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당신의 계절은 언제인가요?
한때는 나만 뒤처진 것 같고, 내 삶의 시계만 늘 제자리에 멈춰 있는 것 같아 불안했다.
마흔이 넘은 지금, 다들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혹시 나만 잘못 살고 있는 건 아닐까?
경쟁하듯 앞서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늘 답답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누군가 정답을 알려주길 바랐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진짜 내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언제 행복을 느끼는 사람인지 깊이 고민해본 적이 없었다. 그저 남들이 추구하는 행복을 따라가면 나도 행복해질 거라 믿고 있었다.
결혼과 출산은 나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아내와 엄마가 된다는 것은 ‘나’를 희생하고,
자유를 잃는 일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경험해보니 그 생각은 틀렸다.
결혼을 통해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웠고,
아이를 통해 사랑을 주고받으며 성장하는 법을 배웠다. 그 길 위에서 나는 비로소 진짜 어른이 되어갔다.
요즘은 ‘비혼, 만혼, 딩크, 저출산, 노산’ 같은 단어들이 낯설지 않다. 하지만 그 선택들이 정말 자신의 진심에서 나온 걸까? 나 또한 그저 두려움과 추측 속에서 길을 잃고 있었다.
마흔이 넘어서도
내게 결혼과 출산은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
사람을 만나도 실망과 허함으로 끝나기를 반복했고, 어렵게 결혼을 하고서도 다시 난임이라는 큰 벽을 만났다. ‘왜 내 삶은 무엇 하나 쉽게 흘러가지 않을까?’
수없이 되뇌며 포기하고 싶었던 날들이었다.
그러나 나는 47세의 끝자락에서 기적처럼 아이를 안았다. 5년 동안 12번의 시험관 이식을 했고,
그 시간 동안 무수히 포기하는 여성들을 보았다.
그들의 눈물 속에서 포기라는 것이 얼마나 큰 용기인지 배웠다. 내게 찾아온 이 기적은 순전히 운의 영역이었다고 믿는다. 그래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 길을 걷고 있는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나 희망이라도 전하고 싶어서.
난임의 가장 큰 고통은 외로움과 무력감이었다.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하는 혼자걷는 외로움,
아무리 노력해도 바꿀 수 없는 현실,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무력감.
나는 그 속에서 가끔 40대 중후반 출산 후기를 미친 듯이 찾아 읽었다. 낯선 글 한 줄이 내게 사막의 오아시스 같았다. 혹시 지금도 그때의 나처럼 긴 터널을 걷는 이가 있다면, 그 외로움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 싶었다.
흔히들 말하는 결혼적령기를 넘긴 40대의 결혼,
그리고 극노산의 영역에 들어가는 40대 중후반의 출산. 그 길은 생각보다 쉽진 않았다. 그 과정에서 나는 받아들임과 내려놓음을 배웠다.
40대가 되고 '이제는 혼자 사는가보다'하고 체념할때쯤 결혼이 내게 다가왔다. 시험관시술도 '할만큼 했으니 그만하자'라는 시점에 아기가 내게 왔다. 늘 더 이상 할게 없다 싶어 다 내려놓고 체념할때쯤 내게 찾아왔다.
많은 난임 여성들이 시술에 성공하면 그간의 모든 고생을 보상받을 거라 믿으며 그 길을 견딘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출산을 하고 육아를 시작했어도, 그때의 기억은 나에게 여전히 상처였다.
기차역에서 기차를 기다리거나 난임병원 근처를 지날때면 여전히 가슴 한곳이 쓰리듯 아프다. TV속 시험관이야기가 불편해 채널을 돌리기도 한다. 난임여성들은 시술에 성공하면 대부분 주사기와 관련용품을 모두 버리고 난임카페를 조용히 탈퇴한다. 잊고싶은 기억이기 때문이다. 나 또한 조용히 덮어두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는 용기를 내어 그 때의 기억의 조각을 하나하나 꺼내어 마주하려 한다. 다시 앞으로 나아가고 싶기 때문이다. 그 첫발을 디디기 위해 이 글을 썼다.
예전에 유럽 여행을 갔을 때, 단풍나무길을 걸은 적이 있었다. 그때 가이드가 이렇게 말했다.
“우리나라의 가을 단풍만큼은 못하죠? 한국은 사계절이 뚜렷하지만, 여기는 늘 봄가을 같아요. 살기에는 좋지만, 그래서 단풍이 그다지 예쁘지 않답니다. 한국의 가을 단풍이 더 아름다운 이유는 뚜렷한 사계절을 견뎌냈기 때문이죠.”
사람의 인생도 이와 같지 않을까?
늘 좋은 계절만 사는 인생보다,
봄과 여름, 비바람 치는 계절을 모두 견디며 맞이한 가을이 더 찬란할지도 모른다.
중년의 우리는 그 계절들을 모두 지나왔기에 인생의 깊이와 지혜가 생기는 것이 아닐까?
꽃마다 피는 계절은 다르다.
모두가 봄꽃이라고, 나까지 꼭 봄에 피어야 할 필요는 없다. 나는 늦게 피어나는 가을 단풍일지도 모른다. 잘 물든 가을단풍이 봄꽃보다 훨씬 더 아름다울 수 있다. 지각생으로 시작된 나의 결혼과 출산. 이제 나는 아내로, 엄마로서의 또 다른 계절을 맞이하려 한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자신의 계절을 기다리는 중일지도 모른다. 아직은 그 계절이 오지 않았을 뿐이다. 당신만의 계절을 만나 힘차게 만개할 그 날이 오기를...
당신의 가장 행복한 시절이 아직 오지 않았기를...
언젠가 당신만의 계절을 만나 그 시절을 따뜻하게 추억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조금은 서툰 저의 첫 브런치북을 30화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신의 인생도 분명, 당신만의 속도로 꽃피고 있을 거라 믿습니다. 함께해주셔서 정말 고마웠습니다.
이 이야기는 여기서 멈추지만, 브런치2에서는 또 다른 제 삶을 가감 없이, 제 속도로 보여드리려 합니다. 그 자리에서 다시 만나길 바랍니다.
제 개인 블로그에도 난임과 관련된 글이 있어요. 필요하신분들 참고하세요.
https://blog.naver.com/kjchoi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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