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의 발견
갑작스레 여행을 다녀왔다. 실수와 우연과 선의와 호의가 만나 벌어진 일. 서울에서 한 시간 반 거리를 이동했다. 풍경이 바뀌자 새로운 기분이 찾아들었다. 쫓기는 기분이 사라지고 머무는 마음이 생겼다.
여행을 좋아한다. 언젠가는 여기와 다른 삶을 바라 떠나기도 했지만 지금은 생활에 젖어 잊고 마는 일상의 귀함을 다시 보기 위해 떠난다. 반복되는 생활로 탁해진 안경을 벗고 마음과 시선이 일치하는 찰나를 기대한다. 그러고 나면 내 자리, 내 몫의 생활이 그리워진다. 마음과 시선이 합치된 상태로 돌아올 수 있다.
이번처럼 갑작스러운 떠남은 뭐라 불러야 할까. 전자도 후자도 아닌, 하나의 일탈. 하루 전날 ‘가보자!’하고 용기를 다져보는 시도. 시의 한 연에서 다음 연으로의 도약처럼 아주 멀지도, 그렇다고 식상하게 가깝지도 않은.
날이 습하다 못해 푹푹 찌더니 비가 내렸다. 밤사이 지붕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가 멀리서 들려오는 파도 소리처럼 귓가를 맴돌았다. 다음날 눈을 뜨고도 한참을 누워 빗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툭, 투둑!”
가볍고 균일하게 떨어지는 빗방울 사이로 드물게 무거운 것이 둔탁하게 부딪히며 소리를 냈다. 문을 열어 밖을 보니 벌어진 밤송이들이 불가사리처럼 바닥에 펼쳐졌다. 갈색으로 짙어진 밤 알갱이들이 돌멩이처럼 몸을 웅크렸다. 기다리던 마음이 영글었다.
무언가를 품고 둥그레진 것들이 좋다. 공기의 열기와 습기를 품었던 구름이 작고 둥글게 뭉쳐낸 빗방울도, 커다란 밤나무가 겨울과 봄, 여름을 거쳐 가을이 되어 풀어놓는 세모지게 둥근 밤송이도.
홀로는 만들어내지 못했을 것. 주변과 결합하며 자라고 부글거리고 끓어오르다 툭, 터지고 마는 것. 후련해지기도 하는 것. 그러면 지나온 시간에 다른 이름이 붙는 것. 구름의 시간은 빗방울이, 밤나무의 시간은 밤송이가 된다. 나와 당신의 시간엔 어떤 이름이 생길까.
빗소리.
밤소리.
"귀 기울여 들어야 소리는 비로소 이야기가 된다"(팀 잉골드)고 했던가. 소리에 집중하자 빗방울과 밤송이가 지나온 시간이 그려졌다. 빗방울과 밤송이가 자신이 된 이야기, 짧고도 긴 '한 생'이라는 여행. 그 여행의 끝엔 음악처럼 연주되는 소리가 있고. 누군가에게로 가만히 건너가 또 다른 이야기로 태어나려는 낌새의 소리. 어떤 무명의 시간은 이름을 만들고 아름다운 소리를 빚는다. 단지 그런 일을 위해 시작하고 마치는 여행 같은 삶도 있다.
소리에 집중하면 시간에 밀도가 생긴다. 하나의 생이 아니라 빗방울과 밤송이, 구름과 나무, 나와 당신이라는 다중의 생이 겹을 이룬다. 내 안의 소리에서 볼륨을 낮추고 바깥의 소리로 기울어지는 사이 나는 가을로 옮겨가 있다. 나를 밀어준 건 무얼까. 소리일까, 이야기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