 날 뻔한 순간도 있었다. 힘들 때면 길 위에 돈을 버리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 길 끝에는 언제나 가족이 기다리고 있었다.
고구마를 캐러 아이들과 밭에 나갔을 때, 아이들은 흙을 만지며 고구마가 나올 때마다 환호성을 질렀다. 파란 벌레가 나오자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르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나는 고추 수확에는 참여하지 못했지만, 집안 정리와 밥 당번을 하며 가족과 계절이 함께 흐르는 소중한 일상을 느꼈다.
가족과 계절 속의 행복
딸아이는 눈이 커서 외출할 때면 사람들이 “정말 예쁘다”라고 했다. 그 말 한마디에 마음이 뿌듯했다.
하지만 네 살 때, 엘리베이터에서 한 남자가 “튀기 아니냐”라고 물었다. 집에 와서 아이가 “엄마, 튀기가 뭐야?”라고 물었을 때 가슴이 아프고도 설명할 말을 찾기 어려웠다.
그 순수한 질문 속에서도 아이의 존재는 여전히 햇살처럼 따뜻했다. 세상의 시선은 잠시 스쳐갈 뿐, 가족의 사랑은 흔들리지 않았다.
가을이 깊어지면서 벼, 콩, 깨가 풍년이었다. 아버지의 손길은 더 분주해지고, 아이들과 밭에 나가 흙을 만지고 농작물을 수확하는 일상이 이어졌다. 아이들은 작은 사건과 실수 속에서 자라났고, 우리는 매일 가족의 마음과 사랑을 다시 확인했다.
작가의 말
시간이 흘러 계절이 바뀌어도 부모님의 사랑은 여전히 우리 안에서 살아 숨 쉰다. 작은 사건과 웃음 속에서 우리는 성장하고, 가족의 마음을 배운다.
출퇴근길의 조바심과 긴장, 아이들의 울음과 웃음, 옥상에서 벌과 맞섰던 순간까지, 모든 것은 삶 속에서 우리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아버지의 의자는 비어 있지만, 그 따스함과 가을 햇살 같은 사랑은 여전히 우리 삶 속에 이어지고 있다. 오늘의 작은 순간도 언젠가 가족 이야기 속 소중한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다음 편 예고
가을이 깊어지면서 아버지의 농사일은 더 분주해지고, 엄마의 아이 돌봄은 한층 세심해진다. 아이들은 유치원과 어린이집에서 새로운 친구와 작은 갈등을 겪으며 조금씩 성장한다.
부모님의 묵묵한 사랑 속에서 나는 길 위와 집 안에서 하루하루 변해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