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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세 번째 출구

커피 한 잔과 기적

by 가가책방

감은 일을 마치고 집으로 가기 전에 늘 단골 카페에 들렀다. 마치 퇴근을 카페로 하는 식이었다. 카페가 쉬는 월요일이면 감은 퇴근을 하지 않고 다시 출근을 하는 기분이 되기도 했다. 감은 기분을 곱씹었다. 왜 이런 기분이 되는 건지, 좋은 건지, 나쁜 건지 확실히 해두고 싶었다. 천천히 단골 카페와의 기억을 되짚어갔다. 처음에는 여행 왔다가 들렀다. 저녁 일곱 시인데 작은 도시 원도심에는 문을 연 카페가 드물었다. 숙소 가까운 곳에는 단골이 된 카페가 유일했다. 젊은 사장은 한때 원도심 어디나 사람으로 북적거려서 골목을 걸을 때면 어깨를 부딪히며 다녔다고 했다. 이제는 하루 종일 걸어도 지나치는 사람이 몇 명인지 셀 수 있을 만큼 인적이 줄었다. 어쩌면 사람을 기다리는 일이 고단해서 다들 일찍 쉬러 가는지도 몰랐다. 기다림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그럴만했다. 기약이 없는 기다림은 사람의 마음을 몹시도 지치게 하기에.

드물게 손님이 왔다. 젊은 사장은 큰 도시에서 고향으로 돌아와 카페를 시작한 게 이 년 전이라고 했다. 감은 낯선 사장에게 자신의 큰 도시 생활을 얘기했다. 최근 부쩍 변화가 커진 동네 이야기나, 진절머리 나게 넘치는 차와 사람들 이야기. 큰 도시에서는 별로 얘깃거리도 아닌 게 남의 얘기를 하는 것처럼 흥미진진해졌다. 감은 처음 들른 카페가 문을 닫는 시간까지 자리에 앉아 있었다. 커피는 세 번이나 다시 받아서 마셨다. 쓴 맛에 무감해진 감에게 적당히 신맛 나는 커피가 입맛에 맞았다. 젊은 사장은 커피는 취향이라 절대적으로 맛있는 커피라는 건 없다고 제법 단정적으로 말했다. 감은 처음으로 사는 곳을 정하는 게 커피를 고르는 것과 별로 다르지 않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거의 모두가 그렇게 못하고 있을 뿐 자기에게 맞고 더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도시에서 살고 싶어 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생각은 더 나아가서 그럼 이 도시에서 살아보지 못할 건 또 뭔가 싶어지는 거였다. 취향을 알기 위해 마시는 커피를 바꿔보는 모험이 필요하듯 사는 곳을 바꿔보는 경험도 필요한 것 아닐까.

반년 후 감은 일주일에 3일이나 4일씩 작은 도시에 머물기 시작했다. 매일 들러서 단골이 된 카페 젊은 사장이 머물만한 집을 알아봐 줬다. 감은 하는 일 없이 작은 도시를 돌아다녔다. 걷거나 자전거를 탔다. 이른 아침에도, 한낮에도, 늦은 밤에도 걷거나 뛰었다. 작은 도시가 몸에 잘 맞았다. 하루는 큰 도시에서의 삶이 너무 크거나 작은 옷을 입고 견디는 시간 같다는 생각이 들어 메모해두기도 했다. 얼마나 머물게 될지 무엇도 확실하지 않았지만 불안하지 않았다. 산 입에는 거미줄이 치지 않는다. 구하면 도움은 어디서든 올 테니. 감에게 단골 카페는 단순히 카페인을 채우는 공간이 아니었다. 취향에 맞는 커피가 있고 한 잔이나 두 잔을 마시도록 끝나지 않는 대화가 있고 사람이 있는 쉼터였다. 처음 여행 와서 작은 도시의 쉴만한 곳을 찾던 이방인이던 자신을 정착하게 했던 공간, 감이 지금 운영하는 공간을 시작하게 한 공간이었다. 감에게 단골 카페는 공간이 향해야 하는 하나의 규칙이었다. 낯선 도시 어딘가에서 내 집만큼이나 편안한 작은 공간을 발견하는 기쁨이 흔해지길 바랐다. 별일 없는 하루를 나누고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은 오늘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서로의 무사함을 확인하는 일이 하나의 의식처럼 이루어졌다. 감이 단골 카페 휴일에 느낀 기분은 의미가 있었다. 머물고 들를 자리를 지키는 다른 방법을 몰랐다. 작고 사소하더라도 꾸준한 애착을 품기와 최소한의 기여를 이어가는 것 말고는. 매일 카페에 들르는 일이나 휴일에 갈 수 없음을 아쉬워하는 마음이 감의 기도였다. 오래 남아 달라는, 떠나지 말라는 바람이었다.

감은 할머니가 세상을 떠난 이후로 신에게 기도하기를 그만뒀다. 신이 기도를 듣는지 아닌지 알거나 모르는 걸 떠나 기도가 닿았다고 해도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신이 돕는 방식과 사람이 믿는 방식이 다르다면 그건 도움일까 방해일까. 감은 극단적인 가정도 떠올렸다. 평안을 주옵소서 하는 기도를 듣고 불의의 사고를 보내 자신의 곁에 두기로 했다고 하면 누가 막을 수 있으며, 어떤 사람이 감사하며 받아들일까. 감은 기도하지 않고 차라리 원망하는 게 낫다고 믿었다. 원망만 늘어놓지 않기 위해 스스로 할 수 있는 걸 했다. 카페로 향하는 발걸음은 기도였고, 따뜻한 커피 한 잔은 기도가 이루어진 증거였다. 감에게는 매일이 기적이었다. 기적이 흔했다.

2025. 08. 03. 12:05-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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