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날벌레> 15회
그녀는 모든 것을 잃은 후에 다시 서울 어느 대학가의 고시원으로 돌아왔다.
이번에 얻은 작은 방에는 조금 더 큰 창이 있었고, 개인 화장실도 있었다. 벌레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하루 종일 고시원 총무로 일하며 건물 복도를 쓸고 닦고, 주방 그릇을 설거지하고, 음식을 채우고, 가끔 마주치는 세입자들과 감정 없는 안부를 나누었다. 그리고 그 모든 일과를 스마트폰으로 촬영하여 일주일에 한 번, 유튜브 영상으로 올렸다.
얼굴 공개를 하지 않고 익명으로 활동 중인 그녀의 닉네임은 ‘날벌레’였고, 오늘 올린 영상의 제목은 ‘30대 중반, 고시원 총무 VLOG’였다.
채널 구독자는 1만 명 남짓이었지만, 누구도 그녀에 대해 알지 못했으며 굳이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구독자들이 남긴 댓글과 소소한 후원금을 확인하며 즐겁게 하루를 시작했고, 조금이라도 기분 나쁜 댓글이 있으면 곧바로 지우거나 숨기거나 차단했다.
다행히도 대부분의 구독자가 그녀를 응원했고, 그중에서도 몇몇 구독자는 그녀의 오랜 친구처럼 따스하고 다정한 말들만 건네주었다.
무언가를 특별히 새롭게 할 필요도 없었고, 그저 매일을 살아가는 소소한 일상만 촬영해서 올려도 충분했다. 그녀는 이제 다시 먹을 수 있게 되었고, 서서히 정상 체중으로 돌아왔다.
얼마 후 그녀는 유명 햄버거 프랜차이즈 브랜드의 광고 지원으로 상품권을 받았고, 오랜만의 휴일에 근처에 생긴 지점에 혼자 점심을 먹으러 갔다.
낙엽이 지고 있는 가로수가 정면에 내다보이는 탁 트인 창가 자리에 앉았다. 옆 벽에 모델인 재나가 홍보하는 신제품 버거 광고 사진이 붙어있었다.
사진 속 재나는 건반 같이 새하얀 이를 드러내고 도도한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물 한 모금도 삼키지 못한 것 같은 앙상한 손가락은 토핑이 가득 들어있는 커다란 햄버거를 간신히 붙들고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재나의 얼굴이 낯설었다.
다시 보니 재나는 자신과 전혀 닮은 구석이 없었고, 과거의 얼굴조차 사라져 이제 저 모습이 정말 재나가 맞는지도 알아볼 수가 없었다.
곧 진동 벨이 요란하게 울렸고, 그녀는 서두르지 않고 주문한 음식을 가지고 와서 창가 앞에 다시 앉았다.
두꺼운 패티와 채소로 꽉 찬 햄버거는 두 손으로 잡아야 할 만큼 크고 두껍고 무거웠지만 꽤 먹음직스럽게 보였다.
그녀는 햄버거 포장을 벗기고 누구의 시선도 신경 쓰지 않은 채 크게 입을 벌려 한입 가득 베어 물었다. 오랜만에 맛보는 감칠맛이 혀끝에서 번져나갔다.
"그게 뭐가 그렇게 맛있니?"
언제인가 직접 만든 투박한 햄버거를 맛있게 먹던 그녀를 보며 웃고 있던 엄마의 얼굴이 떠올랐다.
양배추샐러드에 햄 몇 조각과 치즈 한 장, 케첩과 마요네즈만 뿌려진 소박하고 단출했던 그 햄버거.
그거면 충분했었는데.... 어디서부터 잘못됐던 것일까.
입 안의 음식물이 목구멍으로 넘어가기 무섭게, 그녀는 다음 한 입을 베어 물었다.
광고 한 편을 찍기 위해 수십 번이나 씹고 뱉었던 음식들.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했으면서도 엄마를 향해 활짝 웃던 앳된 리나의 얼굴이 스치는 순간,
그녀의 눈앞에 그것이 다시 나타났다.
그것은 이제 쥐고 있는 햄버거만큼 몸집이 더욱 커져 있었지만 그녀는 놀라지 않았다. 반가움을 느끼지도 않았고 호흡이 가빠지지도 않았다.
그저 천천히 햄버거의 맛을 음미하듯 입안에서 사라질 때까지 잘게 여러 번 씹으면서 쇼윈도 바깥쪽에서 가늘게 날갯짓하는 그것을 감상하듯 지켜볼 뿐이었다.
그녀가 그 커다란 햄버거 하나를 거의 다 먹을 때까지도 그것은 투명한 유리창에 박제된 것처럼 머물러 있었고, 새까만 눈알로 햄버거 가게에 매달린 CCTV 렌즈처럼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그것이 바로 앞에 있지만, 이제 그것을 잡을 수도 없고, 잡을 필요도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저 무심하게 스마트폰 카메라 기능을 켰고 오랜만에 보는 이 기이한 곤충을 유튜브 소스 영상으로 촬영해야겠다고도 생각했지만, 갑자기 목이 메어 뒤에 있던 키오스크 기기로 가서 콜라를 주문할 뿐이었다.
다시 자리로 돌아오자, 그 사이 그것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그녀는 남은 햄버거 한 입을 입 속에 넣었다. 씹었다. 삼켰다.
진동벨이 울리면 콜라를 가져올 것이고, 지금으로서는 그것 외에 더 바랄 것이 없었다.
소설 <날벌레> 여기에서 마칩니다.
읽어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리며, 새로운 소설로 다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