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을 보낸 봄은 봄이 와서 겨울이 떠났다고 생각하지만
겨울은 봄이 와서 떠난 것이 아니다
봄과 여름과 가을의 자리를 내주는 기다림이 습관이 되어서이다
동백꽃 따라온 동박새도 떠나보내는 시간이 필요하다
여름이 와서 봄이 터벅터벅 떠나가도 기다려주어야 한다
떠나는 여름이 힘없이 지쳐있다면 가을은 조금 더딘 걸음이어도 좋다
사람들은 여름 내내 뜨거워진 심장을 식힐 시간이 필요하다
가을은 여름의 호흡이 편해질 때쯤 천천히 불어오면 좋겠다
내어 주었던 자리로 돌아올 때
겨울은 가을이 흘리고 간 그리움 하나 하얀 눈 속에 품는다
꽁꽁 싸맨 그리움이 툭하고 터지면 목련꽃 수줍게 피어오르고
겨울이 어느 때처럼 자리를 내주고 나면
봄은 만개한 꽃잎을 보며 웃음을 짓는다
저마다의 계절에 사랑을 두고 온 사람들은
하얀 꽃잎과 붉은 낙엽을 책갈피에 꽂는다
뜨거운 여름날 창가에 앉아
책을 펼쳐 그 계절 속으로 들어간다
그 안에서, 사랑을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