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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춤추는바람 Sep 11. 2024

기다림

삶의 발견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단다. 기다리는 행복만으로도 이미 충분하거든.”

<첫눈> 엘함 아사디 지음, 실비에 벨로 그림, 이승수 옮김, 책빛     


아이와 잠자리에서 읽던 그림책의 마지막 장에서 주인공 할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에겐 어떤 기다림의 행복이 있을까. 내 질문에 아이는 토요일을 기다린다고 답했다. 말을 하는 동시에 아이 얼굴로 환한 웃음이 번졌다.        

 

내겐 ‘가을’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가을을 기다려 왔다. 며칠 전 창을 열고 자다 한기에 문을 닫았다. 코와 목을 넘어가는 바람에서 마른 기운이 느껴졌다. 이미 가을은 시작된 걸까. 기다림으로 충분했던 시간은 끝난 걸까.     


기다림은 계속된다. 자신을 연마해 날카롭게 차가워진 바람이 불면 보슬거리는 스웨터로 그 바람 보드랍게 어루만질 날을 기다린다. 울코트 안에 몸을 숨기고 목도리를 두를 날을. 11월 앞에서 그리웠던 이와 나란히 걸을 날도 다가오고 있다. 다음의 기다림이 우리 안에서 행복을 예비한다.          

   

로빈 월 키머러는 한 책*에서 인간 삶의 흐름을 이끼의 기다림에 은유한다. 변수성 식물인 이끼는 주변의 습도에 따라 수분 함유량이 변한다. 비가 오지 않는 동안 이끼는 바짝 마른 상태로 긴 시간을 버틴다. 활동을 멈추지만 죽지 않는다. 죽음과 유사한 상태로 운명을 받아들이고 강한 인내심으로 비가 올 때를 기다린다. 마침내 비가 오면 기쁘게 다시 깨어난다.      


삶이란 끝없는 기다림의 연속이다. 다음의 물을 기다리는 이끼의 생애처럼. 어린 시절엔 성장과 독립을 기다렸다. 공부가 끝나고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게 되길, 원하던 대로 삶을 꾸려가게 되길 꿈꿨다. 그러다 어느 순간엔 가족과 아이, 집으로 표상되는 안정을 갈망했고. 삶은 매번 또 다른 기다림으로 이어졌다. 이끼처럼 단비가 지나면 다음의 비를 고대한다. 아이의 성장과 홀가분할 노년을 기다린다.      

   

기다림 사이엔 지난한 버팀이 있다. 그러느라 꾸준히 몸이 닳고 어떤 마음은 쇠진한다. 누군가와는 영영 이별하고 만다. 삶의 한 부분이 기다림으로 뾰족해지는 동안에도 다른 모서리는 꾸준히 깎여 나간다. 기다림으로 삶이 나아갈수록 상실이 덧대어진다.     

 

과거를 지닌 채 오늘을 살고, 죽은 일부를 끌어안고도 생명을 틔우는 이끼. 웅크린 채 다음의 비가 올 것을 믿는 마음은 기다림이자 살고자 하는 의지. 사랑의 낌새를 놓치지 않는 마음이다. 먼 곳의 비 내음을 감지하는 이끼처럼 버팀 안에도 반가운 기별과 일상의 아름다움이 공존한다. 죽음과 가까운 상태에서도 돌연 환해지는 사랑을 느낄 수 있다. 나의 마모가 슬프지 않다. 나를 깎아 키우는 세계가 있으므로. 풍화될수록 간절해지는 마음이 있으므로.       


하루는 잠자리에서 죽음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제 자자, 하고 누웠을 때 아이가 물었다.     


“죽으면 어떻게 돼? 지금 우리랑 똑같아?”

“아니, 죽으면 심장이 멈춰. 몸이 차가워지고 딱딱하게 굳어. 그러다 썩게 돼. 시간이 많이 지나면 몸이 허물어져 사라져. 땅 속에서 흙이 된단다.”

“그러면 어떻게 돼?”

“그러면 나무나 꽃으로 다시 태어나기도 한데. 무당벌레가 되거나 공기나 바람이 될 수도 있지. 아, 별이 된다고 하는 사람도 있어. 죽으면 밤하늘의 별이 된데.”

“별이 된다고? 별은 이렇게 많은데?”

“응, 별은 계속 만들어지니까. 죽음 이후는 아무도 몰라. 어떤 이들은 죽으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고, 모두 사라진다고 믿어. 또 다른 사람들은 마음은 영영 사라지지 않는다고 믿지.”

“응, 하지만 아무도 몰라. 누구도 알 수 없지.”

“맞아...... 네가 만약 죽는다면, 너는 무언가로 다시 태어나고 싶어?”

“음..... 나는...... 새로 태어나고 싶어!”

“새! 멋지다. 왜 새가 되고 싶은데?”

“친구랑 같이 날아다닐 수 있고 높이 올라가 구름을 만날 수 있고, 날아다니다 예쁜 곳도 구경할 수 있잖아.”

“그렇네. 높이 올라가 어디든 볼 수 있겠다. 엄마는 바람이 되고 싶어. 네가 날고 있을 때 엄마가 네 밑에 있을 거야. 네가 날 수 있게 밀어줄게. 바람이 스치면 엄마구나 생각해 줘.”     


하나도 슬프지 않았다. 하늘의 별을 이야기하다, 죽으면 뭐가 될지 속삭이는 동안. 죽음으로 이별을 통과할지라도. 나는 사라지고 아이가 홀로 남고 우리가 서로를 알아보지 못하게 되더라도. 그 너머에선 서로를 느낄 테니까. 새와 바람은 만날 것이다. 사랑은 이어질 것이다.      


그 밤, 열어 놓은 창밖으로 풀벌레 소리가 새어들었다. 천장은 까맣더라도 암흑처럼 까맣지 않았고 바람이 오가며 살갗을 차갑게 식혀주었다. 아이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어둠이 깊어지길, 고운 잠이 우리를 덮어주길 기다렸다.     


기다린다. 처음인 듯 눈을 맞을 날을. 올해의 첫 크리스마스를. 기적 같은 장면과 사건, 소식들이 오고 있음을 감지한다. 내 언어의 바구니에 담길 낯설고 신비로운 단어와 그걸 고르고 골라 짓게 될 문장이라는 장갑과 목도리도. 그러느라 꾸준히 쇠퇴하고 무언갈 잃을 테지만.      


밤하늘의 별처럼 무수한 너의 총총한 처음을 등대한다. 너의 처음이라는 말이 건네는 떨림. 기다림으로 충분한 삶이라는 확신. 이런 확신을 마주하는 아침이 거듭 찾아올 것이다.         





*<이끼와 함께> 로빈 월 키머러, 하인해 옮김, 눌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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