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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영 글쓰기 Dec 08. 2020

라떼는 말이야.. 너만큼 하지 못했어

반성문: 내 20대 초반을 돌아보며 부끄러워졌다.

올해 1월 즈음, 내 통장이 두둑해졌다. 나에게도 이런 날이 오는구나! 강연 요청이 정기적으로 들어오고, 몸값도 꽤 올라서 이제 좀 프리랜서 1인 비즈니스로 안정적인 자리매김을 하나 싶었다.


하....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을까. '이렇게 좋아도 되나?' 하는 괜스레 불안한 마음은 결코 기우가 아니었다. 연말 연초의 풍요는 나를 스쳐간 봄바람보다도 짧았다. 코로나 19 사태가 빵! 하고 터진 것이다. ㄹㅇ핵폭탄이었다.


내가 주로 하는 일은 사람을 모아놓고 하는 인문 교육 혹은 모임(주로 글쓰기, 독서 관련)이다. 그러다 보니 서울에서 강연을 열면 사람들이 전국 각지에서 모이긴 해도, 지역에선 홍보 조차 어려운 면이 있다. 이젠 시국이 시국인 만큼 서울에서 오프라인 모임 하나 열기도 힘든 실정이다.


다행히 난 혼자 하는 선택 결단이 꽤 빠른 편이다. 신천지 발 코로나 사태가 터진 이후 심상치 않음을 감지하고는 4월 말까지 서울생활을 싹 다 접고, 5월에 재빨리 고향인 전북 군산으로 내려왔다. 프리랜서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잠시 가난해졌지만 가족과 국가의 도움을 받아 군산에서도 안정을 되찾았다. 최근엔 오프라인 강의 대신 온라인 강의가 우후죽순 들어오기 시작했다. 본래 연말이 강사에겐 최고의 성수기다.


그렇게 조금 마음의 여유가 생기자, 단순히 지금 당장의 통장을 불리기보다는 '전략을 짜야겠다'라고 생각했다. 소위 장기플랜 전략이다. 소확행과 욜로 라이프 스타일의 고리를 완전히 끊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늘 흘러가는 대로 지금 이 순간에 만족하며 살아왔던 내 삶을 돌아보았다.

서울에 살면서 겉으로는 괜찮은 척하면서도 다행이(입양한 반려묘 이름) 사료와 간식을 혹시나 못 살까 봐 전전긍긍하던 나였다. 갑작스러운 악재에 대비하지 못하고, 흔한 파이프라인 하나 구축하지 못한 프리랜서로서 내 모습을 객관화하기 시작했다.


'전략을 짜야겠다'라는 결심 이후 행동에 옮긴 첫 실천은 '교육 수강'이었다. 배움, 내가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생계가 걸린 강의 스케줄을 조율하면서까지 강행했으니 내겐 큰 결단인 셈. 렇다. 투자였다.

정부지원사업(화체육관광부•전라북도•군산시•전라북도문화콘텐츠산업진흥원 주최)으로 군산 지역에서 '로컬 크리에이터 교육'이 실시된다는 공지를 우연히 보고 지원했다. 생각보다 경쟁률이 꽤 있었다. 공짜 정부사업은 역시 까다로웠다. 교육생으로 참가하는데 서류에 대면 면접까지 통과해야 했다. 결과는? 응, 합격!


운 좋게 내 고향 군산에서 크리에이터 교육을 받을 기회를 얻었다. 얏호!

교육 내용은 대략 이러하다...
직장 생활할 때 대기업 클라이언트와 함께 쓰던 디지털 협업 툴도 새삼스레 다시 배우고, 창업자의 마인드셋이며 디자인 싱킹(사고법), 비즈니스 모델 캔버스 작성, 콘텐츠 제작 기획, 콘텐츠 스타트업 생태계와 트렌드, 아이템 발굴과 사업화 전략, 홈페이지형 블로그 만들기 등등등등 다양한 인사이트를 얻는 교육이 가득했다.

기대가 컸던 만큼 아쉬운 점도 없진 만, 한 줄로 줄여 총평하자면 '감지덕지한 고퀄리티 무료교육'이었다.(지금 이 글을 쓰는 오늘도 오후에 비대면 교육을 받았고, 총 5주 과정으로 다음 주까지 계속될 예정이다.)


초반에 크리에이터(교육생)들끼리의 네트워킹 타임이 있었다. 지금은 다 온라인 교육으로 대체되었는데 몇 주 전에는 거리두기 단계 격상 전이어서 마스크를 쓴 상태로 모일 수가 있었다.


면접을 볼 때 '누구와 함께 교육받고 네트워킹하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다양한 연령대와 함께 했으면 좋겠다'라는 답변을 했었는데, 막상 모여보니 '다양한 연령대'에서도 내 나이가 적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제비뽑기로 임시적인 한 조가 구성됐다. 20대 초반 대학생도 있고 20대 중후반이 가장 많고, 30대 중에서도 내가 제일 많은 나이였다.(물론 다른 조에는 나보다 더 나이가 많고 경력이 있는 분들도 있었다.)


나이를 먼저 묻는 타입은 아닌데 우연히 대화 중 서로의 나이가 공개되었다. 나이 파악은 우리나라 고유의 문화 아닌가. 그러다 20대 초반 한 대학생 크리에이터의 존재를 알게 됐다. 그에게 나도 모르게 '라떼는 말이야..'를 거의 반사적으로 시전하고 말았다.

근데 내가 해놓고도 조금 웃음이 났다. 이유는 '꼰대'를 뜻하는 '나 때는 말이야'를 비꼰 말처럼 꼰대스럽게 말 아니었기 때문이다.


와.. 나 20대 초반 대학생 때는..
진짜 이런 거 해볼 생각도 못했는데.
진짜 대단하다..!
진심으로 멋지다고 생각해요.
많이 배울게요.

다들 자기 분야나 방향을 가진 사람들 틈에 20대 초반의 한 친구는 '아직 무엇을 할진 잘 모르겠다'라고 수줍게 말하는 경영학도였다. 그 친구에게서 잠재력이 보였다. 그것도 무궁무진한.


난 20대 초반에 군대에 있었고, 다녀와서 반수와 편입을 했고, 연애 몇 번 하고 나니까 서른이 훌쩍 넘어버렸는데. 어떻게 '로컬 크리에이터 비즈니스 교육' 이란 걸 받을 생각을 했는지. 생각해보면 '나 때'는 이런 게 있을 리 만무하긴 했지만... 정해진 코스에 전전긍긍하느라 주체적으로 교육받고 진로를 정해보겠다는 건 상상못 했었는데...


'이젠 전략을 짜야겠다'고 불과 몇 개월 전 생각한 나는, 그걸 스스로 대견해하며 '음, 내가 잘하고 있구나' 하뿌듯했는데 말이다. 어쩌면 이 스피디한 세상을 몰라도 너무 몰랐다는 깨달음에 그만 멋쩍어졌다. 좁은 구멍만큼의 하늘만 하염없이 바라보며 세상의 전부인 줄 아는 우물 안 개구리딱 내 모습이었다.


전략은 여유가 있는 사람들 아니면 뭘 좀 아는 사람들이나 세우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에 정면으로 부딪쳐 결핍을 채우고 기꺼이 배우겠다고 생각한 그 용기와 정보력이 너무 대견해 보이기까지 했다.

만약 내가 지금 이 시기에 20대 초반이었다면? 나는 열아홉에 자원했던 군대는 좀 늦게 갔을지 몰라도 교육받을 생각까지는 미처 못했을 것 같다. 차라리 연애 더 하고 동아리 활동 더 하면서 세상모르고 탱자탱자 즐기며 살았을 것 같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 알았더라도 마찬가지로.


부끄러웠다. 이제와 그렇게 산 걸 두고 후회는 1도 없지만, 20대는 물론이거니와 서른이 넘고 나서도 비즈니스에 관하여 진지하게 알려고 하지 않고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부끄러워졌다. 매번 몸으로 부딪쳐야 노동의 대가가 나오는 줄로만 알았지, 파이프라인 구축이라는 개념조차 몰랐고, 비즈니스 모델이라는 걸 염두에 두는 일도, 다양한 사람들과 네트워킹 할 생각도, 1인 기업으로서 라이프스타일 수정이나 디자인 싱킹으로 생각을 설계하는 도 몰랐다. 로컬에서 뭘 할 수 있겠다 하는 생각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저 내가 좋은 게 좋은 거라며 끌리는 대로 하다가 성과가 나서 운 좋게 퍼스널 브랜드가 생긴 것 정도로 그때그때 충당해가며 사는 내 모습이, 피보팅을 해서 더 나아져야 한다는 개념조차 몰랐던 내 모습이 부끄러워졌다.


나와 한 조로 잠시 대화를 나눴던 그 20대 초반 경영학도 크리에이터는 출발점이 완전히 다른 게 아닌가. 남들보다 더 넓은 시야를 획득하는 작업이  교육 수강본질이니까. 난 그렇게 생각한다. 그는 나 때는 못 봤던 걸 보고 있다고. 아니 내가 보았어도 우선순위가 아니라며 외면했을 그걸 선택한 용기에 진심 어린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 친구가 내 아는 후배나 동생이었다면, 인생 선배로서 말 놓고 허심탄회하게 이렇게 말했으리라.


"라떼는 말이야.
너만큼 생각하지 못했어.
너만큼 용기 내지 못했어.
너만큼 시간을 두고 바라보지 못했어.

너한테서 조금씩 돋아나는 날개가 보인다.
넌 될 놈이야! 너 정말 멋져!"


시작하기에 늦은 건 없지만, 빠른 건 분명히 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진짜 늦었다는 말은 우스개 소리가 아니다. 중요한 건- 늦었다 빨랐다가 아니라, '생각할 때'일 테니까.


그 20대 초반 친구는 내 나이가 되어서 라떼는 말이야..로 시작하는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아마도 앞서서 바라본 그 시야로 또 다른 20대 초반을 발굴하는 멘토가 되어 있진 않을까?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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