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3~4학년을 생각하면 추억들이 방울방울 떠오른다.
2년 동안 담임 선생님을 맡아주신 김은숙 선생님,
선생님은 큰 키에 웨이브 머리를 하고 계셨고
피아노 앞에 앉으시면 선생님의 표정이 한층 밝아지셨다.
그 모습에 우리도 덩달아 신이 나서 음악 시간이면
우리는 동요와 옛 가요를 넘나들며 행복하게 노래를 불렀다.
동요 '아기 염소' 노래를 배울 때
선생님께서 창작동요제 프로그램도 말씀해 주셔서
창작동요제에 참가해 보고 싶은 마음도 들었던 기억이 난다.
교실에서 선생님과 친구들이 함께 본
내 인생 첫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
알프스의 넓고 아름다운 들판,
그리고 마리와 선생님과 일곱 아이들의 합창이 선명하게 그려지며
특히 도레미송, 에델바이스 등 주옥같은 노래들로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는 감동을 주는 영화다.
받아쓰기나 문제를 일찍 끝냈을 때 선생님께서
교실에 있는 위인전을 건네주셨고
집에 돌아오면 엄마는 먼저 책을 읽어 옆에서 우리도 책을 읽게 되어
물 흐르듯 독서 분위기가 이루어졌다.
내가 처음 시를 쓴 건 초등학교 1학년 수업 시간이었다.
교실에서 바라본 창문 너머에 하얀 눈이 나뭇가지와 창틀에
소복이 쌓인 풍경을 바라보며 시를 지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그리고 동네 아이들이 가끔 놀릴 때 속상한 마음을
그대로 써 내려가면 때로는 눈물이 글자 위로 떨궈지기도 했지만
글을 쓰고 나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책을 읽고 내 마음을 표현한 글들이 행복으로 다가온 것은
매년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을 맞아
전국 각지에 있는 재활 학교의 학생과 학부모, 선생님들
모두가 모여 큰 행사를 여는 날.
행사의 프로그램 중 하나로 백일장이 열리며
4시간 동안 한 가지 주제를 골라 마음속 이야기로
네모 칸 원고지를 빼곡히 채워 나갔다.
그렇게 내 이름이 새겨진 상이 하나 둘 늘어날수록
글쓰기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우리 집에서 걸어서 3분 정도 거리에
국어와 산수를 가르치는 학원이 자리 잡고 있었다.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라고 할 만큼 가까워
학교를 오며 가며 학원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사실 학원에 다니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는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친구를 사귀고 싶어서였다.
학교 친구들 대부분이 중복 장애를 가지고 있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친구를 찾기가 쉽지 않았기에
또 다른 이유는 학교와 물리치료실이 아닌
다른 세상이 궁금하기도 했다.
엄마를 계속 졸라 학원에 물어보니,
수업을 듣기 전에 시험을 봐야 한다고 하셔서
걱정 반 설렘 반으로 국어와 산수 시험을 봤다.
정해진 시간 안에 문제를 다 풀어야 하는데
나의 손은 생각만큼 빠르지 않았다.
결국 문제를 다 풀지 못한 채 시험은 끝나버렸으며
"학원에 다니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한마디를 듣고
엄마 등에 업혀서 집으로 터벅터벅 돌아오는 길에
엄마도 나도 말없이 눈물을 흘렸다.
동네 아이들의 뛰어다니는 발소리는 왜 그리 메아리처럼 들리는지
그날따라 핑크빛으로 물든 노을이 예뻐서 다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