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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카눈넝 Oct 23. 2022

<4장>_4. 책 속에 남겨진 당신의 흔적

갑작스러운 휴학과 동시에 돈이 필요했고, 아르바이트해야 했다. 꽤 큰 뷔페식당이었는데 사장님과 면접을 진행했다. 다 끝난 후 사장님은 면접 보러 온 사람들에게 “책을 읽지 않아도 한 권씩 가방에 넣어 다녀보세요.”라고 말했다. 별생각 없이 그 말을 흘려들었다. 그다음 날 친구와의 약속 장소에 일찍 도착했다. 시간이 남아 주위를 둘러보니 큰 간판으로 존재를 알리는 대형서점이 있었다. ‘한 번 들어가 볼까?’ 하는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내가 서점에 들어갈 줄이야!’ 감탄하며. 각종 문구용품을 구경하다 보니 어느새 인기 도서 코너에 자신만의 개성을 뽐내고 있는 책들이 눈에 들어왔다. 제일 마음에 드는 제목의 책을 집어 들었고 그렇게 대형서점과의 처음 만났다. 


그 뒤로 자주 약속 시간보다 일찍 나와 서점에서 시간을 보냈고, 나중에는 서점을 가기 위해 집을 나서기도 했다. 서점에 있는 내 모습이 좋았다. 건전하고 건강하며 무엇보다도 돈을 들이지 않고 오래 머물러도 누구 하나 나가라 하지 않는 공간이었다. 처음에는 전공 관련 서적 코너의 책을 들춰보았다. 어느 날 우연히 ‘민음사의 세계 명작’ 코너 앞에 서 있었다. 같은 디자인으로 가지런히 정리된 수많은 책을 보고 숨이 가빠졌다. 시리즈 전권을 모두 읽어보고 싶었다. 그중 두께가 얇으면서도 제목이 마음에 드는 책을 골랐다. ‘아베 코보의 모래의 여자’였다. 나는 주변을 대충 둘러보고는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단숨에 책을 읽어 내려갔고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본 기분이었다. 이렇게나 책이 재미있었다니?! 그 뒤로 민음사 책을 몇 권 더 읽었고 점차 에세이, 여행 관련 서적 등으로 분야를 넓혀 나갔다. 커다란 침대가 주인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뭐 없는 자취방에 책이란 녀석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여러 권을 동시에 읽는 것을 좋아해 침대 머리맡에 책들을 두고 틈이 날 때 들여다봤다. 책을 가까이 두게 되는 좋은 습관이 생겼다. 하지만 곧이어 졸업작품을 만들어야 했고 그 길로 대학원 진학에 결혼과 출산, 육아까지. 예전만큼 책을 자주 읽지 못했다. 더구나 결혼하며 이사 온 곳에는 대형서점이 없었고 동네 서점도 학생들 문제집 정도만 진열이 되어 있었다.     


요즘은 대형 서점보다 도서관이 더 좋다. 서점은 판매의 목적으로 모든 것이 빠르게 바뀌고 책 이외의 것들을 함께 판매하며 화려하다. 사람들이 항상 바삐 움직이고 조명에 눈이 부시다. 도서관은 다르다. 판매의 목적이 아니기에 사람들의 눈길을 끌만 한 화려한 것이 없다. 편안하고 고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팔아야 할 새로운 책들이 끊임없이 들어오지 않는다. 언제나 변하지 않고 그 자리에 있다. 한 권의 책이 여러 사람에게 읽힌다. 그래서 난 따뜻하고 사람의 손때가 묻어있는 도서관에 마음이 간다.     


나는 무슨 흔적을 남겼을까? 나도 모르게 남긴 나의 흔적들이 문득 궁금해진다. 다음에는 살짝 선물 같은 것을 넣어 반납해 볼까 하는 혼자만의 상상도 해본다. 대학 시절 아르바이트 면접을 봤던 그 사장님이 “책 한 권 가방에 넣어 다녀 보세요.”라는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아직도 책이 주는 재미를 모르고 살았을 것이다. 그 사장님은 자신의 마법 같은 한 마디가 한 사람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는지 알고 있을까. 다시 만난다면 이 말을 나에게 해주어 감사했다고 꼭 전하고 싶다.     


내일 외출할 때 가방에 책 한 권 챙겨보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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