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구간 (2) 뉴스 속 그 남자

by 노동자a

1번 캐셔는 손이 느렸다. 앞뒤로 사람들이 닿을 듯 서자 재영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익숙한 자괴감이 어김없이 피어올랐다.

한때는 엘리트들 앞에서 내 지식을 전하고 맡은 업무도 착착 수행했었는데, 언제부터 사람 사이에 섞이기만 해도 불안해진 걸까. 언제까지 이렇게 바보같이 살아야 할까. 이 인생은 언제 끝이 날까. 생각이 구름처럼 커지던 그때,


"다음 손님!"


캐셔가 장갑 낀 손을 까딱하며 재영을 불렀다. 재영은 바구니를 선반에 올려놓고 안에 든 물건을 하나씩 꺼내 놓았다.

문득 어제 뉴스에서 본 일이 떠올랐다. 어떤 남자가 원룸에 쳐들어가 잠자고 있던 여자를 강간하고 목 졸라 죽인 사건이었다. 가해자도 피해자도 한 동네 사람이었다는 기자의 브리핑이 끝나고, 동네 구멍가게 아줌마의 인터뷰가 이어졌다.


-참한 아가씨였어. 몇 번 보지는 못했는데, 직업은 없는 것 같았지만 살려고 무진 애를 쓰던 여자였지. 너무 아까워.


재영은 기가 막혔다.


“무슨 말을 저렇게 하는 거야? 말에 밑도 끝도 없고 성의조차 없잖아! 남의 위기를 기회로 잡는 비겁자. TV에 출연하려는 저급한 욕망만 들끓는 비열한 인간!”


주먹으로 밥상을 탁탁 내리쳤었다.


"도대체가 말이 안 되잖아. 백수였다는 말로 고인을 모독하고, 몇 번 보지도 못했다면서 살려고 무진 애를 썼는지까지 어떻게 알지?”


이어진 구멍가게 아줌마의 인터뷰는 더 가관이었다.


-그 남자도 살인자로 보이지는 않았어. 일주일에 한두 번 우리 가게에서 장을 봐갔는데, 매번 1+1 아니면 개당 천 원 하는 균일가 상품만 골라가더라고. 기가 팍 죽어서 남 눈치만 보는 게 영 보기 딱했는데, 어쩌자고 사람을 죽였을꼬.


"저건 또 무슨 개소리야? 1+1 상품이나 균일가 상품을 사 간다고 헐뜯다니. 그걸 사 가는 거로 무시한다면 그걸 팔아 돈을 버는 당신은 더 우스운 거잖아!”


곱씹을수록 분통이 터졌다. 그러다 별안간 얼굴이 달아올랐다.


‘가만있어 봐. 나도 중년 남자고, 매주 일정한 시간에 마트에 들르며, 내가 고른 제품도 1+1 아니면 균일가야. 뉴스에 나온 아줌마처럼 여기 마트 직원도 싼 것만 골라 담은 나를 비웃을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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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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