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lwrts Dec 22. 2020

삼 층 주인집

나와 화목하려고 매주 화, 목에 쓰는 시 - 5


1

성실한 아버지는

일찍이 상가 건물을 샀습니다


버텨낸 시간을 이르는 말들에

자리를 찾아 주자면


수업료가 없어 

교탁 멀리 쫓겨난 것이 

일찍이


등기 서류에 서명 도장

혹시 몰라 지장까지 찍은 건

마침내가 

올바르겠습니다


일 층부터 순서대로

고깃집, 찻집, 우리 집이었습니다


고깃집 아주머니는

진작에 두어 번 세 들어오며 

잦은 이사를 치렀습니다


어금니로 껌을 씹을 땐

슬리퍼 끄는 소리가 났고요


막내아들은 거뭇하게 잘도 생겨

밖으로 부르는 이가 많았습니다


하루는 누가 다급히도 불렀는지

오토바이를 타고 멀리 나가

더는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한 번 떠난 터에 다시 들어와 살면

자식이 화를 입는다더라는 소문이

사람 대신 문턱을 넘었습니다






2

살점이 그을기 전에

불판을 갈아 주는

성실한 청년들을 보면

언제 저 목장갑들을 벗나 

궁금합니다


간만에 먼 데 나가서 먹는다더니

겨우 일 층에 내려가 

고기를 사 먹던 날


학교에서 누가 괴롭히면

재깍 알려 달라며

그는 불판을 갈다 말고

목장갑을 벗었거든요


그래 놓고는 운동장에서라도 스치면

아는 채도 않은 까닭에

그 말이 진짜인가를 두고

잠깐 괴로웠습니다


죽고 태어나는 일이

자고 깨는 일과 닮아

누운 자리에서 

이어 살 수 있다면


그도 지금쯤 삼 층 주인집에서

남이 굽는 고기 몇 점에 

배부를 수 있을까요







이전 04화 언니의 파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