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려진 도구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창가에 앉아 책을 힐끔힐끔 읽어 내려갔다. 그러다 한숨을 쉬며 눕듯이 허리와 다리를 쭉 폈는데 눈에 반달이 걸렸다. 그것이 이상하게 쓸쓸해 보였다.
하고 싶은 말을 자유롭게 말하지 못할 때마다 자연스레 소설이 흘러나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괜한 푸념이 튀어나와 놓였다. 자신을 숨긴 채로 '나'를 마음껏 표현할 벼려진 도구가 있다면, 하는 욕망이 마음에 찰랑거렸다.
저녁 9시다. 조용히 집으로 들어가 내일을 또 준비해야 할 시간이 다가온다. '또'라니. 나에겐 아직도 하루가 버거운가 보다. 웃을 수가 없다. 자연스레 웃음이 나오는 경우가 드물다. 나에겐 아무런 감정이 없는 무감각이 아주 익숙하다. 그럴 땐 나에게 보인 친절에 미안해지고 두려워진다.
그럼에도 발견한다. 이를테면 의외의 감정들이다. 살랑거리는 바람에 미소를 짓는다든가 오늘 밤의 달을 보며 허무해한다든가 누군가의 눈빛에 수줍어한다든가 장벽처럼 가로막힌 마음에 움츠려 든다든가 하는 일 말이다. 그것이 나에겐 의외의 기쁨이 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