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뇌의 기술 아홉 번째 이야기
나는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었다.
내 기억 속에 대학이 이렇게 삶에 많은 영향을 끼쳤는지는 이 글을 쓰면서 비로소 느껴지고 있다. 당시에는 소문이 흉흉했다. 또 누군가가 자살을 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학기 초가 되면 의례 소식이 들려오곤 했는데. 이번엔 정도가 심했나 보다 지역 신문을 넘어 전국 방송에 까지 뉴스를 타기 시작했다.
자살을 하는 사람들의 감정은 당연하게 모두 다를 것이다. 나는 당시 대학 4학년이었고 이제 곧 졸업인데 사회로 나아가는 것이 두려웠다. 순수했던 내가 사회에 나가는 순간 몸과 마음이 더럽혀질 것 같았다. 우습게도 자살 관련 자료를 찾아봤던 것 같다. 어떤 방식이 가장 고통이 덜할지 말이다.
그날을 뚜렷이 기억한다. 밤이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옥상에 올랐다. 그리고 난간 위에 까지 올라서기도 했던 것 같다. 가슴이 뛰었고 누군가 나에게 말을 거는 것 같았다. 잠시만요. 정신을 차렸을 때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지 두려웠다. 그리고 다음 날 누군가 옥상에서 사고가 있었다는 소식이 들려왔었다.
나는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했다. 마침 학교에서는 상담실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그곳을 찾아가기로 했다. 예약을 하고 기다리는데 앞시간에 끝나고 나오는 친구는 나의 학과 동기였다. 저 친구도 상담을 받으러 왔구나.
상담실에 들어가니 중년의 한 여자선생님이 원탁 옆 의자에 앉아계셨다. 나는 정신과 선생님인 줄 알았는데 심리상담사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리고 그녀는 나에게 본인이 거울이라고 생각하고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해보라고 했다. 그녀는 별다른 반응 없이 나의 이야기를 듣고만 있었는데 나는 갑자기 왈칵 눈물이 났다. 어떤 트릭을 썼는지 나는 나의 마음속 깊은 곳에 숨겨둔 이야기까지 얘기를 하게 되었다.
한 번도 꺼내 본 적 없는. 내 심연의 깊은 곳에 꽁꽁 감추었던 둥글고 둥근 커다란 무엇이 불쑥 물 위로 떠오른 느낌이었다.
아무도 봐서는 안된다. 아무도 들어서는 안된다.
나의 몸은 가벼워졌다. 어쩌면 그녀는 나의 삶에서 아무 관계가 없는 사람이기에 내가 솔직해졌는지 모르겠다. 그녀는 모든 이야기를 듣고 마침내 냉철하게 나에게 3가지 특징과 성향에 대해 말해 주었다.
그것은 아주 아팠다. 너무 날카롭고 너무나 냉정한 평가였다. 난 도망치고 싶었고 쥐구멍이라도 숨고 싶었다. 약간 소리쳤던 것 같다. 당신이 나에 대해 뭘 아냐고. 한 시간 정도 얘기만 듣고 어찌 그리 얘기할 수 있냐고. 나는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왔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나면서 난 나 자신이 부끄러워 왔다. 곱씹어 보면 그녀의 3가지 지적이 하나도 틀린 것이 없어 보였다. 어떻게 나에 대해 이렇게 정확하게 아는 사람이 있는지 놀랍기까지 했다. 그녀의 아픈 지적은 내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많은 도움이 됐다고 자신한다. 그중 한 가지는 ‘미래 망상(그녀가 한 단어는 아니고 내가 명명했음)’으로 미래에 하고 싶고 되고 싶은 일만 머릿속에 가득 생각하지 그것을 위한 현실의 준비와 노력은 아무것도 없는 것에 대한 지적이었다.
현재가 없는 미래란 어디에도 없는 거야.
이때의 지적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최고 성공의 모습보다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곤 했다. 알 수 없는 미래를 상상하기보단 현재의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기 위한 노력에 집중하게 되었다. 객관적으로 나를 바라보는 일은 살아가면서 한 번 이상은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하나의 큰 방향에서만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면 순간순간 노력은 언젠가 원하는 미래에 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가끔씩 나는 거울을 보곤 한다. 그리고 혼잣말로 대화를 하곤 한다. 표현할 수 없는 일은 정리가 안 됐다는 말이다. 명확하게 표현이 되고 정리가 된다면 가끔 그 후에 내가 할 일은 스스로 명확해지기도 한다. 수다는 삶의 활력소가 될 때도 있다. 가까운 누군가와의 수다가 부담이라면 거울을 보고 스스로와의 수다도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