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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키 May 05. 2024

밤의 스트랜드 가

크리스토퍼 리차드 윈 네빈슨

런던의 유명 미술학교인 슬레이드 출신의 네빈슨은 제1차 세계대전 당시 공식 전쟁 화가로 임명되어 서부 전선의 전투 장면을 기록으로 남기곤 했다. 이후 그는 뉴욕이나 파리 등 대도시 풍경을 비롯해, 자연의 모습을 담기도 했다. 그림은 붉은 2층 버스에서 짐작할 수 있듯, 런던의 비 내리는 밤 풍경을 담은 것이다. _작품 해설, 『365일 모든 순간의 미술』


*

(작가, 미술 기법, 역사적 배경 등 일체의 객관적 사실을 배제한 하루키의 감각과 추상표현으로 쓴 감상입니다.)

George Dunlop Leslie , (1879) 출처: Wiki



+ 하루키 감상

30대 미국에서 영국을 대표하는 예술가로 정점을 찍은 C.R.W 네빈슨. 하지만 그의 신경질적인 독설, 오만, 알코올중독에 점차 예술가 친구, 후원자들이 하나둘씩 떠납니다. 더 이상 미국에 있을 수 없게 된 네빈슨. 도피하듯 고향 런던으로 돌아옵니다. 그를 기다린 건 영국 예술계의 침묵과 외면, 칩거를 시작합니다


대중의 인기와 비평가들의 찬사를 먹고살던 네빈슨은 갈수록 신경쇠약과 건강 악화로 피폐해집니다. 공황과 대인기피증까지 생깁니다. "나는 곧 죽을 거야", "나의 예술은 세상이 이해할 수 없는 경지에 이르렀어" 매일같이 망상을 반복합니다. 네빈슨은 회고록을 쓰기 시작합니다. 오늘날까지 자신의 삶과 예술을 반추한, 계절은 어느새 가을에서 겨울로 옷을 갈아입습니다.


4개월간 두문불출 회고록만 쓴 네빈슨, 글이 거의 완성되었을 즈음, 건강이 많이 좋아져 산책이 하고 싶어 졌습니다. 저녁을 먹고 밖을 나와 스트랜드 가를 산책합니다. 막 7시를 지난 시간, 스트랜드 가의 밤은 더 이상 어둡지 않습니다. 줄지어 늘어선 높은 건물, 횡으로 길게 놓인 도로. 건물과 자동차에서 인공 빛이 쏟아져 나오고, 오선지의 쉼표처럼 배열된 키 높은 가로등은 네빈슨을 규칙적으로 반복해 내려다봅니다.


얼마쯤 걸었을까, 차갑고 습한 공기, 가랑비에 수축된 몸, 요란한 거리의 발소리, 불분명한 말소리, 기계적인 자동차 경적 소리, 도시의 빛 물결에 활기를 느낍니다. 문득 그리고 싶다는 생각. 이 순간, 놓치고 싶지 않다.



&



1. 10층 높이, 엘리자베스 2세 양식 건물 사이를 걷고 있습니다. 밤 8시, 완전한 밤의 경계. 건물과 건물 사이는 음습하고, 축축합니다. 발광하지 않는 건물, 하늘에 구름이 가득해 달도 별도 보이지 않습니다. 밤, 칠흑, 어둠, 위를 걷습니다.


2. 집 앞 익숙한 골목. 캄캄한 암흑이어도 무섭지 않습니다. 혹 외로움이 찾아와도 어디선가 나타난 사람들이 스쳐 지나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인간의 눈은 신기합니다. 어둠에 적응하기 시작하면 어둠 속에서도 많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공기의 질감부터 건물의 벽, 깨진 술병, 버려진 신문 쪼가리, 길고양이 등.


3. 모호하게 들리던 소리가 점차 커집니다. 마치 눈을 비비다 본 밝은 빛, 터널을 빠져나와 마주친 빛처럼 소리가 한 번에 확 펼쳐집니다. 골목길을 꺾자 인상이 펼쳐집니다. 수평으로 움직이는 색들. 에너지와 리듬감. 흰색, 붉은색, 남색, 흐릿한 노란빛. 너울 같습니다. 인상의 풍경.

 * 화가 - 크리스토퍼 리차드 윈 네빈슨Christopher Richard Wynne Nevinson (1889 - 1946, 영국) 

+ 전기(1889-1914)


네빈슨은 1889년 런던에서 태어납니다. 그의 아버지는 언론인이자 사회 개혁가인 헨리 네빈슨이고, 어머니는 참정권 운동가이자 작가인 마가렛 네빈슨입니다. 네빈슨은 부모의 급진적인 견해와 반항적인 정신을 물려받아 훗날 그의 예술과 성격에 그대로 드러납니다.


네빈슨은 세인트 존스 우드 예술 학교에서 공부한 후 슬레이드 예술 학교에서 공부합니다. 후기 인상파, 특히 세잔과 반 고흐의 영향을 받아 표현적인 붓 터치, 생생한 색채를 결합한 스타일을 발전시킵니다.


1912년 파리로 건너가 미래파의 지도자 마리네티를 비롯한 여러 미래파를 만납니다. 미래파는 속도, 기술, 폭력, 현대성을 찬양하는 아방가르드 운동이었습니다. 네빈슨은 미래파의 선언문과 도시 생활의 움직임과 에너지를 포착한 역동적인 그림에 매료됩니다.


1914년 런던에 아트 센터를 설립한 급진적 작가이자 예술가 윈덤 루이스와도 친구가 됩니다. 루이스와 네빈슨은 보수적인 미술계에 대한 경멸과 미래파에 필적할 새로운 영국 미술 운동을 만들고자 하는 열망을 공유합니다. 그러나 두 사람은 곧 예술적 차이와 개인적인 라이벌 의식으로 사이가 멀어집니다. 루이스는 네빈슨이 미래주의를 표절하고 자신의 동의 없이 자신의 이름을 붙였다고 비난합니다.


+ 중기(1914~1920)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네빈슨은 프렌즈 앰뷸런스 부대에 입대하여 프랑스와 벨기에에서 구급차 운전사로 자원봉사를 합니다. 그는 전쟁의 참상을 직접 목격했고 부상당한 프랑스와 영국 병사들을 돌보는 일을 하면서 정신적 충격을 받습니다. 또한 류마티스 열병에 걸려 영국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전쟁 경험을 소재로 미래파의 기계 미학과 입체파의 영향을 받아 인상적인 전쟁 이미지를 창조한 일련의 강렬한 그림을 그립니다. 그는 군인이 전쟁으로 인해 비인간화된 기계적인 인물로 묘사했습니다. 또한 풍경의 황폐함, 포격의 폭력성, 부상자의 고통도 표현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네빈슨은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의 강렬한 이미지를 여러 점 그립니다. 그는 뉴욕의 고층 빌딩, 다리, 지하철, 인파에 깊은 인상을 받았고, 이를 현대성, 진보의 상징으로 여깁니다. 미래파 스타일을 사용하여 뉴욕의 역동성과 에너지를 포착합니다.


+ 후기(1920~1946)


후기 경력은 그다지 두드러지지 않습니다. 그는 풍경과 인물을 계속 그렸지만 그의 스타일은 더 관습적이고 덜 혁신적이 됩니다. 건강 악화, 우울증, 알코올 중독으로 고통받으며 작품 활동과 인간관계에 영향을 미칩니다.


그는 스페인 내전과 제2차 세계대전 장면을 그리며 명성을 되찾으려 했지만 공식 전쟁 화가로 임명되지 못합니다. 1937년 회고록 '페인트와 편견'을 썼고, 회고록은 생동감 넘치고 다채로웠지만 부정확하고 일관성이 없어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합니다. 1946년(57세) 런던의 햄스테드에서 사망합니다.


+ 비평적 관점


우울하고 변덕스러운 성격과 전쟁 경험에 대한 자랑과 과장된 주장으로 미국과 영국에서 많은 적을 만듭니다. 1920년에는 또 다른 전쟁 예술가인 윌리엄 오펜으로부터 표절 혐의로 명예훼손 소송을 당하기도 합니다. 그는 오만한 태도와 논란의 여지가 있는 의견으로 많은 비평가와 후원자들로부터 멀어집니다.


비평가 찰스 루이스 하인드는 네빈슨에 대해 '서른한 살의 나이에 가장 많이 논의되고, 가장 성공적이며, 가장 유망하고, 가장 존경받고, 가장 미움받는 영국 예술가'라고 평합니다.



* * *


+ 주요 특징


1. 미래주의


1912~13년 파리에서 이탈리아 미래파의 지도자 마리네티와 친구가 된 후 채택한 미래주의는 현대의 역동성, 속도, 폭력성, 특히 기계와 전쟁을 찬양하는 아방가르드 운동입니다. 그는 파편화, 반복, 왜곡이라는 미래파의 기법을 적용하여 그림에 움직임과 에너지의 감각을 불어넣습니다. 밝은 색상, 기하학적 모양, 각진 선을 사용하여 힘과 긴장감을 전달합니다.


2. 사실주의


1917년 공식 전쟁 화가가 된 후 채택한 사실주의는 이상화나 왜곡 없이 세상의 객관적인 현실을 묘사합니다. 네빈슨은 사실주의를 사용하여 전쟁의 공포와 고통, 병사들의 영웅심과 인내심을 묘사합니다. 사실감과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차분한 색채, 자연주의적 형태, 대기의 효과를 사용합니다.


3. 후기 인상주의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채택한 후기 인상주의는 생생한 색채, 표현적인 붓질, 단순화된 형태를 사용하여 예술가의 개인적인 비전과 감정을 전달합니다. 그는 도시 풍경, 인물, 정물화 등 다양한 주제를 묘사하기 위해 후기 인상주의를 사용합니다. 밝은 색상, 느슨한 획, 기하학적 패턴을 사용하여 조화와 아름다움을 표현합니다.



+ 의식 안의 미술관


네빈슨이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전쟁화가로 참전해 사실적으로 당시 전쟁의 현실을 그린 그림입니다. 절망, 폐허, 죽음, 신음, 기계 소음, ㅡ 종말의 레퀴엠 ㅡ

출처: Wiki





"역사를 통틀어 우라늄 광산에 대한 항의가

이렇게 사랑스러운 음악으로 바뀐 적은

한 번도 없었다." _1일 1클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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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초 지질학 조사에서 옐로케이크 퇴적물에서 우라늄을 발견합니다. 스코틀랜드 남부 전력청은 원자력 발전소에 연료를 공급하기 위해 우라늄 채굴을 원했지만, 주민들은 우라늄 채굴을 반대합니다. 데이비스(작곡가)는 스코틀랜드 국무장관에게 우라늄 광산의 위험을 설명하는 한편 'The Yellow Cake Revue'를 작곡합니다. _위키피디아


음악은 인류 혹은 지구와 동행하기 위한 가장 아름다운 비폭력 저항 수단이다. _하루키

The Yellow Cake Revue: Piano Interludes: Farewell to Stromness




삶이 고양될지 혹은 무해할지, 의식 안의 미술관을 꿈꾸며 ... 감사합니다. 하루키





+ 출처


[1] 위키피디아: C._R._W._Nevinson

[2] TateC._R._W._Nevinson

[3] wikiartC._R._W._Nevins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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