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감정에 감성 주입

by 노바써니

항우울제를 먹기 시작하면서 일상생활은 일부 가능해졌다. 약을 먹었다는 사실 하나로 갑자기 음식도 하고 설거지며 빨래, 청소까지 온갖 집안일을 할 수 있게 된 건 아니었다. 그저 최소한 하루에 두 끼를 챙겨 먹고 밤에는 잠이 오는 정도가 가능해졌을 뿐. 약간 무리하면 짧은 외출도 할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혼자였다.


아무래도 세상과 내가 단절되어 있다고 느끼는 원인 중 하나가 인간관계라는 생각이 들어서 역시 친구를 만들고 싶었다. 그림도 계속 그리고 싶었다. 그래서 핸드메이드 동호회 활동을 새롭게 시작했다.

이미 어느 정도 운영이 되고 있었던 곳이라 회원 수도 많고 다들 친해 보였다. 그 가운데 혼자 들어서기 민망했지만 긴장감에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꿋꿋하게 앉아 이것저것 만들고 오는 시간을 가졌다.


한편 집에서 혼자 영화나 드라마를 챙겨보기도 했다. 하지만 전과 다르게 내용에 집중하기 어려웠다. 몰입을 유지하기 힘들었고 화면을 보는 동안 계속해서 폰을 만지작거리거나 멍해지기 일쑤였는데, 이것도 우울증 증상 중에 하나라고 한다. 실제로 나는 아직도 책이나 영화를 집중해서 보기가 어렵다.


그럼에도 일기장에 파란색 펜으로 무언가를 ‘봤음’ 또는 ‘읽음’을 표시해둔 날이 많은 걸 보니 집중이 안 되는 와중에도 우울에 지지 않기 위해 ‘어지간히 애를 썼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영화를 보다가 울고 싶으면 울고,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서 어느 날은 깔깔거리며 웃다가 문득 깨달았다. 이렇게 큰 소리를 내면서 웃는 게 굉장히 오랜만이라는 사실을. 혼자 내뱉은 웃음소리가 공허해서 그렇게 웃고 나면 조금 씁쓸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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