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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동안 9번 이사하고 남은 것

에필로그 <Home, Sweet Home>

by 스텔라윤


7년 동안 지나온 집들을 떠올리며 남편과 우스갯소리로 말하곤 한다.


"그동안 살았던 집 투어 하려면 하루 종일 걸릴 거야.

어쩌면 하루로도 부족할 지도.

우리는 제주까지 갔다 와야 하잖아."


서랍에는 전세계약서와 월세계약서, 매매계약서와 분양계약서가 켜켜이 쌓여있다. 서랍 속의 서류와 물리적 자산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서의 모든 경험이 나의 자산으로 남았다.



이사하며 별별 사람들을 만났고 내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과 마주해야 했다. 내가 내린 결론은 '모두에게 적용되는 상식이란 건 없다.'라는 것이다. 세상에는 성격만큼 각양각색의 상식이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됐다.


'좋은 게 좋은 거다.'라는 마음은 끊임없이 우리를 골탕 먹였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마음으로 산다. 물리적으로는 약간 손해를 볼지라도 마음이 편안한 쪽을 선택한다. 물리적 손해는 시간이 흐르면 잊히지만, 마음 불편한 선택은 두고두고 후회로 남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손해를 덜 보려고 소중한 시간과 영혼을 갉아먹히며 아웅다웅하고 싶지 않다.


"이만하길 감사하다.

조금 손해 보더라도 빨리 이 상황에서 벗어나자.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살지 말자."


내 기준에 비상식적인 상황을 겪을 때마다 내가 포용할 수 있는 상식의 세계는 넓어지고 다채로워진다. 그리고 반면교사 삼아 조금이나마 더 성숙한 인간이 될 수 있음에 감사한다.


이어령 선생님의 말씀처럼 '감사하는 마음, 그것은 자기 아닌 다른 사람에게 보내는 감정이 아니라 실은 자기 자신의 평화를 위해서이다. 감사하는 행위, 그것은 벽에다 던지는 공처럼 언제나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온다.'


때로는 억지스럽더라도, 이왕이면 기꺼이, 기쁨과 감사를 선택하고 싶다. 그래야 내 마음이 평화롭기 때문이다.


어떤 일이 있었든 끝내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마무리를 해서일까, 숱한 고난이 있었음에도 지난날을 떠올리면 즐겁고 감사했던 기억이 먼저 떠오른다. 우리를 골탕 먹이려고 작정한 듯했던 에피소드들은 쌓이고 쌓여 이렇게 또 한 편의 브런치북이 되었다.


@영화 <작은 아씨들>


결혼하고 7년 동안 9번 이사하며 집에 대한 두려움이 생긴 게 아니라 오히려 덤덤해졌다. 어딜 가든 잘 살 거라는 걸 알기에 집에 대한 집착이 줄어든 동시에 집이 주는 안정감을 소중히 여기게 됐다.


악연을 모두 피해 갈 수 없는 것처럼 결이 맞지 않는 집도 만날 수 있지만, 그 안에서도 내 인생은 계속된다는 것, 그리고 오히려 성장할 수 있는 기회로 만들 수 있다는 것도 배웠다.


어디에 살든 어떤 일이 생기든 결국 시간과 함께 지나갈 거라는 앎, 무너지지 않을 나에 대한 믿음, 남편과 함께라면 웃음을 잃지 않으리라는 확신을 얻었다. 언제나 제일 좋은 집은 '지금 나와 우리 가족이 살고 있는 집'이다.



처음 집을 사겠다고 마음먹었을 때는 물리적, 심리적 안정감을 위해 집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다만 7년이 지난 후 돌아보니 집은 '안정감'을 줄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귀한 '자유'를 준다. 나에게 집은 마음껏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주는 안전기지와 같은 곳이다.


안정과 자유는 공존할 수 없는 듯 보이지만, 나에게는 그 두 가치 모두 중요하다. 안정 없는 자유는 공허하고 자유 없는 안정은 지루하다. 마음 깊은 곳의 안정감을 토대로 생생하게 날 것의 삶을 살고 싶다. 결과는 좋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도전하고 모험하며 살고 싶다.


지금 어디에 살고 있든 내가 살고 있는 공간을 사랑하거나, 사랑할 수 있는 공간으로 바꾸거나 혹은 내 마음을 바꾸거나, 그 무엇도 바꿀 수 없다면 미련 없이 떠나거나. 무엇을 선택하든 우리의 자유다.


이훤 작가의 말처럼 ‘집은 어디에나 있고 자주 어디에도 없다.’ 그래도 불안할 필요는 없다. 내가 어디에 있든 나는 지금 여기에 있으니까.



Home, Sweet Home

Here and Now

Happy, Peaceful, Liber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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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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