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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카눈넝 Oct 23. 2022

<3장>_4. 노 키즈존, 노 어덜트 존

(You were kid once)

미술 강사를 시작한 지 1년째 되던 날 원장에게 더는 일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두 아이 모두 어린이집을 다니게 되자 나에게 대략 6시간 정도의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6년 만에 갖게 된 소중한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고 싶지 않았다. 사회인으로서 생산적인 활동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워킹맘의 현실은 생각보다 더 힘들었다. 아이를 돌봐야 하는 엄마의 역할이 갑작스럽게 필요한 날이 잦았다. 툭하면 터지는 코로나 확진으로 어린이집은 문을 닫았고 같은 반 친구 또는 선생님의 확진 소식을 들으면 수업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내가 일하지 않았더라면 아이를 데리고 있을 수 있는데.’ 하는 죄책감이 들었다. 조금이라도 체온이 높거나 콧물이 흐른다 싶으면 느닷없이 전화기가 울렸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발신자 ‘어린이집’이 핸드폰 화면에 뜨면 가슴이 쿵쿵 뛰었다.


등원 준비가 한창인 아침에 옷을 입히다가 아이의 몸이 평소와 다르게 따뜻했다. 나름 엄마 인생 6년 차니 아주 정확한 손 체온계 능력을 획득했다. 아니나 다를까 미열이 있다.

“원장님… 지금 둘째가 아파서 제가 수업을 못 할 것 같아요. 너무 죄송합니다… 선생님들 너무 죄송해요…”

그래도 정말 다행인 건 이런 워킹맘의 사정을 이해해주는 원장님과 함께 일한 선생님들 덕분에 어떻게든 1년을 채워나갈 수 있었다.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주는 나 자신이 용납되지 않았을 뿐.     


속 시끄러웠던 마음을 정리할 겸 일을 그만두고 올해 여름방학은 친정으로 휴가를 떠났다. 첫째에게는 오랜만에 타보는 기차였고 코로나 시대에 태어난 둘째에게는 처음 타보는 기차였다. 말로만 듣던 기차가 눈앞으로 큰 소리를 내며 엄청난 바람을 몰고 왔다. 한숨도 쉬지 않고 재잘대는 아이들을 위한 아이 동반석 칸에서 눈치를 ‘덜’ 보며 무사히 친정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오랜만에 내려간 친정은 여전히 쾌적하고 포근했다. 숨통이 조금 트였다. 부모님이 해주는 밥을 먹으며 지친 마음과 정신을 힐링했다.

친정에 꽤 오랜 시간을 머물렀기에 여기저기 많은 곳을 가볼 수 있었다. 한 날은 집 근처에 생긴 커다랗고 높은 건물의 모습을 하는 신상 카페에 가기로 했다. 모두 들뜬 마음으로 차를 탔다. 휴무날은 아닐지 검색하다 노 키즈존이라는 단어를 발견했다. 아쉬운 마음에 혹시 몰라 확인차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혹시 거기 노 키즈존인가요~?”

“아…네! 그렇습니다…”

“아… 흠... 네! 알겠습니다!”

“저기, 어 근데 누워있는 갓난아기는 입장할 수 있습니다.”     


황당한 전화를 끊고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 가만히 얌전하게 누워있는 아기는 입장이 가능하지만, ‘자신의 의지로 걸어 다닐 수 있는 아이들’은 출입 금지라는 말인가? 다수의 손님에게 피해가 될 것이며 실내장식을 훼손시킬 우려로 아이들은 손님으로 맞이하지 않는다는 것일까? 안전의 문제도 있겠지만 과연? 어린이 손님은 카페에 해가 되는 손님인가 보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은 시도도 해보지 못한 채 거절당했다. 그 카페에 갈 수 있는 권리를 잃었다. ‘그래, 사유지니까.’

솔직하게 말하면 두 아이의 엄마로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저 우리도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자 하는 건대. . 도무지 혼자서 분이 풀리지 않아 속으로 생각했다. ‘분명 주인은 미혼이거나 자녀가 없는 사람일 거야. 언젠간 부모가 된다면 노 키즈존을 했던 자신을 부끄러워할걸?! 잘~ 먹고 아주 잘~ 살아라! 흥!’ 전화를 받은 카페 주인이 나를 위한답시고 했던 ‘갓난아기는 출입할 수 있어요.’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면, 이렇게까지 깊이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자리를 빌려 노 키즈존 사장님께 감사드린다. 진심이다


‘노 시니어 존’ 카페가 생겼다고 해보자. 그 사실을 모르고 방문한 노인을 위해 친절하게 입구 앞에 큰 글씨로 노 시니어 존이라고 쓰여있다. 그렇게 해서 시니어 손님들의 발길을 돌리는 가게가 있다면, 아니면 ‘노 장애인 존’, ‘노 외국인 존’, ‘노 성 소수자 존’…? 이건 순전히 내 추측인데 온갖 뉴스에서 논쟁거리가 될 것이다. 그 카페를 향해 사람들은 이때다 싶어 양심이 없는 것 아니냐며 온갖 비난과 손가락질을 할 것이다.

아이들이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사회적 약자라는 것은 그 어떤 어른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어른들의 세계 안에서는 노 키즈존이 이미 ‘암묵적’으로 동의한 것이다. 아니면 관심이 없거나. 슬프게도 우리 부모들은 부당한 ‘노 키즈존’에 맞서 싸우지 못한다. 혹여나 더 큰 비난이 우리 아이에게 향하지는 않을까 싶어 나서지 못할 것이다.     


몇 년 전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소설과 영화가 엄청난 이슈를 몰고 왔다. 필자 ‘92년생 최연지’와는 10년이라는 세월의 차이가 있었지만, 그 세월이 무색할 만큼 뼈저리게 공감이 되었었다. 맘충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면서 우리나라에 사는 대부분 개념 있는 엄마들은 사회적인 분위기에 눈치를 보면서 살아왔다. 더 이상 맘충이라는 단어가 ‘그들’의 입 밖으로 나오지 않도록 행동을 더욱더 조심해야 했다. 때로는 타인의 시선을 더 신경 쓰게 되니 오히려 아이에게 미안할 지경이었다. 그 후로 엄마의 처지를 대변하는 콘텐츠들이 나왔고, 엄마들이 카페에 앉아 여유롭게 수다 떠는 모습이 다가 아니랍니다! 하는 등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왔다. 그동안 나름 참아왔던 엄마 또는 여성들이 들고일어난 것이다.

이렇게 이슈가 있고 난 후 보지 못했던 단어가 가는 카페마다 곳곳이 쓰여 있었다. 바로 ‘노 키즈존’이다. 처음에는 그러려니 했다. 사람 많은 곳에 아이들이 뛰어다니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가는 것을 막지 못하는 부모들에게 하는 경고 같았다. 무조건 아이와 함께 온 부모는 진상 고객이 되어버렸다. 시간이 지날수록 특히 관광지 근처의 카페 또는 식당의 많은 곳이 노 키즈존을 외쳤다. 오히려 사람들은 노 키즈존을 선호하는 눈치였다. 아, 어쩌면 노 키즈 존이라는 사실도 인지하지 못 한 사람들이 많을지도. 나는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과연 ‘노 키즈존’은 정말 우리에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걸까? 당연히 받아들여져야 하는 것인가? ‘자신의 의지로 걸어 다닐 수 있는 아이들’은 사람들이 많이 가는 카페에 갈 수 없는 것인가?    

 

최근 코로나가 전 세계적으로 유행을 하면서 세상이 변했다. 당연히 출근해야 하는 직장은 재택근무라는 새로운 근무 형태로 바뀌었고 삼삼오오 모여 다니는 아이들의 뒷모습도 점차 줄어들고 있다. 대신 아이들은 집에서 각자의 컴퓨터 앞에 앉아 줌을 통해 만남 또는 수업을 듣는다. 카메라 밖은 알 수 없는 기괴한 풍경은 아이에게 당연한 것이 되었다. 카메라 밖에서 선생님에게 들키지 않고 간식 먹는 방법이 생겨나고 이에 맞는 새로운 문화들이 만들어졌다. 교실이라는 새로운 공간이 아닌 너무나도 익숙하고 편한 집이라는 공간에서 말이다.

어른들은 코로나로 바뀌는 사회에 발맞춰 가기 위해 새로운 법들을 논의하고 사회적 문화를 만들어 나갔다. 그러나 어른을 위한 많은 변화를 따라가기 바쁜 건지 정작 아이들에게 이런 코로나가 어떤 영향을 가져오는지에 관해 관심이 없었다. 다행히 곧이어 아이들에게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아이가 경험해야 하는, 이제까지 당연한 것들이 더 이상 당연한 것이 되어버리지 않았을 때 생기는 결핍이 나타났다. 또한 친구를 따돌리는 방법, 메신저 또는 SNS를 통해 이루어지는 아이들을 향한 다양한 범죄들이 등장하고 있다.     


일부 어른들이 열심히 아이들을 위한 세상을 꿈꿔보지만, 사실 대다수 어른은 아이에게 별 관심이 없다. 자기 삶을 살아내기도 벅찬 세상이니까. 그 부분도 이해가 간다. 나도 아이가 없었을 땐 그랬으니까.

얼마 전 뉴스에 나왔던 사건이다. 너무나 당연하게 어른들의 높이에 맞춰 엘리베이터 안에 손소독제를 배치했다. 이 손소독제의 높이는 아이 눈의 높이랑 맞닿았고 이 때문에 아이의 눈을 다치는 안타까운 사고도 일어났다. 아이에게 안전한 사회는 어떤 것인지 또 아이의 권리를 어떻게 지켜줘야 하는지 등의 고민은 당연한 어른의 몫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노인 공경을 배웠다. 하지만 어린이들은, 어른이 마땅히 어린이에게 행해야 하는 배려나 자신들의 권리를 배우지 못한 채 자란다. 지금 나의 또래의 어른들 대부분이 어린 시절 학교 또는 가정에서 ‘사랑의 매’로 포장된 아동 폭력에 노출이 되어있었다. 어린이는 자신을 보호하고 배려받아야 하는 존재라는 것을 인지해야 하고 자라야 한다. 이것은 어른들이 반드시 가르쳐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릴 적 어린이의 권리에 대해 배우지 못하고 자랐다. 그래서 이제라도 어른들도 관심을 가지고 배워야 한다. 그리고 알려줘야 한다. 우리 아이들에게 존중받아야 할 대상이라는 것을.     


어린이들은 힘이 약하고 아무것도 모를 것으로 생각하고 무관심한 어른들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당신도 한때는 스스로 걷지 못하는 아이였다. 무지도 죄요 무관심은 폭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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