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그자가 입을 벌리면 | 김지혜 지음
어머니 날 불러 꽃을 보라 하신다
나는 아직 꽃이 필 때가 아니라고
겨우내 틀어박힌 우울로 싸늘히 응수하지만
입춘의 문을 열고 건너온 저 세상의 계절은
바깥 베란다에 이미 질펀히 도착해 있다
그 안온한 빛의 세상에서
어머니 날 불러 꽃을 보라 하신다
잎도 나기 전에 꽃부터 져버린 나는
향(香)을 가진 것들의 환(幻)을 일찍이 보아버린 나는
이 잡초 한 포기를 제발 내버려두시라 애원해보지만
어머니 날 불러 꽃을 보라 하신다
뿌리를 내리지 않고도 자라고
잎 없이도 푸르디푸른 색(色)을 피우며
썩어 문드러져가는 것들과 동거하면서도
먹물보다 더 진한 향(香)을 방사하는,
옥색 곰팡이꽃 푸짐히 뒤덮인 장독대 안에서
하늘의 얼굴로 웃고 있는 자를 들여다보라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