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에서 온 종달새 편지(3.13.수. 봄이 오는 약수터)
겨울 약수터에 봄이 오기까지
지난해 불행한 사고가 있고 나서
한동안 봄이 오지 않던 약수터
아침나절 매일 같은 시각
지팡이에 의지한 느린 발걸음
가쁜 숨 돌리며 나무 끝을 올려보는 힘없는 눈망울
할머니의 숲 산책은 그렇게 평범한 발걸음이었지만
약수터 물을 길어가며 감사의 표시로
챙겨온 무언가를 주머니에서 꺼내 놓는 할머니
콩, 수수, 조, 잣 등 산새들을 위한 모이였지요.
찾아드는 새들이 없어 수북이 쌓여 가는 모이
어제 가져왔던 모이는 다시 챙겨가고 새로 가져온 모이를 놓곤 하였습니다.
지난해
약수터 옆 참나무 구멍에 둥지 틀어 새끼 기르던 동고비가
천적으로부터 공격을 받아 죽어가고 나서부터
한동안 약수터에서 새소리 듣기가 쉽지 않았지요.
할머니는 홀로 살고 계신다 했습니다.
몇 해 전 먼저 간 남편
자식들은 멀리 외국 나가 살고
커다란 아파트
찾아오는 사람 없고
찾아갈 곳 없어
숨만 쉬고 산다고 했지요.
긴 세월 살아오면서 함께 있을 때는 행복했는데
다들 떠나고 나니 이렇게 불행할 수 없다고
마음의 문을 닫고 계셨답니다.
고양이, 개, 새 등 동물들 키우는 이웃을 볼 때면
사람살기도 힘든 세상인데 싶기도 했지요.
희망이 사라지고
세상살이가 무덤덤해지니
삶에 대한 의욕도 살아지고 말았습니다.
주검을 맞이해야 할 때가 됐다 싶어
이것 저것 정리해 내다 버리고
마음마져 비우려
무엇에 이끌리듯 힘겹게 찾게 된 숲
황량한 겨울 숲
희망을 엿볼 수 없는 겨울 숲이다 싶었는데
혹독한 추위에도 얼지 않고 물을 흘려 보내는 약수터
시원한 물 한 모금 마셨을 뿐인데 응어리진 가슴이 시리며
속의 울분이 녹아 내리는 듯했지요.
매일 숲속 약수터를 찾으면서
마음도 밝아지고 기력도 좋아지는 듯했습니다.
감사한 마음도 들고
기쁨도 샘솟는 듯하여
숲에 무엇으로 보답할 것이 없을까 하다
새들의 먹이를 가져다 놓기로 했던 것이지요.
그러던
어느 날
약수터 탁자에 모이를 가지런하게 놓고 있는데 새 소리가 들리는 듯했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가지위에서 주저주저하던 새들이 탁자위 모이 주변으로 날아 들고 있었지요.
동고비, 박새, 곤줄박이 등
주변에 함께 있던 사람들의 환호성이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할머니는 이제 더 이상 불행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지요.
여러날
할머니는 약수터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약수터에 더 이상 할머니의 발걸음은 없었고 소식도 알 수 없었지만
새 모이는 대신하는 이웃이 있어
약수터는 늘 희망찬 새소리로 소망을 나눠주는 장소가 되었답니다.
'이 새벽의 종달새' 블로그 http://blog.daum.net/hwangsh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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