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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도전의 날, 할아버지의 약속

딸아이의 재도전

by 최순옥
라디오 사연
cbs 93.9 김용신의 그대를 여는 아침

“연천의 대단한 애청자, 엄마 최순옥입니다. 그리고 오늘의 주인공은 제 딸아이예요. 김용신 아나운서님, 저희 모녀 기억하시나요?”


아침 산책길, 딸아이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말했다.

“엄마, 왜 이렇게 잘해줘요…”


그 말에 저는 가슴이 뭉클했다.

“괜찮아. 마음의 짐을 너무 많이 지지 말고, 끝까지 네 자리를 지키자.”

우리 모녀


딸아이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고, 웃으며 약속했다.

“시험 끝나면 우리 강릉 가자. 그리고 그다음엔 제주도도 가자.”


딸아이는 마음이 여리지만, 그만큼 다시 걷기로 한 길을 묵묵히 준비했다. 매일 반복되는 연습 속에서 다시 한번 도전할 용기를 냈다. 그 모습이 고맙고 대견해서, 차 안에서 함께 들었던 아나운서님의 방송은 큰 위로가 되었다.


사실, 딸아이는 태교 때부터 용신 아나운서님의 방송을 함께 들었다. 22년간 이어온, 웃고 울며 함께한 시간이었다.

“오늘 방송에서 딸아이의 이름을 불러주신다면, 그것만으로도 큰 힘이 될 거예요.”

딸아이와 함께 걷는 이 길은 그 무엇보다 믿음과 사랑이 중요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모든 수험생에게 진심으로 응원의 말을 전했다. 여러분의 노력이 좋은 결실로 이어지기를 바랐다.


“아델의 〈Summer Like〉를 신청합니다. 가능하다면 7시 30분에서 7시 50분 사이에 들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연이 소개된 아침

그날 아침, 아나운서님은 저희 사연을 소개하며 따뜻하게 말씀하셨다.

“연천의 대단한 애청자, 최순옥 님과 따님! 정말 기억에 남는 사연이네요. 두 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오늘은 꼭 좋은 결과가 있을 거예요. 힘내세요!”


그 말을 들은 딸아이는 웃으며 말했다.

“엄마, 왜 다 알리나요…”


그 순간, 제 마음속에는 따뜻한 감정이 밀려왔다.


방송 말미, 아나운서님께서 작은 응원 선물이 전달된다고 덧붙이셨다.

라디오에서 제 이름이 다시 불렸고, 딸아이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번졌다. 그 미소 하나로 모든 피로가 녹았다. 22년간 함께한 라디오, 그날의 아침은 오래도록 잊지 못할 기억이 되었다.


수능 재도전의 결심과 할아버지의 약속

딸아이는 지난해 수능에서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며칠을 고민한 끝에 다시 결심했다.

“엄마, 이번엔 정말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다시 한번 해보려고요.”


그 말에 저는 잠시 망설였지만, 결국 딸아이의 결심을 믿었다. 슬픔과 좌절의 시간을 지나 다시 일어난 딸아이의 눈빛은 이전보다 훨씬 단단했다.


그때, 할아버지가 말씀하셨다.

“무엇을 하든, 나는 언제나 네 편이다. 이번에도 내가 도와줄 거다. 학비는 내가 책임진다. 4년 동안은 걱정하지 마라.”


딸아이는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

“할아버지, 정말 감사합니다. 이번에는 꼭 좋은 결과를 얻을게요.”


할아버지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잘할 줄 알았다. 너는 내 자랑이야.”


그 약속은 단순한 말이 아니었다. 실제로 4년간의 학비 4000만 원을 지원했다. 그것은 단순한 경제적 지원이 아니라, ‘믿음’이라는 이름의 사랑이었다.

할아버지의 사랑 손녀


시험이 끝난 오후

수능 당일 새벽, 5시가 조금 넘어 딸아이에게서 카톡이 왔다.

“엄마, 나 시험장 종사요원 근무 중이야. 조금 후에 시험 시작해.”


오후, 시험이 끝난 뒤 또 한 통의 메시지가 왔다.

“엄마, 끝났어. 이제 정말 다 끝났어…”


그 순간, 저는 핸드폰을 꼭 쥐고 한참을 움직이지 못했다.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을까, 얼마나 외롭고 치열한 시간을 견뎌왔을까.


그 작은 손이 버텨온 시간들을 생각하니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딸아이의 그 짧은 말속에는 모든 감정이 담겨 있었다. 실패와 두려움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선 긴 여정이었다.


그 순간, 우리는 가족으로 함께했던 약속을 떠올렸다.

‘무엇이든 끝까지 믿어주자. 어떤 길이든 함께 걸어가자.’


그 약속은 언제나 우리를 하나로 묶어준 힘이었다.

딸아이의 목소리 속에서 그 약속이 다시 살아났다.

‘가족의 믿음을 꼭 지킬 거야.’

그 말에 가슴이 뜨거워졌다. 모든 고난을 이겨내고 흘린 그 눈물은, 결국 우리가 함께한 믿음의 결실이었다.


에필로그 — 할아버지의 의자 옆에서

딸아이는 지금도 가끔 할아버지의 의자 옆에 앉아 조용히 기도한다.

“가족의 약속, 꼭 지켜낼게요.”


그럴 때마다 가족은 미소 지었다.

“우린 언제나 네 편이야. 너라면 반드시 해낼 거야.”


그 미소 속에는 세대를 넘어 이어지는 사랑과 믿음이 담겨 있다.


막내딸과 가족의 이야기

지금 병중에도 아버지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늘 가족의 중심에서, 사랑으로 모두를 감싸주셨다.

아버지에게는 일등이 늘 막내딸 순옥이이였다. 그리고 이등은 딸아이였다. 아버지가 다치시거나 가시에 찔리면, 딸아이는 언제나 간호사가 되었다. 농사일로 지친 아버지를 위해 안마를 해드리고, 따뜻한 커피를 타드리는 일에도 소홀함이 없었다.


가끔 할아버지가 장난처럼 물으셨다.

“누가 제일 예뻐요?”

아버지는 늘 둘 다 예뻐하셨다.

하지만 딸아이는 장난스럽게 삐쳤다.

“아버지는 한 명만 내 딸이라고 하셨잖아요!”


그 사랑은 세대를 잇는 끈이 되어, 가족 모두에게 하나의 힘을 더했다.

딸아이는 아버지의 사랑과 믿음 속에서 언제나 자신이 가장 든든하게 지켜지는 존재임을 느꼈다.

아버지의 일등 그리고 이등


작가의 말

이 이야기는 할아버지의 사랑과 가족의 믿음, 그리고 딸아이의 재도전에 관한 기록이다.

인생은 때로 실패와 좌절을 겪지만, 그 속에서도 우리를 일으켜 세우는 힘은 사랑과 믿음이었다.


할아버지의 지원은 단순한 물질이 아니었다.

그것은 “넌 할 수 있다”는 한 문장의 사랑이었고, 그 믿음이 한 아이의 삶을 다시 일으켰다.


오늘도 누군가는 포기 대신 다시 걸음을 내딛고 있다.

그 길 위에 따뜻한 손 하나, 믿음 하나가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이 글로 전하고 싶다.


다음 편 예고 — 고향집의 봄, 모내기 준비

고향집에서는 봄 모내기를 준비했다.

할아버지와 함께 논을 밟으며 따뜻한 밥상을 나누는 풍경 속에서, 딸아이는 새로운 결심을 다졌다.


다음 편, 〈할아버지의 의자 21편

고향집의 봄, 모내기 준비〉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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