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유행했던 노래의 가사처럼 불타오르는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해도 시간이 지나면 의리로 살아간다고 한다. 연인에게 느꼈던 쫄깃하던 설렘이나 몽글몽글한 감정은 40억 년 전 원시생물이 처음 생겨났을 때처럼 까마득하게 느껴진다.
어차피 그렇게 의리로 살아갈 사람들인데 사랑 때문에 울고, 아파하고, 그 좋던 밥맛을 잃기도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래도 사람들은 너 없으면 불행하고 네가 있어야 나의 인생이 완성된다는 말을 하며 소설 같은 사랑을 좇는다.
소설 '구의 증명'에서 주인공 구와 담은 어릴 적부터 서로에게 필연적인 존재가 되어 가난과 아픔을 공유하며 애절한 사이가 된다. 그 둘은 누가 보기에도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다. 소설의 시작은 '구'가 죽은 채로 발견되었고 그런 구의 시체를 담이 뜯어먹으며 시작된다. 너무나 사랑해서 그럴 수밖에 없다고. 소설 전체의 스토리가 '담'이 왜 구의 시체를 먹을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정당성과 당위성을 부여하는 것만 같았다.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에 의한 여러 형태의 사랑이 하나로 정의되고 모든 사람에게 이해되기란 불가능할 것이다. 우리가 단순한 사람을 놀릴 때 쓰는 표현인 아메바조차 DNA 속에 4억 개의 유전정보를 가지고 있으니 복잡한 유기체인 사람 안에서 일어나는 화학반응을 정확하게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너무 사랑해서...
가끔 사랑한다는 이유가 모든 편견과 부조리와 잘못된 행동에 변명으로 따라붙는 것을 본다. 소설에서 시체를 먹는 담도 구를 사랑하기 때문에라는 이유 외에는 정당화될 수 없는 것처럼 사랑은 많은 어리석은 일들을 저지르게 한다.
사랑 때문에 비상식적인 행위를 하지만 많은 학자들이 사랑은 위대하다고 말한다. 많은 작가들이 사랑을 소재로 글을 쓴다. 사랑으로 느끼는 감각과 감정이 아프지만 행복하고 빛나지만 마냥 눈부시지는 않아서다.그리고 그 과정에서 성장이라는 엄청난 세포분열이 일어나기 때문일 것이다.
밋밋하고 단순한 단세포 같았던 몸과 마음이 사랑을 하며 획기적인 세포분열을 통해 성장한다.
자신도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 신비롭고 체계적인 다세포 생물이 되어가는 것이다.
때론 미세하고 때론 거대한 변화에 반응하며 기쁨과 슬픔을 반복하면서 성장해 간다. 몸은 어른이지만 마음은 아이를 어른으로 만들고 이해불가능한 상황을 설명하게 해 준다. 사랑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어제 아들과 부모가 반대하는 결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엄마는 만약에 내가 엄마가 정말 싫어하는 사람과 만나면 어떻게 할 거예요?"
"부모가 반대한다고 불타는 사랑을 어떻게 막니? 그냥 둘이서 알아서 하라고 할 거야. 대신 우리 집에는 너만 와."
"진짜요? 근데 걱정 마세요. 그럴 일은 없을 거예요."
결혼하면 의리로 변할 사랑이지만 그 당시에는 얼마나 절절한지 아니까.
부모의 반대가 둘 사이의 사랑을 얼마나 견고하게 만들지 아니까.
그래도 그들에게 성장이 남을 테니까.
결국 의리로 변할지라도 사랑이 필요한 이유는 진정한 어른이 되기 때문이다.
남편과 연애를 시작하고 처음 남편 부모님께 인사를 갔을 때 저를 예뻐하며 반겨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어느 날 어머니의 달라진 태도에 이유를 알아보니 궁합이 나빠서라는 걸 알게 되었지요. 내가 왜 이런 대접을 받으며 결혼해야 하는가 라는 생각에 오기와 자존심이 발동해남편과 헤어질 결심을 하고 남편을 피해 다녔었죠.
우여곡절 끝에 5년 간의 긴 연애를 끝내고 결혼했지만 궁합이 나쁘다는 역술가에게 보란 듯이 20년 가까이 사랑을 넘은 의리로 친구처럼 잘 지내고 있습니다.^^
'구의 증명'에서 나에게는 기괴하게 느껴지는 그들의 사랑을 보며 사랑에 대해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즘 젊은 친구들에게 인기 있는 소설이라는데 인상을 쓰며 읽은 부분도 있었지만 심리묘사 하나는 탁월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