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쉬워도。。。
11월이 되어 가을도 막바지에 이르렀다. 텃밭도 정리할 시점이다. 일 년 동안 울고 웃으며 가꾼 추억이 가득한 텃밭인데 내년에는 하지 않기로 했다. 자주 들러서 돌봐 줄 시간도 없고 무리를 했는지 통증이 심한 거위 발염이라는 병도 얻고 해서.
텃밭에 가서 보니 초가을 씨앗을 뿌린 열무와 무는 여전히 생명력 넘치게 자란다. 제 때에 솎아주지 않아서 무는 크질 못했지만, 무청을 잘라서 된장국을 끓이니 부드럽고 맛있다. 겨자채 등 쌈 채소 조금과 여린 부추도 가을의 끝까지 잘 자랐다.
이년생 어린 블루베리 나무 한 그루도 불그스름한 단풍이 들었다. 천 화분에 심겨 있어서 뿌리를 파서 가져오려고 했는데 벌써 꽁꽁 얼었는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뿌리가 깊게 내린 것 같고 물도 나오지 않으니 가져올 방법이 없다.
아까운 마음이 들어도 영하로 기온이 내려가기 전에 얼른 나눔을 해야겠다 싶었다. 블루베리 나무 한 그루와 텃밭에 심어진 열무와 무, 튼튼하게 세워놓은 지지대 등 가져갈 분을 모임 방에서 찾았다.
“제가 가져다 키울게요. 바로 앞 텃밭이요.” 역시나 무화과며 대추나무 등 몇 그루를 알뜰살뜰 가꾸시던 분이 바로 답을 주셨다.
지지대도 내년에 농사를 지으실 분들이 골고루 가져가신다고 했다. 열무와 무도 김치 담으시는 분이 잘 뽑아 가셨다고 문자가 왔다.
가을, 조금은 쓸쓸한 계절. 부엽토까지 퍼 와서 주며 아끼고 애써 키우던 식물들을 나누려니 한편으로는 섭섭하고 아쉬운 마음도 든다. 하지만 여건이 되지 않으니 누구라도 가져가서 먹고 내년에 유용하게 사용하는 게 좋지 않을까?
쌈 채소 조금과 부추와 국 끓일 무청 몇 개를 뽑고 밭을 정리했다. 왠지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 텃밭을 한 바퀴 둘러봤다. 날씨가 매서워지고 있어도 여전히 배추와 무 등 푸른 식물들이 노란 은행잎 이불을 덮고 잘 자라고 있다.
튼실한 배추와 무를 수확하시던 분이 반갑게 인사를 건네신다. 수확의 기쁨으로 물든 얼굴。처음 뵙는 분이지만 같은 텃밭에서 일하다 만나면 오가며 소소한 대화를 나누는 분들이 있다.
명리학에서도 가을은 숙살지기(肅殺之氣)의 기운이 있다고 한다. 만물을 죽이는 늦가을의 기운으로 초목을 말라 죽게 한다는 뜻. 하지만, 말라서 땅에 떨어진 잎은 다시 흙을 비옥하게 하여 내년에 다시 새잎이 돋아나게 하는 양분이 될 것.
숙살은 금(金) 기운의 특징으로 기운이 멈춰 안으로 수렴해 결실을 완성하는 기운이라고도 한다. 잎은 다 떨어져도 풍성한 열매가 맺히니 마무리를 잘하는 기운이다.
말을 못 하는 나무도 저리 예쁜 알록달록한 잎들을 떨구는 것이 힘들었을지도.
소중하게 키운 잎을 하나 남김없이 보내야 하는 계절이 매정하게 여겨질지도 모른다.
우리의 생도 놓아주고 다시 새로운 초록 잎을 띄울 준비를 해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