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는 현시점.
갑작스레 겨울 날씨를 맞이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하더라도 11월인데 날씨가 따뜻하다 싶더라니 그 말이 쏙 들어가 버렸다.
한순간에 추워진 날씨는 이제 가을에서 겨울로 접어들고 있었다. 아직 나뭇가지에 매달린 수많은 잎사귀들이 우수수 떨어지고 앙상하게 마른 가지를 바라볼 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리라.
겨울이 되면 상로수를 제외한 나무들은 앙상한 나뭇가지 위에 흰 눈꽃을 피워낸다.
피워낸다기보다 자리를 양보한다는 게 맞겠지.
나무에 잎사귀 대신 풍성한 눈꽃이 자리하게 되면 온 세상이 하얗게 물든다.
사람의 발걸음이 닿지 않는 곳에는 새하얀 눈이 소복이 쌓여있다. 그리고 소복이 쌓인 눈을 보면 몇 년 전 겨울이 생각난다.
그날은 폭설이 쏟아져 한 걸음 한걸음 자리에서 떼기도 힘든 날이었다.
버스는 언제 올는지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하늘에서는 계속 굵은 눈발이 날렸다. 눈을 치우는 이가 보았다면 희망 따위 없을 정도로 말이다.
당시 아침 당직이었던 나는 평소보다 약간 일찍 집에서 나섰다. 7시를 조금 넘긴 시간, 꽤나 쌓인 눈발에 밖에 돌아다니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입에서는 새하얀 입김이 새어 나오고 '추워, 추워'라는 말만 중얼거리고 종종걸음으로 출근을 하던 길이었다.
대학병원 정문 앞을 지날 때 롱패딩을 입은 남자가 손에 이상한 무언가를 가지고 서서 무언가를 사부작 거리고 있었다. 롱패딩 밑으로 빼죽 나온 환자복과 맨발에 슬리퍼 차림은 보는 이로 하여금 춥게 만들었다.
추운데 저기서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걸까.
출근길임에도 불구하고 호기심에 천천히 속도를 낮추고 빤히 바라봤다.
손에 집어든 것은 눈오리 집게였다.
이른 시간, 병원에 쌓인 눈으로 열심히 오리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마치 오리 공장 같았다.
오리가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점점 증식했고 어느덧 난간에 주르르륵 줄지어 서 있었다. 그 모습이 퍽 귀여웠다.
이후 출근한 직장 동료에게 아침에 내가 보았던 오리 공장의 남자에 대해 이야기했다. 별거 아닌 게 참 즐거운 대화소재였다. 점심을 먹고 아침에 보았던 오리를 구경하려 뛰쳐나갔다.
난간에 자리했던 몇 안되던 오리들은 그새 사람이 지나는 길 가에도 길게 늘어져 있었다. 오리밭이 따로 없었다. 햇빛에 녹아버린 오리들도 있었지만 아직 눈과 입이 온전한 오리를 주워 들었다. 이게 뭐라고 뛰쳐나왔다.
그 남자가 어떤 맘으로 오리를 잔뜩 만들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몸이 아픈 가운데 눈이 온다는 소식에 눈오리 집게를 주문해서 그렇게라도 겨울을 즐겼을지도 모르고, 내 생각과 다르게 그냥 눈이 많이 왔으니까 원래 가지고 있던 눈오리 집게를 사용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남자의 행동으로 많은 이들에게 웃음을 안겨주었으리란 건 변함이 없을 테다.
무채색의 출근길에 미소를 짓게 만들었고, 점심시간 뛰어나갈 정도로 소소한 즐거움을 안겨주었다. 나와 직장동료에게뿐 아니라 우울한 맘, 지친 맘으로 병원을 방문한 이들에게 잠시 웃음 지을 시간을 안겨주었을 테다.
벌써 수년이 지났음에도 겨울만 되면 나는 눈오리 공장의 천사가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