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태,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소소한 통속소설 그리고 그 이상의 해학과 유머를 보여준다고 해야 할까.
김기태의 소설에서 나타나는 주인공들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다 이야기 하지 않는 욕망, 다 이야기하지 않지만 모두가 인정하는 감정, 아주 그럴만한 보통의 사람들을 다뤄낸 소설. 다른 작품보다도 <롤링 선더 러브>와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전조등> 그리고 <보편교양> 정도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아니 쓰고 보니 모두 각자의 개성이 톡톡 뒤는 내용들었던것 같다.
요즘처럼 아이돌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일상화된 적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k팝 안에서도 아이돌 보이그룹, 걸그룹이 하나의 문화적 아이콘이 되었음에도 이 내용과 관련해 다루어진 유명한 소설을 찾기 어려웠던 것을 생각하면 <세상 모든 바다>은 참신했다. 단순히 아이돌 그룹의 이야기를 떠나 시의성있는 주제와 비판적 내용이 좋았다. 가볍게 읽을 수 있었지만 다 읽고 나서 여운이 남는 소설이 좋은 소설이라 한다면 <세상 모든 바다>는 그 범주에 들어가는듯 싶다. 주인공이 누구인지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것 같은, 다 읽고 나니 군중 속에 파 묻혀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마음에 들었고. 요즘 중요하게 다룰 법한 환경 문제 등을 넘치는 재치있는 아이디어를 글로 썼다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나는 아이돌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아이돌 문화와 핫 플레이스의 ‘팝업’에 등장하는 여러 유행과 세간의 주목을 받기 위한 비쥬얼 중심의 세상에 이미 젖어있는 것도 사실이어서. 가볍게 다뤄지는 그 내용들을 환기하기에 충분했다.
<롤링 선더 러브>는 누구나 공감할 만한 소재일까. 연애, 결혼, 출산 모든게 쉽지 않지만 누군가와 얕더라도 마음과 온기를 나누고 싶은 것도 인간의 본성일까, 짝짓기 프로그램은 아주 예전부터 있었지만 지금도 각본대로 짜여진 내용을 다들 소위 B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사람들이 즐겨 보는 프로그램이라는 점에서. ‘나는 솔로’를 본 적은 없지만 그 프로그램이 히트치는 세상이라면, 젊은 남녀나 늙은 남녀나 모두가 누군가를 만나고 싶어 한다는 점을 단순히 저출생과 인구절벽이라는 무거운 주제로 그려내는것보다는 훨씬 즐거웠다. 그 즐거운 마음으로 어려운 사회문제를 가두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이 문제는 인간 근원의 심리적 문제와 깊이 닿아 있는 문제라 이런 문체와 내용이 더 설득력있고 시의성 있게 다가왔다.
<전조등>이라는 작품이 가지고 있는 문체가 나는 제법 신랄하다고 느꼈다. 주인공과 그를 둘러싼 세계를 마치 우리에게 미러링하듯이 세상을 날것으로 보였다고 생각했다. 거기서 느껴지는 아이러니와 문제점들을 우리 스스로 바라볼 수 있겠냐고 되묻는 것 같았다. 모든 것들이 잘 짜여진 내용들로 주입하고 성장하고 시간적 과업을 수행해나가는 과정에서 우리에게 보장된 것들이 무엇일지, 그 과업의 수행이 모든 사람에게 성공적이냐하면 전체 국민의 10퍼센트도 되지 않는데. 그 10퍼센트의 삶을 우리는 중산층/부르주아 라고 명명하지 않나. 중산층이라는 단어에 포함되지 못하는 삶이 전 국민의 대부분임에도 대체로는 우리가 중산층이라고 불리고 싶어 한다. 그리고, 중산층의 기준은 너무도 높고 방대한 기준 안에 한 가지도 어김없이 포함되어야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생각하는 중산층의 기준을 작품<전조등>에서 모두 나열하였다고 생각한다. 아주 미세한 균열(숲에서 발견된 여자의 털신 한 짝)이 마지막까지 찜찜한 마음을 놓지 못하게 한다. 우리도 알고 있다. 이렇게 살게 될 중산층들이 미세하게 가지고 있는 생활의 틈을, 그리고 그것이 전부가 아닐 지도 모른다는 내적 불안감을. 그렇지만 우리는 그것들을 사뿐히 무시하고 그냥 살아가지 않나. 그런 점을 미러링해서 우리에게 삶을 뒤돌아보게 하려 한 것 같았다.
그리고 제일 기대되었던 작품은 역시나 표지 제목인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이다. 작가는 방대한 지식과 자료, 그리고 음악에 대한 조예가 깊은 사람인 것 같다. 다른 작품에서도 이 점에 대해서는 면밀히 드러나는데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에서는 사회적 문제들과 국제적 감각마저 놓지 않고 모두가 우리의 이웃일 수 있음을, 그 감수성을 견지하려 한것 같았다. 인터내셔널가. 대학 다닐때 학생운동이 파장으로 치달아 더이상 운동이라 하기 어려운, 어떤 소수의 집단들만이 누리던 정치세력이 되어버린 그 분위기의 2000년대 초반에 나는 학생운동의 손톱만 느껴봤었다. 인터내셔널가라니. 그때의 그 노래를 다시 소환해서, 민중가요에 대해 떠올리는 시간이 돌아오니 새삼 살아온 시간이 길었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가 처한 현실에서 만나는 온갖 사람들과 온갖 이야기들, 그 사이에서 우리가 넘지 못하는 여러가지 문제점들, 연대해야 할 이유는 차고 넘치지만 삶이 파편화되어 그러지 못하는 것들, 그 사이에서 여기저기의 두 사람들의 유대는 가느다랗고 끊어지지 않는 것이어서 나는 지구인인가 생각하게 된다. 머나먼 곳에서의 전쟁이 나의 자동차 기름값에 영향을 주고, 환율에 영향을 주어 유로화로 환전할 때 경악을 금지 못하는 것처럼, 그리고 대통령의 발언 하나와 네이버 공문(!)에 삶이 직접적으로 침해당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하는, 나는 사십대의 중반을 향해가는 이 세상의 가장 가운데에 서 있다는 것을 이 소설을 통해 직감했다. 가장 가운데라는 것은 가장 정점이라는 것이고. 체력관리와 몸관리에 따라 더 길어질 수는 있겠지만 활동시기가 많이 남지 않은 축구선수 손흥민 처럼. 전성기라는 것은 이제 내리막만이 남았음을 어렴풋이 알게 된다. 내 삶의 전성기가 지금이라면 이제 나는 누구와 연대하여 삶의 다음 국면을 열어야 할까.
<보편교양>은 이 작가가 학교에서 근무하는 교사가 아닐까 생각했던 작품. 이미 2024 젊은작가상 수록집에서 만나봤던 작품이라 두 번째로 읽게 되었다. 쉽게 넘어가기도 하지만, 치밀한 작가의 전개 방식과 허투루 쓰지 않은 빽빽한 단어들이 속도감과 밀도감을 느끼게 했다. 나는 딱 이 주인공만큼만 살고 있다는 점에 공감하기도 반성하기도 했다. 우리는 대체로 투사/변절자 이렇게 구별하지만, 삶은 그 중간에 서 있다. 대체로의 사람들은 그 중간 어디에 서 있다. 그리고 자책감과 자신감 이런 감정들을 동시에 매일 안고 산다. 내가 할 수 있는 부분까지라도 하겠다는 일상과 나도 모르게 포기하게 되는 자잘한 신념과 가치관. 그 어디에서 나는 늘 헤매며 자책과 칭찬을 나에게 동시에 한다. 자아분열이 올 정도.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나의 삶을 살아가는 것은 대체로의 보편적인 삶이 아닐까 싶다. 딱 그 정도만큼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보편일 것이라 짐작하게 된다. 제목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보편교양.
줄을 그은 문장과 단어는 도처에 있었다. 빽빽한 문장과 장치, 이야기의 개연성을 위해 숨겨둔 여러가지 단어들이 톡톡튀는 창의력에 덧붙여 두께감이 없는 책이 아님에도 빠르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특히나, <무겁고 높은>이라는 작품에서 “버리기 위해 들어보고 싶다“는 내용이 큰 울림으로 공감되었다. 들어봐야 버릴 수도 있다. 버리는 일의 쉽지 않음이, 버리지 못하는 삶의 고단함이 내 입술을 꾹 다물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