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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련 이다겸 Aug 09. 2022

마음을 담는 그릇

가족. 제사, 음식

   할아버지 제삿날이다이날은 다섯 며느리에 젊은 숙모젊은 질부를 포함하여 여덟 명이 큰집으로 모인다맏동서는 갖가지 나물 종류와 생선산적 해산물 등 시장을 보아서 재료를 준비해 놓는다집이 넓어 다행이다큰집에 도착하는 순서대로 부엌에 앉아서 콩나물시금치등 나물거리를 다듬어서 각자 맡은 분야 재료들을 챙겨서 재수를 만든다.  

   

    내 담당은 튀김이다식용유튀김 할 종류 고구마오징어새우와 튀김 솥튀김 담을 소쿠리를 챙겨서 베란다에 있는 작은 부엌으로 간다튀김용 밀가루 반죽에는 튀김 식감을 위해서 차가운 생수와 얼음치자 우려낸 물을 넣는다.

  고구마오징어는 적당한 크기로 자른다오징어는 수분 제거를 위해 밀가루를 골고루 묻혀둔다새우는 머리에 뾰족한 세모와 수염을 자르고 등에 있는 검은 내장을 제거한다밀가루를 묻힐 때 새우 꼬리는 튀김이 완성되었을 때 핑크빛을 유지하기 위해 밀가루를 묻히지 않는다튀김 온도를 맞추기 위해 불 위에 올려진 식용유에 소금을 넣어서 확인한다소금이 닿는 순간 식용유가 크게 소리를 내면서 방울이 많아지면 튀김을 시작한다.  고구마오징어새우 순으로 튀김을 한다튀김을 할 때 기름이 나빠지는 순서다한 종류가 끝날 때마다 사용한 식용유를 거름망에 거른다가라앉은 찌꺼기는 버리고 새 식용유 3분의 1을 섞어서 튀김 종류를 바꾼다튀김 도중 베란다 문을 열고 하늘을 보며 바깥 풍광도 즐긴다깔끔하고 노릇노릇한 튀김옷이 입혀져 잘 정리된 튀김 종류를 보면 기분이 좋다조상들도 좋아할 것이라는 생각에 정성을 다한다제사상에 놓을 튀김은 깔끔하고 모양이 좋은 것은 따로 담아 둔다작거나 모양이 못난 튀김은 가족들이 먹는다.     

   어느 해 제삿날사무실 업무로 튀김 준비를 하지 못했다큰 집에 오는 도우미 아주머니가 튀김을 하게 되었다퇴근하고 큰집에 들어서자 동서들이 튀김 박사가 없으니 엉망이 되었다고 빨리 가서 보라고 한다가지런히 담겨 있어야 할 튀김은 마음대로 담겨 있었다튀김옷이 잘 입혀지지 않았으며밀가루 반죽에 물이 많이 들어가고튀김 온도가 맞지 않아 생긴 일이었다정리가 되어 있지 않은 튀김은 내가 하던 튀김과는 많이 달랐다튀김 하나 집어서 먹어 보니 바삭거리는 식감이 없었다그날 이후 나는 튀김 박사로 불린다성격 좋은 맏동서는 넷째야 우리 시장 가서 튀김 장사해도 인기 있겠다.”는 말을 하면서 하하 호호“ 즐거움을 나눈다요리를 잘하는 셋째 동서한테서 배우고 인터넷을 찾아본 보람이 있었다지금도 제사 음식을 만들러 가기 전에는 인터넷 검색해서 특별한 아이디어가 있는지 찾아본다.


   제사 음식은 고인의 기호와는 상관없이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예법에 맞춰 준비한다근래에 와서는 고인이 좋아하는 음식을 추가해 올린다제사를 지낼 때도 가가례家家禮라는 말이 있듯이 상에 진설하는 방식도 집안에 따라 다르다     

 조상을 모시는 방법은 다양하게 변해간다제사 지내는 시간도 옛날에는 저녁 12시 넘어서 첫닭이 울기 전까지 제사를 지냈다요즈음은자손들 시간에 맞춰 이른 저녁 시간 조상에 대한 예를 갖추는 집이 늘어가고 있다제사는 자주 만나지 못하는 자손들이 모여조상을 추모하며 서로 안부를 나누고얼굴 보면서 음식을 나눠 먹는 집안 행사다.  여행지에서 차례 지내는 기사를 본다가족들이 모여 연휴를 즐기면서 조상도 모시는 에 대한 마음은 변함이 없다

  명절이 오면 시댁과 며느리 이야기가 많다결혼하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쉽지 않다나도 결혼해서 첫제사를 맞이할 때 걱정과 두려움이 많았다무나물을 만들기 위해 채를 썰어야 하는데 큼직하게 썰고 있는 나를 보던 고모님이 '무는 국거리 썰고 있냐.'라고 물었다무나물 썰고 있다고 했더니 큰 소리로 웃으며 고모님이 썰어준 기억이 난다집에 돌아와 무나물 채 써는 연습을 해서 이제는 잘 썬다인터넷에서명절이 오니 며느리와 시어머니 두 사람이 팔에 가짜 깁스를 했다는 글을 보았다명절은 1년에 2번인데 하는 아쉬움이 들기도 한다.

  다른 나라도 명절에는 가족과 함께 보낸다대만에서는 8월 15일 중 추지에(仲秋節) 당일에는가족 친지들과 사람들이 거리에 나와 고기를 구워 먹는다그 냄새로 인해 세상이 진동한다는 풍습이 전해져 오고 있다.

  미국 명절은 추수 감사 제다. 11월 마지막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 4일간 연휴를 즐기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간다조상들이 즐기던 음식을 준비한다구운 칠면조옥수수로 만든 빵고구마호박파이로 뜨겁고 푸짐하게 해서 나눠 먹는다.

  

   우리 시댁도 가족회의를 했다회의 결과, 내년부터 음력 9월 첫 주 일요일당일에 추석 차례와 1년 기제사를 함께 지내고설 명절에는 가족이 모여서 세배하고 덕담을 나누기로 했다. 성묘는 명절 당일은 차량 정체를 생각해 미리 술과 간단한 음식을 준비해서 예를 갖추어 다녀온다

 친정은 아버지의 뜻을 존중하여 옛 전통을 유지하고 있다직장 생활로 바쁜 올케들한테 감사하고 미안하다.

 조상께 감사하고 덕을 추모는 하되생전 고인이 좋아하던 간단한 음식과 과일 정도의 추모는 어떨까형식은 마음을 담는 그릇이다구로지감劬勞之感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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