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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키 Mar 24. 2024

니베르네의 경작

로자 보뇌르

동물을 전문적으로 그렸던 보뇌르는 도축장과 가축우리를 뛰어다니기 좋은 바지 차림으로 다니기 위해 '이성 복장 착용 허가'까지 받아냈다. 바지는 험한 곳을 들락거리기에도 좋았지만, 자신에게 집적이는 사람이 없게 만들어주기도 했다. 그녀는 결혼을 마다하고 어린 시절 친구와 동성애 관계를 유지했다. _작품 해설, 『365일 모든 순간의 미술』


*

(작가, 미술 기법, 역사적 배경 등 일체의 객관적 사실을 배제한 하루키의 감각과 추상표현으로 쓴 감상입니다.)

Rosa Bonheur <Ploughing in the Nivernais>, (1849) 출처: Wiki



+ 하루키 감상

1848년 6월 정부의 관료로 보이는 중년 남성이 로자 보뇌르를 찾아왔습니다. 마침 아버지 레이몽 봉헤르와 창고에서 병에 걸려 죽은 소를 해부하고 있었습니다. 중년 남성은 지독한 악취와 수많은 파리 때로 시야 확보가 어려워 로자 보뇌르에게 접근이 어려웠습니다. 결국 가까이 가는 것을 포기하고 문 바깥에서 큰소리로 정부의 그림 의뢰에 대한 장황한 설명을 시작했습니다. 한참을 떠들자. 어두 컴컴한 창고에서 지독한 악취를 풍기며, 파리 떼를 뚫고 20대 중반의 아름다운 여인이 눈앞에 나타납니다. 마치 지옥의 신 하데스의 딸 같았습니다.


그녀는 백옥 같은 피부에 큰 눈. 짙은 눈썹. 다부진 턱과 앙다문 입모양을 하고 있었습니다. 중년 남성은 그녀의 안광에 압도돼 허리가 움츠러들었습니다. 그녀의 강인한 기세에 눌려 심호흡을 크게 하고 말하기 시작합니다.


"니베르네에 가 주었으면 좋겠소"

"제가 왜 가야 하죠?"

"우리를 (혁명 정부를) 지지한 농부, 그들의 숭고함, 노동의 아름다움을 있는 그대로 그려줄 사람을 찾고 있소. 나는 당신이 적임자라 생각해 가장 먼저 당신을 찾았오. 현재 프랑스에서 (남녀 구분 없이) 활동하는 화가 중 가장 프랑스적 사실주의를 그리는 화가라 생각하오."

"왜 니베르네죠?"

"그곳은 나의 고향이요. 내가 태어나고, 10대 중반까지 자란. 가장 프랑스적인 곳이라 생각하오"


로자 보뇌르는 고민 없이 바로 답변합니다. "마차를 준비해 주세요" 곧장 창고로 돌아가 아버지에게 짤막하게 몇 달간 니베르네에 다녀오겠다고 말합니다. 남동쪽으로 260 km 떨어진 니베르네. 간소한 옷가방과 화구를 잔뜩 챙겨 마차에 올라탑니다. 마차는 규칙적으로 덜커덩거립니다. 로자 보뇌르는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을 보며 슬그머니 입꼬리를 올립니다. 눈을 찡긋하며 속으로 말합니다. "소를 그려야지."



&



1. 니베르네의 하늘은 파랗습니다. 높은 산은 보이지 않고 낮은 언덕이 보입니다. 대지의 끝은 지평이 수평으로 가로지릅니다. 남서쪽에서 남동쪽으로 향하는 여덟 마리의 소와 밭을 일구는 쟁기. 농부들은 묵묵히 대지와 씨름하는 것 같습니다. 인간과 대지의 씨름. 문명화시키려는 쪽과 버티려는 쪽. 소의 행렬이 시작되는 곳은 소실점이 됩니다.


2. 소 무리에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소의 입가에선 침이 뚝뚝 떨어졌습니다. 농부의 모자와 소의 등엔 햇살이 비치고 있습니다. 정오. 농부의 요란한 독촉음. 소들은 힘겹게 농부들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소의 근육은 팽팽히 긴장돼 있습니다. 꼬리는 사방으로 움직임을 멈추지 않습니다. 거친 숨을 쉽니다.


3. 안타깝습니다. 농부는 생계를 위해 밭을 일구고, 소는 인간에게 혹사당합니다. 대지는 흙색 속살을 드러냅니다. 인간, 소, 대지 모두 쳇바퀴 안에 있는 것 같습니다. 굴레와 같은 현실.


문득 묘妙를 발견합니다. 밭갈이가 된 곳과 되지 않은 경계. 잡초(하기 그림 참조) 한 송이. 바람이 불었는지 살짝 흔들리고 있습니다. 왠지 모를 서글픈 시름이 느껴집니다 ...

(중) 경계선의 잡초

* 화가 - 로자 보뇌르Rosa Bonheur (1822 – 1899, 프랑스)

+ 전기(1822 - 1848)


로자 보뇌르는 1822년 프랑스 보르도, 예술가 집안에서 태어납니다. 아버지 레이몽 봉헤르는 화가이자 여성과 남성의 평등을 주장하는 사회 운동인 생시모니즘의 추종자입니다. 어머니 소피 본허는 피아노 교사였는데 보뇌르가 11살 때 세상을 떠납니다. 그녀는 일찍부터 동물 그림에 재능을 보였고, 아버지는 살아있는 동물 표본을 아뜰리에로 가져와 보뇌르를 격려했습니다.


그녀는 기숙학교에서 기초 교육을 받았지만 반항심이 강해 종종 제멋대로 행동하여 퇴학당합니다. 그 후 재봉사에게 견습을 받았지만 일이 싫어 아버지의 화실로 들어갑니다. 아버지의 지도 아래 옛 거장들의 작품을 모사하고 자연에서 스케치를 하는 등 그림을 공부합니다. 1841년 19세의 나이로 파리 살롱에 토끼 그림 두 점으로 데뷔를 합니다. 이후, 살롱에 정기적으로 출품하며 동물 그림으로 상을 받습니다.


+ 중기(1849 - 1869)


1848년 혁명으로 왕정이 폐지되고 제2공화국이 수립되었고, 보뇌르는 1849년 아버지, 형제들과 함께 파리로 이주를 합니다. 그녀의 전성기가 시작됩니다. 그녀는 노예제 폐지, 노동자의 권리, 여성 해방 등 당시의 사회적, 정치적 이슈에 관심을 갖었습니다.


또한 머리를 짧게 자르고 바지를 입고 파이프를 피우고, 경찰로부터 공공장소에서 남성 복장을 입을 수 있는 허가를 받아 박람회, 시장, 스튜디오 등 남성이 지배적인 공간에서 보다 자유롭고 편안한 행동을 하였습니다. 1889년 사망할 때까지 평생의 동반자이자 공동 작업자였던 나탈리 미카스를 비롯해 여러 여성과 연애를 합니다.


+ 후기(1870-1899)


보뇌르는 인생의 마지막 30년을 퐁텐블로 숲 근처의 바이에 있는 자신의 저택에서 여생을 보냅니다. 그녀는 1860년 말 박람회에서 얻은 수익으로 저택을 구입했고, 동물과 예술가들을 위한 안식처로 만듭니다. 그녀는 사자, 사슴, 양, 개, 고양이, 새, 원숭이 등 다양한 이국적인 동물과 가축을 소장하고 있었으며, 많은 사람들을 맞이했습니다. 1899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뛰어난 실력과 애정으로 동물을 그리고 조각을 했습니다.


+ 비평적 관점


일부 비평가들은 보뇌르가 특히 동물 묘사에서 사실주의와 세부 사항에 집중하는 데 감정적 깊이가 부족하고 단순한 표현 이상의 주제를 끌어올리는 데 실패했다고 주장합니다. 예를 들어, 낭만주의 운동의 비평가들은 그녀의 작품이 너무 냉담하고 그들이 소중히 여기는 감정적 혼란과 숭고한 성격이 부족하다고 생각했습니다.



* * *


+ 주요 특징


1. 사실주의


보뇌르는 1840년대 프랑스에서 학문적 예술의 이상적이고 역사적인 주제에 대한 반작용으로 등장한 사실주의 운동의 영향을 받습니다. 사실주의자들은 꾸밈이나 감상적인 표현 없이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과 주변 환경을 묘사하고자 했습니다. 보뇌르는 세심한 관찰과 해부학적 연구를 바탕으로 한 동물 그림에 이러한 접근 방식을 적용합니다. 그녀는 종종 도축장, 농장, 동물원을 방문하여 살아있는 동물을 스케치하고 때로는 죽은 동물을 해부하여 동물의 구조와 움직임을 이해했습니다. 또한 스튜디오에서 동물 가죽, 뿔, 두개골 등을 수집하여 참고 자료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동물의 형태, 질감, 색상, 표정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보네르의 사실주의는 분명합니다. 그녀는 각 동물의 개별적인 특징과 성격은 물론 동물과 환경과의 상호 작용에도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2. 자연주의


보뇌르는 1860년대 프랑스에서 사실주의의 연장선상에서 등장한 자연주의 운동에 영향을 받습니다. 자연주의자들은 경험적 방법과 상세한 기록을 통해 자연을 객관적이고 과학적으로 묘사하는 것을 목표로 했습니다. 또한 자연력과 생물학적 요인이 인간과 동물의 행동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탐구했습니다. 보네르는 이러한 관점을 동물 그림에 도입하여 생명력과 활력을 불어넣습니다. 그녀는 동물을 수동적이거나 길들여진 존재가 아니라 본능과 감정을 지닌 능동적이고 독립적인 주체로 묘사합니다. 또한 자연 서식지에서 동물을 묘사하여 다양한 계절, 기후, 풍경에 적응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3. 낭만주의


보뇌르는 18세기 후반 유럽에서 계몽주의, 합리주의, 고전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등장한 낭만주의 운동에 영향을 받기도 합니다. 낭만주의자들은 개인적인 감정과 상상력, 자연의 아름다움과 숭고함에 찬사를 표현하고자 합니다. 또한 개인주의, 자유, 사회적 규범과 관습에 대한 반항을 찬양합니다. 그녀는 이러한 가치를 동물 그림으로 표현하여 자기표현과 자기주장을 위한 매개체로 사용했습니다. 그녀는 동물을 사회가 부과한 기대와 한계에 저항하는 동료 아웃사이더로 인식했습니다. 또한 동물을 힘, 용기, 존엄성, 조화 등 자신의 이상과 열망의 상징으로 사용합니다.



+ 의식 안의 미술관


하기 그림 중 첫 번째 그림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자연(동물)에 대한 깊은 존경심, 인간과 자연(동물)의 상호 연결성과 에너지가 느껴집니다.

출처: Wiki

      




"텔레만은 법학 공부를 강요받는 중에도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여러 악기를 혼자 힘으로 익혔고,

시간이 날 때마다 남들 모르게 작곡을 계속했다." _1일 1클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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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흐와 동시대 작곡가이자 헨델과 절친이었던 텔레만, 오늘은 그의 음악과 아침을 맞이했다. _하루키




삶이 고양될지 혹은 무해할지, 의식 안의 미술관을 꿈꾸며 ... 감사합니다. 하루키





+ 출처


[1] 위키피디아: Rosa_Bonheur

[2] thoughtco: Rosa_Bonheur

[3] britannica: Rosa_Bonhe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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