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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장에 햇살을 채우면
12화
브뢰첸과 당부
24.08.15 11:00 씀
by
프로이데 전주현
Aug 16. 2024
유리창은 솔직해서 주변 풍경을 그대로 내비치는 데 일가견이 있었고 가로수는 친절해서 바람 한 올에도 살랑일 줄 알았지
어느 날 유리창은 여름의 일부를 온몸으로 복사했고
차도 옆에 차도
가로수 옆에 좀 더 살랑이는 가로수
의 모습을 그대로 따라 입었지
나는 유리창 옆을 지나 고소한 브뢰첸*을 사러 가는 중이었고 너는 날고 있었지 가로수 옆이 아니라 유리창 옆을
눈앞에 살랑이는 나뭇잎도
잎 사이로 꽤 튼실해 보이는 가지도 보이는데 내려앉
아 쉴 순 없다니
잔혹하지만 그럴 만도 하지
유리창은 솔직했고 가로수는 친절했으니까
우습게도 나는 너를 비웃었고 손가락 하나 치켜들지 않았지 그랬더라면
네가 날갯짓을 그만두고
내게 내려앉아 쉬어갈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내 배를 채울 생각만 했어
당황하던 네 날갯짓이 생각난 건 브뢰첸을 한 아름 품에 안고 집으로 걸은 후-손으로 브뢰첸을 바삭 부순 다음에-식탁 위 빵 부스러기를 못 본 채-생 햄과 슬라이스 치즈, 오렌지 잼을 브뢰첸 반 쪽에 얹어- 먹고- 배부른- 밤의 한가운데- 일기장을 펼칠 때
(아 너무 늦었나)
식탁 위 부스러기를 손바닥으로 꾹꾹 눌러 담는 마음으로 일기를 썼어 좀 더 솔직해지고 친절해지자면서 여름날의 유리창과 가로수를 닮아가자고
*브뢰첸 : das Brötchen. 작은 빵. 아담한 크기의 독일식 바게트(곡물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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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다 버린 구원을 너와 함께 주워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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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음지기의 쓰는 사람. 독일어 강사이자 문장 수집가, 스크랩북 메이커. 라디오와 함께 하는 일상과 평생 외국어를 공부하는 인생을 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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