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제사, 음식
할아버지 제삿날이다. 이날은 다섯 며느리에 젊은 숙모, 젊은 질부를 포함하여 여덟 명이 큰집으로 모인다. 맏동서는 갖가지 나물 종류와 생선. 산적 해산물 등 시장을 보아서 재료를 준비해 놓는다. 집이 넓어 다행이다. 큰집에 도착하는 순서대로 부엌에 앉아서 콩나물, 시금치, 무, 등 나물거리를 다듬어서 각자 맡은 분야 재료들을 챙겨서 재수를 만든다.
내 담당은 튀김이다. 식용유, 튀김 할 종류 고구마, 오징어, 새우와 튀김 솥, 튀김 담을 소쿠리를 챙겨서 베란다에 있는 작은 부엌으로 간다. 튀김용 밀가루 반죽에는 튀김 식감을 위해서 차가운 생수와 얼음, 치자 우려낸 물을 넣는다.
고구마, 오징어는 적당한 크기로 자른다. 오징어는 수분 제거를 위해 밀가루를 골고루 묻혀둔다. 새우는 머리에 뾰족한 세모와 수염을 자르고 등에 있는 검은 내장을 제거한다. 밀가루를 묻힐 때 새우 꼬리는 튀김이 완성되었을 때 핑크빛을 유지하기 위해 밀가루를 묻히지 않는다. 튀김 온도를 맞추기 위해 불 위에 올려진 식용유에 소금을 넣어서 확인한다. 소금이 닿는 순간 식용유가 크게 소리를 내면서 방울이 많아지면 튀김을 시작한다. 고구마, 오징어, 새우 순으로 튀김을 한다. 튀김을 할 때 기름이 나빠지는 순서다. 한 종류가 끝날 때마다 사용한 식용유를 거름망에 거른다. 가라앉은 찌꺼기는 버리고 새 식용유 3분의 1을 섞어서 튀김 종류를 바꾼다. 튀김 도중 베란다 문을 열고 하늘을 보며 바깥 풍광도 즐긴다. 깔끔하고 노릇노릇한 튀김옷이 입혀져 잘 정리된 튀김 종류를 보면 기분이 좋다. 조상들도 좋아할 것이라는 생각에 정성을 다한다. 제사상에 놓을 튀김은 깔끔하고 모양이 좋은 것은 따로 담아 둔다. 작거나 모양이 못난 튀김은 가족들이 먹는다.
어느 해 제삿날, 사무실 업무로 튀김 준비를 하지 못했다. 큰 집에 오는 도우미 아주머니가 튀김을 하게 되었다. 퇴근하고 큰집에 들어서자 동서들이 튀김 박사가 없으니 엉망이 되었다고 빨리 가서 보라고 한다. 가지런히 담겨 있어야 할 튀김은 마음대로 담겨 있었다. 튀김옷이 잘 입혀지지 않았으며, 밀가루 반죽에 물이 많이 들어가고, 튀김 온도가 맞지 않아 생긴 일이었다. 정리가 되어 있지 않은 튀김은 내가 하던 튀김과는 많이 달랐다. 튀김 하나 집어서 먹어 보니 바삭거리는 식감이 없었다. 그날 이후 나는 튀김 박사로 불린다. 성격 좋은 맏동서는 “넷째야 우리 시장 가서 튀김 장사해도 인기 있겠다.”는 말을 하면서 ”하하 호호“ 즐거움을 나눈다. 요리를 잘하는 셋째 동서한테서 배우고 인터넷을 찾아본 보람이 있었다. 지금도 제사 음식을 만들러 가기 전에는 인터넷 검색해서 특별한 아이디어가 있는지 찾아본다.
제사 음식은 고인의 기호와는 상관없이,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예법에 맞춰 준비한다. 근래에 와서는 고인이 좋아하는 음식을 추가해 올린다. 제사를 지낼 때도 가가례家家禮라는 말이 있듯이 상에 진설하는 방식도 집안에 따라 다르다.
조상을 모시는 방법은 다양하게 변해간다. 제사 지내는 시간도 옛날에는 저녁 12시 넘어서 첫닭이 울기 전까지 제사를 지냈다. 요즈음은, 자손들 시간에 맞춰 이른 저녁 시간 조상에 대한 예를 갖추는 집이 늘어가고 있다. 제사는 자주 만나지 못하는 자손들이 모여, 조상을 추모하며 서로 안부를 나누고, 얼굴 보면서 음식을 나눠 먹는 집안 행사다. 여행지에서 차례 지내는 기사를 본다. 가족들이 모여 연휴를 즐기면서 조상도 모시는 ‘효’에 대한 마음은 변함이 없다.
명절이 오면 시댁과 며느리 이야기가 많다. 결혼하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쉽지 않다. 나도 결혼해서 첫제사를 맞이할 때 걱정과 두려움이 많았다. 무나물을 만들기 위해 채를 썰어야 하는데 큼직하게 썰고 있는 나를 보던 고모님이 '무는 국거리 썰고 있냐.'라고 물었다. 무나물 썰고 있다고 했더니 큰 소리로 웃으며 고모님이 썰어준 기억이 난다. 집에 돌아와 무나물 채 써는 연습을 해서 이제는 잘 썬다. 인터넷에서, 명절이 오니 며느리와 시어머니 두 사람이 팔에 가짜 깁스를 했다는 글을 보았다. 명절은 1년에 2번인데 하는 아쉬움이 들기도 한다.
다른 나라도 명절에는 가족과 함께 보낸다. 대만에서는 8월 15일 중 추지에(仲秋節) 당일에는, 가족 친지들과 사람들이 거리에 나와 고기를 구워 먹는다. 그 냄새로 인해 세상이 진동한다는 풍습이 전해져 오고 있다.
미국 명절은 추수 감사 제다. 11월 마지막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 4일간 연휴를 즐기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간다. 조상들이 즐기던 음식을 준비한다. 구운 칠면조, 옥수수로 만든 빵, 고구마, 호박파이로 뜨겁고 푸짐하게 해서 나눠 먹는다.
우리 시댁도 가족회의를 했다. 회의 결과, 내년부터 음력 9월 첫 주 일요일, 당일에 추석 차례와 1년 기제사를 함께 지내고, 설 명절에는 가족이 모여서 세배하고 덕담을 나누기로 했다. 성묘는 명절 당일은 차량 정체를 생각해 미리 술과 간단한 음식을 준비해서 예를 갖추어 다녀온다.
친정은 아버지의 뜻을 존중하여 옛 전통을 유지하고 있다. 직장 생활로 바쁜 올케들한테 감사하고 미안하다.
조상께 감사하고 덕을 추모는 하되, 생전 고인이 좋아하던 간단한 음식과 과일 정도의 추모는 어떨까, 형식은 마음을 담는 그릇이다. 구로지감劬勞之感을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