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현대 사회는 비대면의 시대다. 직접 얼굴을 대하지 아니하고도 얼마든지 '아름다운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다. 우리들의 이 '브런치 스토리'가 가장 좋은 사례 아니겠는가. 하지만 공자 말씀에도 "옛 것을 익히고 새로운 것을 알아야 한다 (溫故而知新)" 하지 않으셨던가. 《논어 · 위정》옛 것을 먼저 익혀야 한다.
풍류와 낭만으로 맺어가는 아름다운 인간관계
과거, 대면 시대의 '아름다운 인간관계'는 어떻게 맺어졌을까. 대부분의 경우는 '음식'을 매개체로 함께 어울려 먹고 마시는 가운데 맺어지기 시작했다. 소오생의 매거진 [중국 음식 중국 문화]의 키포인트는 '음식' 그 자체가 아니라 '아름다운 인간관계'에 있는 것이다.
'음식 飮食'이란 말은 무슨 뜻인가? '마실 음飮', '먹을 식食'이다. 그동안 매거진 [중국 음식 중국 문화]는 <제1부 중국 음식문화의 탄생>과 <제2부 중국요리, 식도락 여행을 떠나자>를 통해서 '먹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 지금은 <제3부>. '중국 음식과 인간관계'에 포인트를 맞춰 이야기 중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마시는 것'을 매개로 하여 맺어지는 인간관계 이야기다.
'마시는 것'의 대상에는 무엇이 있을까? 첫 번째가 '술'이요, 두 번째가 '차茶'다. 그게 필수 코스다. 그런데 동방 전통 사회에서의 '술'은 일반적으로 먹는 것과 동시에 이루어진다. 여럿이 어울려 주린 배를 채운다는 원초적인 행위이니만큼 욕망을 충족시키는 즐거움이 떠들썩하게 펼쳐진다.
자, 이제 배도 채워지고 어느 정도 주흥酒興이 도도해진다 치자. 이때가 중요하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친지들과 이런 분위기를 어떤 방법으로 어떻게 즐기시는가? 소오생의 경우, 오랜 벗님들과 만나면 안타깝게도 이럴 때 이런저런 이유로 꼭 싸우는 경우가 많았다. 에휴, 아무리 오랜 벗님이라도 그렇지, 이러면 다시 만나기가 꺼려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옛 것'을 익히고 '옛 문화'를 배울 필요가 있는 것이다. 우리 동방의 선인先人들, 사대부나 선비들께서는 그때의 그 좋은 분위기를 어떤 식으로 즐기면서 '아름다운 인간관계'를 맺어 나가셨을까? 먼저 아래 글을 통해 기본 매너를 알아야 한다.
자, 드디어 마지막 단계다. 주선酒仙이 되는 고급 비결이요, 중국 사회의 리더 그룹과 '아름다운 인간관계', 진정한 '꽌시 關係, 关系'를 맺을 수 있는 최후의 관문이다.
진정한 꽌시를 맺으려면 그림 속의 퀴즈 게임을 잘 푸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시와 그림 속에 내재된 인생의 풍류와 낭만을 우리의 것으로 만드는 게 더욱 중요하다.
진정한 낭만주의자가 되어라!
그래서 상대방이 부지불식 간에 탄복하게 만드는 경지에 오르면 중국 사람이건 한국 사람이건 미쿡 영쿡 사람이건 누구나 상대방을 진심으로 좋아하게 되어 있다. 그렇지 않을까? 이제 술과 함께 그 풍류와 낭만을 즐겨보자! 아름다운 인간관계를 맺어보자!
Opening Ceremony, 술을 대하니 노래를 부르렸다!
고금동서의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가장 낭만적인 사람은 누구일까?
음, 너무 어리석은 질문인가? 서쪽 동네 피노키오 양반들은 소오생이 잘 모르니까 빼자. 질문 다시!
중국 고금의 문인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낭만주의자는 누구일까? 뭐라? 별로 아는 이름이 없으시다고? 하하, ‘별로’라니, 그럼 한 사람 이름 정도는 아시는 모양이지? 그렇다면 걱정 말고 자신 있게 말해 보시라. 바로 그 사람일 테니깐.
그렇다! 바로 이태백李太白이다. 제아무리 중국문학에 일자무식인 사람이라도 그 이름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절대로 없을 터!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이 태백이 놀던 달아, 어렸을 때부터 휘영청 밝은 달을 볼 때마다 월궁月宮 선녀, 옥토끼와 함께 그 이름을 노래해 왔으니까! 그치?
우리가 그러한데 중국 사람들은 오죽하겠는가? 모두들 그를 ‘시의 신선詩仙’이요 ‘술의 신선酒仙’, ‘귀양 나온 신선, 적선謫仙’으로 하늘처럼 받들어 모신다. 그뿐인가? 중국의 지식인들은 술자리를 대비하여 그의 시구詩句 몇 자락쯤은 아예 유행가 가사처럼 기본으로 읊조리니, 중국을 이야기하고 술을 이야기하고 낭만을 이야기하자면서 이태백 이야기가 빠지면 말이 안 되겠다. 더구나 맑고 청아한 목소리로 그의 시 몇 구절을 낭송하다 보면 또 누가 아는가? 우리도 덩달아서 ‘주선’의 경지에 오를 수 있을지?
그런데 이태백의 낭만을 배우기 전에 먼저 할 일이 있다. 술자리의 Opening Ceremony! 중국 사람들은 술자리를 시작할 때 거의 늘 하는 말이 있다. 그러니 그것부터 배워보자. 네? 중국말을 배우자구요? 어휴, 큰 일 났네, 어뜩하지? 하하, 겁먹을 필요 없다. 중국말은 아주 쉽다. 게다가 이 말은 대단히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으니 지금 꼭 배워두자.
아무튼 중국 사람들이 무슨 말로 술자리를 시작하느냐? 소설 《삼국지》에 나오는 유명한 조조曹操 알지? 그가 적벽대전赤壁大戰이 벌어지기 전날 밤, 연회를 베풀며 불렀다는 <단가행短歌行>이라는 노래가 있거든? 그 노래의 맨 첫 부분이란다. 큰 소리로 따라 읽어야 된다, 알았지?
“뚜이(↘)지우(↓) 땅(→)꺼(→), 런(↗)썽(→) 지(↓)허(↗)?”
"對酒當歌, 人生幾何?"
"술을 대했으니 노래를 부르렸다! 허망한 삶이여, 얼마나 살겠는가?"
이야, 아주 자~알 따라 읽는걸? 헤헤, 중국어 하나도 안 어렵네요? 괜히 겁먹었네. 아주 재밌어요. 무협 영화 주인공이 된 기분이에요. 전생에 소림사 주방장이었나? 어험, 험! 흰소리하지 말고. 하여튼 이런 말은 무조건 외워야 한단다. 이 노래의 그 뒷부분은 몰라도 된다. 그니까 많이 외울 필요도 없다. 딱 이 구절, 여덟 글자만 외우면 된다. 선생님 말씀을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기나니! 알았지?
아무튼 이렇게 구성진 목소리로 술자리에 일단 먼저 멜랑꼴리한 분위기를 팍― 띄우고 난 다음, 그다음엔 호쾌하고 굵직한 목소리로 신명 나게 발음해야 한다. 조금 빠르게 읽어야 기분이 살아나니까 잘 따라와야 한다, 알았지? 네에~? 또 있어요? 여덟 글자만 외우면 된다더니, 끝난 게 아니었나요? 으으~!
하하, 그건 시구 얘기였지이! 중국 사람들은 아까 그 시구 뒤에 언제나 관용어처럼 한 마디 더 덧붙인다. 그니까 기왕 외우는 김에 하나 더 외우렴. 아까 잘하던데, 뭘! 자, 어렵다는 편견을 버리고 도전하는 거야, 오케이?
아이고, 뭐 이렇게 기냐? 못 따라 하겠어요. 아냐, 아냐. 하나도 어렵지 않다. 잘하는 걸, 뭐. 자, 기왕 입에 올린 김에 몇 번 더 소리 내어 읽어서 아예 입에 올려버리자. 열 번, 시이~ 작! (열 번이나? 어휴!) 옳지! 아주 자~알 읽었다. 그다음에는 술잔을 부딪치며,
“따(↘)지아(→) 이(↘)치깐/베이(→)!”
"大家一起干杯!"
자, 다 같이 원 샷!
소리 높여 외치면 된다. Opening Ceremony 끝!
그렇게 신바람 나는 술자리가 시작되는 거지. 그래, 맞아. 인생이란 게 다 그렇게 허망하고 괴로운 거요! 먼저 그렇게 멜랑꼴리하게 강조하고 나서, 그러니깐 어쩌자고? 기회란 게 그렇게 많지 않은 법. 그니깐 오늘 저녁엔 신나게 한번 놀아보자고!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그 얘기다. 별 거 아니지? 한시漢詩로 폼 잡아봤자, 노는 거는 우리랑 똑같지?
전에도 말했지만 중국의 북방 사람들 중에는 지독한 호주가豪酒家가 많다. 소리 높여 흥겹게 떠들면서 밤을 새워 술 마신다. 만약 그런 술자리에 합석했을 때, 우리가 먼저 지금 배운 말을 써먹는다면 이거야말로 대 히트! 꼭 기억하고 잘 써먹어보시길! 아셨지? 자, 그런 의미에서 연습 한번 해볼까? 라이(來)! 뚜이/지우 땅/꺼, 런/썽 지/허~? 깐/베이!
아침에는 푸른 실, 저녁에는 흰 눈이라!
자, 이렇게 조조의 간단한 시 한 구절로도 흥겨운 술자리가 펼쳐지는데, 이태백은 또 얼마나 대단하겠니, 그치? 꾀 많은 조조가 들으면 섭섭하겠지만, 말이야 바른말이지, 이태백과 조조는 차원이 다르다.
일필휘지一筆揮之, 그의 붓이 종이에서 멋대로 춤을 추면 그게 바로 한 편의 시! 그 시가 탄생되는 순간 비바람이 몰아치고 귀신이 흐느낀다는 고금동서 최고의 천재시인! 일 년 삼백육십오일 언제나 달과 그림자를 친구 삼아 꽃밭 사이에서 통쾌하게 술을 즐기는 호주가豪酒家 이태백!
그러다가 술에 잔뜩 취하면 동쪽 시냇가 소나무 가지 위에 그 달을 잠시 걸어놓고 하늘에서 떨어지는 은하수의 장관을 지켜보는 천진난만한 장난꾸러기 이태백! 드디어는 앙천대소仰天大笑를 터뜨린 후 천지를 금침 삼아 큰 '대大' 자로 뻗어 눕는 광인狂人 이태백! 어때, 게임이 안 되겠지, 그치?
중국 지식인, 아니 동방의 선비들은 술자리를 가졌다 하면 언제나 이태백을 초대했다. 왜? 천하제일의 풍류객인 그를 초대하면 술자리가 흥겨워지니까, 진정한 낭만주의자인 그를 초대하면 인생이 즐거워지니까!
자, 그럼 이태백의 낭만이란 게 과연 무엇인지, 입심 좋은 우리 중국 여행의 길 안내자 소오생을 친구 삼아 그 낭만의 세계로 함께 여행을 떠나자. 잠깐, 그런 의미에서 먼저 건배 한번 할까? 다 같이 한 잔 쭈~욱, 마시고서 사랑과 낭만 찾아 우리의 여행을 떠나보자! 깐베이!
자, 그럼 먼저 그의 시 한 수를 들어보시라. 어휴, 그럼 한시漢詩 아녜요? 헤헤, 저는요, 중국어까지는 또 몰라도 한자漢字 같은 건 보기만 해도 머리가 어지러워지는 증세가 있는데 어쩌죠? 안 보면 안 되나요?
음, 나는 거짓말을 하긴 싫다. 중국 문자는 결코 쉽지 않다. 특히 문학은 하면 할수록 어렵다. 하지만 걱정 마시라. 매사에는 요령이 있는 법! 콜럼버스의 달걀처럼, 키포인트를 아느냐 모르느냐, 그것이 중요하다. 사기당하는 셈 치고 일단 낭만의 여행 가이더, 소오생의 뒤를 졸졸졸 따라와 보시라! 앗, 중국문학이 이렇게 재밌는 거였어? 우리의 생활, 그 자체네? 알고 보니 별로 어렵지도 않잖아? 감탄과 함께 사랑과 낭만의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그 낭만의 세계를 음미하는 첫 번째 방법은 낭송! 낭송이다. 낭송 아시지? 중고등학교 다닐 때 교회 같은 곳에서 <문학 낭송의 밤>, 그런 거 해보셨지? 그거다. 감정을 주고받는 데는 소리가 최고다. 한자를 보면 머리가 어지러워지신다고? 안 보면 안 되냐고? 까짓 거, 그런 소원도 못 들어주랴? 그래 그래, 안 봐도 된다. 그냥 듣기만 해 보시라. 무슨 뜻인지 몰라도 상관없다. 클래식 음악을 무슨 뜻인지 다 알고 듣는 건 아니지 않겠어?
마찬가지다. 그냥 그 분위기, 그 느낌을 눈을 지그시 감고 음미해 보시라. 그럼 지금부터 낭만의 가이더, 소오생이 우선 먼저 중국인들이 술자리에서 가장 많이 애송하는 <장진주將進酒>를 분위기 쭈~왁 깔고 낭랑하게 읽어보겠다. 준비되셨지? 오케~이?
황하의 클라이맥스, 호구폭포壺口瀑布
그대, 보지 못하였는가?
하늘에서 내려온 황하의 물,
분류도해奔流到海하면 다시 오지 않는다네!
그대, 보지 못하였는가?
거울 보며 슬퍼하는 고대광실 귀인貴人의 머리카락,
아침에는 청사靑絲더니 저녁에는 흰눈이라!
君不見, 黃河之水天上來, 奔流到海不復回 !
君不見, 高堂明鏡悲白髮, 朝如靑絲暮成雪 !
우와, 선생님이 중국말로 그렇게 읽으니까 죽이는데요? 정말 무슨 클래식 멜로디 같아요! 무지 폼 나는 걸요? 정말 중국 사람들이 들으면 꾸바닥! 엎드릴 것 같아요! 가만있어 봐라, 에이, 그치만 그거야 선생님 얘기고, 저같이 중국말 초짜는 그걸 제대로 발음하고 암송하려면 몇 년 걸리겠네요, 뭐…
하하, 아니다. 아무리 초짜라도 세 달이면 충분하다. 중국 사람하고 똑같이 낭송할 수 있다. 바로 이런 걸 낭송할 수 있게 하려고 중국어를 가르친답시고 그 난리를 치는 거란다. 그런데 시詩 낭송은 중국말로 안 해도 상관없다. 그냥 우리말 발음으로 낭송하면 중국 사람들이 더 좋아한다. 우리말 속의 한자 발음은 당나라 때 중국어 발음이기 때문이다.
새벽에 약수터에 가면 가끔 시조 읊으시는 할아버지들 뵌 적 있지? 그런 식으로 우리말 독음 그대로 기분 내키는 대로 대충 얼렁뚱땅 구성지게 낭송하면 중국 사람들은 더 좋아한단다.
군, 불겨~~♬♫~~ 어~~♬~~언, 황하아~♬~지수……
와, 정말 그것도 멋들어진 걸요? 선생님, 너무 폼 나요! 어, 그래? 어험, 험… 선생님 목소리가 그렇게 좋았느냐? 근데요, 좋긴 좋았는데요, 어째 좀 이상해요. 별로 그렇게 신나는 분위기가 아닌 거 같아요. 도리어 좀 멜랑꼴리한 느낌인데요? 나만 그런가? 하하, 네가 그걸 느끼는 걸 보니 참으로 기쁘다. 가르친 보람이 있구나. 그게 말이지, 너만 그런 게 아니라 낭만이란 게 원래 그런 거란다.
인간의 가장 큰 욕망은 무엇일까? 가장 큰 비극은 무엇일까? 흐르는 세월을 붙잡고 싶은 욕망, 언젠가는 한 줌의 흙이 되어 사라져 버리는 존재의 비극 아니겠니? 아까 조조의 <단가행>에서도 얘기 안 하던? 허망한 삶이여, 살면 얼마나 살겠는가?
이 태백도 마찬가지다. 아침에는 푸른 실(머리카락이 푸른 실?), 저녁에는 흰 눈이라!(문학적 기법이란다!) 그의 모든 작품은 언제나 무한한 공간과 덧없이 흐르는 시간 속에 홀로 서서 인간의 왜소함과 무능함을 서글프게 읊조리는 우울하고 슬픈 분위기로 시작한단다. 캬, 슬프구나… 사연이 이러하니 낭만의 술, 그 첫 잔을 어찌 존재의 비극을 위하여 마시지 않을 소냐! 우리도 잔을 들어 보자.
쥔/부/지엔 君不見~ 황/허/즈/수이黃河之水티엔/상/라이天上來,
뻔/리우/따오/하이奔流到海,뿌/푸/후이不復回?
(을)라이(來),
슬픔을 위하여! 낭만을 위하여! 깐/베이!
염소 삶고 소를 잡아 우리 한번 즐겨보세
그러나 낭만주의는 허무주의가 아니다. 퇴폐주의도 아니다. 비극에 대한 인식은 첫 잔으로 충분하다. 낭만의 술, 그 두 번째 잔에는 슬픔 대신 다른 게 담겨야 한다. 그게 뭔데요? 궁금하지? 궁금하면 <장진주將進酒>의 그다음 부분을 계속 소리 내어 읽어보자. 너도 따라 읽어야 돼? 그럼 슬픔 대신 뭐가 담겨야 하는지 저절로 깨닫게 될 테니깐!
인생이란 잘 나갈 때 즐겨야 하는 법,
휘영청 달빛 아래 텅 빈 술잔 두지 말라!
人生得意須盡歡, 莫使金樽空對月。
하늘이 주신 재주 쓰임새가 있을 터니
천만금 탕진해도 돌고 돌아 돌아오리.
天生我材必有用, 千金散盡還復來。
염소 삶고 소를 잡아 우리 한번 즐겨보세.
기왕지사 마신 술, 삼백 잔은 마셔야지!
烹羊宰牛且爲樂, 會須一飮三百杯!
어때, 선생님 목소리가? 점점 목소리가 커지면서 빨라지고 있지? 선생님이 일부러 그렇게 꾸며서 읽는 게 아니란다. 글쓴이의 감정을 읽는 이의 것으로 만들면 목소리에 저절로 그 감정이 담기게 되는 거란다. 아무튼 이태백은 슬픔 속에서 즐거움의 요인을 찾아내는 천부의 능력을 갖춘 사람이다. 그게 이태백 최고의 매력이지. 왠지 인생이 서글프기만 하던 사람도 그의 시구를 소리 내어 박자 맞춰 낭랑하게 읽다 보면 너무너무 흥겨운 기분으로 변한단다. 자, 계속 들어보렴.
잠부자여, 단구생이여!
한 잔 드시게나, 단숨에 쭈욱― 드시게나!
岑夫子, 丹丘生! 將進酒, 君莫停!
그대들 위하여서 노래 한 곡 부를 터니,
그대는 귀 기울여 내 노래를 들어보소!
與君歌一曲, 請君爲我傾耳聽!
잠부자나 단구생은 모두 이백의 친구. 근데, '장진주將進酒'가 무슨 뜻인지 아니? 원 샷! 그 뜻이다. 가만, 아예 지금 이태백이 하는 말을 몽땅 다 니네들 하는 말로 번역해 줄까?
아그들아, 아무리 인생이 슬프다지만 워쩌겄냐? 지금은 그런 생각 싹 잊어버리고 우선 한 잔 쭉― 통쾌하게 마셔보더라구! 자, 자, 그러지 말고 잔 들고, 다 같이, 원 샷! 캬~ 술맛 좋고! 자, 헹님이 시방 노래 한 곡조 뽑을 텡께, 느그들 잘 들어봐라잉, 알았제?
그런 말이다. 어때? 한시漢詩라는 편견을 버리니까 어려운 거 하나도 없지? 너무 재밌지, 그치? 자, 그럼 이다음 부분에는 무슨 내용이 나올까? 그렇다. 이 태백이 친구한테 노래 불러주는 장면이 나오겠지, 뭐.
신명 나는 음악이며 맛난 안주 필요 없다,
바라노니 술 취하여 영원히 깨지 말라!
鐘鼓饌玉不足貴, 但願長醉不用醒!
예로부터 성현들은 고독하기 그지없어,
술꾼만이 그 이름을 후세에 남겼도다!
古來聖賢皆寂寞, 惟有飮者留其名。
진사왕 조식, 평락에서 연회를 열었을 때,
한 말에 일만 냥, 그 비싼 술 마셨는데
陳王昔時宴平樂, 斗酒十千恣歡謔。
여보시오, 주인장!
당신은 어찌하여 돈이 없다 그러시오?
금방 가서 술 받아와 그대와 마시리라.
主人何爲言少錢, 徑須沽取對君酌!
아해야, 이리 오너라!
오화마五花馬와 천금구千金裘, 값비싼 것 가져가서
술을 받아 오너라!
만고의 근심을 불살라 없애리라!
五花馬, 千金裘!
呼兒將出換美酒, 與爾同銷萬古愁!
이야, 정말! 대단하네요! 조금 아까 처음에 시작할 때는 기분이 영~ 아니었는데 지금은 너무너무 흥겹네요! 장구치고 북 두들겨 신명 나게 한 마당 놀이판을 벌인 것 같은 걸요?
하하, 그렇지? 옛날 얘기 하나 해줄까? 예전에 너희 선배들을 인솔하고 중국으로 연수를 갔을 때 얘긴데, 환영회 석상에서 주흥이 도도하게 일어날 무렵이었지. 아, 그런데 평소 문학사 수업 시간에 나한테 달달 시달림을 받았던 한 녀석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라구?
아니, 저 녀석이 왜 저러지?(초조, 불안…) 아, 근데 그 녀석이 강단에 올라가더니만(허걱) 호탕한 목소리로 이 노래를 멋들어지게 낭송을 하지 뭐겠니? 그랬더니 중국 선생님들, 모두들 화들짝! 놀라며 눈이 똥그래지는데, 하하, 그날 완전히 만루 홈런 쳤지.
낭송이 마지막으로 치달으니까, 아 글쎄, 십여 명이나 되는 그 중국 선생님들이 약속이나 한 듯 전부 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다 함께 목청을 높여 마지막 부분을 함께 외치지 뭐겠니? 이렇게 말이지.
“위/얼 통(↗)쌰오(→)완(↘), 구(↓), 처~우(↗)!”
“만고의 근심을불살라 없애리라! (與爾同銷萬古愁!)”
술, 술, 술, 낭만의 술을 마셔라!인생은 99%가 괴로움과 슬픔. 하지만 나머지 1%의 즐거움이 바로 오늘일지 모른다. 이 순간을 놓치지 말아라! 그러나 핵심은 술이 아니라 낭만! 낭만은 허무도 퇴폐도, 대책 없는 이상주의나 꿈꾸는 비관주의도 아니다. 반짝이는 지성이다. 방심과 교만이 찾아오는 그 순간, 아차차, 고은 선생님 짝이 난다. 조심, 또 조심할지언저!!!
우렁차게 합창(?)을 하고는 깐/베이를 외쳐대는데, 좌중은 그야말로 흥분의 도가니! 중국인 한국인, 선생 학생, 남녀노소 모두가 흉허물 없는 친구가 되어 하나로 어우러져 즐기는데, 이야~, 정말 대단했단다. 그 후 우리가 어떤 대접을 받았는지 구태여 말할 필요도 없겠지?
자, 그럼 이야기를 정리해 볼까? 낭만의 첫 번째 요건은 지성이다. 지성이란 단순 지식의 축적이 아니다.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는 사실, 그 존재의 비극을 인식하는 것이 지성의 출발이다. 그러나 인간 실존이 제아무리 비극성을 지닌 것이라 하더라도, 그 역시 초대받은 축복 아니겠니?
그러므로 어떻게 해야 할까? 덧없는 삶일지라도 기왕지사 주어진 여건이라면 그 속에서나마 최대한 즐거움의 공약수를 찾아내야 하겠지? 지금 우리가 함께 하고 있는 이 시간은 두 번 다시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적극적으로 삶의 긍정적 요인을 찾아 나서는 것, 인생을 뜨거운 열정으로 사랑하는 것! 그게 바로 낭만이다. 오케이? 공감이 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