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즈넉한 산사에서 참 나를 찾아본다. 일상을 벗어나기로 마음 정하니 떠나기 전 설렘이 주는 기대와 즐거움은 또 다른 매력이다. 일주문一柱門에서 시작된다. 일주문 “기둥이 일렬로 선 문”이라는 뜻으로 둘이 아닌 하나(不二), 일심을 상징하는 불교적 의미도 가지고 있다.. 일주문을 지나면 사천왕문이 있다. 이 문은 하늘로 들어가는 문이다. 문을 지나면, 하늘 사람이 되었으니 마음과 행동을 곱게 가져야 될 것이다. 불국 세계의 접근을 실감케 하고 동시에 경건한 마음이 생긴다.
부처님과 마주하는 시간 가슴에 담긴 잔잔한 파문이 고요함을 불러온다. 내면 깊숙이 내재된 참된 마음으로 합장한 손에 마음과 정성을 담아 본다. ‘영원히 변치 않는 참된 불제자가 되겠습니다. 부처님 감사합니다.’ 오롯이 홀로 시간 가짐은 세속 시간을 뒤로한 채 나 안의 나를 찾는 것, 가람 건축물들은 질서와 조화롭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추녀에 달린 풍경은 물고기를 닮았다. 물고기는 잠 잘 때도 눈을 뜨고 있다고 한다. 물고기처럼 수행자는 늘 깨어 있어야 함을 일러 주는 말이다.
템플스테로 새로운 인연을 맺는다. 낯선 이들과 새로운 첫 만남을 통해 서로 사고와 삶을 논할 수 있을까? 짐을 풀고 수련복으로 갈아입었다. 함께 동참한 사람들 50명 , 일본 등 외국인이 70%다.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 일본인 부부는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과 산사의 고즈넉함이 좋아 오래전부터 템플스테이 하는 절을 순회 중이란다. 자유분방한 유럽 쪽 젊은이들도 반갑게 와닿았다. 외국인들과 인사는 선생님 통역으로 끝났다. 간단한 소통은 몸짓과 눈으로 교감을 하고, 같은 공간에서 1박 2일 시간을 가진다.
자아성찰自我省察 시간이다. 부처님 전에 일 배를 하고, 실낱같은 줄에 염주 한 알 끼우며 마음 한편에 있던 걱정도 담아내고, 또 한 알 염주를 끼우며 직장에서 쌓였던 스트레스와 묵었던 감정들을 버린다. 한 알씩 끼워 완성시킨 108 염주,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염주를 들고 합장 인사드린다. 염주 만들 때 키웠던, ‘마음과 정신의 근육을 잊지 않겠다.’라고 다짐한다.
참회 시간이다. 하얀 백지에 네모 칸이 있다. 부처님 전에 일 배 할 때마다, 내 마음에 있는 사람들 이름으로 여백에 채워본다. 처음에는 좋은 감정으로 담아 놓은 지인들께 감사하는 이름 표기하고, 갈수록 반성하는 시간이 온다. 특별히 나쁜 기억으로 마음에 담긴 사람은 없지만, 여백을 채워 갈수록 평소 생각지 않았던 마음에 울컥, 뭉클, 감동이 주어지고, 부모님과 내 가족 이름을 부를 때는 눈시울이 붉어지며 마음이 아려왔다. 더 넓은 마음으로 나 자신 내면을 바라보며, 아름다운 생각과 의식으로 삶을 지향할 것을 다짐한다. 한 공간에서 다양한 시간 보내고, 간식으로 나온 떡은 별미로 정감을 나누며 먹는다. 외국인들과 함께 넓은 방에서 1박 동침을 한다.
새벽 예불 시간,
산사에 울려 퍼지는 은은한 범종소리에 온갖 생각이 뇌리를 채운다. 예불은 사물, 즉 법종, 법고, 운 판, 목어를 치는 의식이다. 법종은, 지옥고 중생을 위해서, 법고는 축생을 위해서, 목어는 물고기를 위해서, 운 판은 날아다니는 새, 짐승들 위해서 친다. 통칭, 법구 사물四物이라 한다. 새벽 법고(큰북) 치는 시간, 자연스레 스님들이 바뀌면서 부드러운 몸동작과 가벼운 팔의 움직임을 감동하며 지켜본다.
걷기 명상 시간이다. 숲길 속, 발길 닿은 곳, 하늘과 맞닿은 암자에서, 아름다움을 만끽한다. 한 폭 수채화 같은 자연 품속에서 스님 법문을 듣는다. 스님은 자유분방한 외국인들을 배려한다. 누워서 법문 들어도 좋다.라고 하니 동방예의지국이 아닌 외국인들은 자리에 눕는다. 나도 무척 부러웠다. 누운 사람, 앉아 있는 사람, 스님도~~ ‘하하’ 모두 웃음을 터트렸다. 각기 다른 세상 사람들이 하나 되는 모습, 인간이 사는 모양은 어디든 똑같다. 스님과 다담茶談 나누는 시간은, 템플스테이 생긴 동기와 절 생활을 듣는 뜻깊은 시간이었다.
템풀 스테이 가기 전 읽었던, 철학자 니체의 말이 생각난다.
니체는 병든 영혼을 치유하기 위해, 자신 내면을 고요히 성찰하는, 비타 콘템플라티바 (vita contemplate-va 사색적인 삶)를 복원해야 한다고 했다. 지난 삶을 반추해보며, 새로운 삶과 의미를 받아들이기 위해, 망각이란 단어와 조형력, 창조성의 조화가 필요함을 알았다.
나만을 위한 시간은 따뜻한 활기가 넘치는 시간들이었다.
불. 법. 승 삼보에 귀의하며 깨끗하고, 청정한 도량에 향을 사르고, 촛불 한 자루에 마음을 담았다. 두 손을 모아 정갈한 음식으로 발우 공양하고, 잡념이 말끔히 사라진 곳을 상큼함으로 가득 채웠다. “삶은 한 조각구름과 같은 것” 내가 어떤 존재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지 생각을 해보며, 수행을 더 많이 해야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 풍경 소리가 귓전에 와닿는다. 짧은 여정, 비움과 채움으로 의미 있는 알찬 시간들, ‘내 삶의 주공인은 나’라는 인식이 더 풍요로움을 준다.
나만의 108 염주를 손에 담아 본다. 한 알에 번뇌 망상을 버리고, 또 한 알에 삶의 무게를 내려놓는다. 스스로 꿴 108 염주를 보며, 번뇌를 끊고, 마음을 정갈하게, 삶의 무게가 느껴질 때 108 염주에 불. 법. 승에 귀의함을 잊지 않는 스토리텔링은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