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기억 속엔 우리 집에 함께살았던 스물여덟에 이른 별이 되어버린 제가 잘 따랐던 둘째 외삼촌 정도의 나이를 먹은 당신이 빛나는 청년의 모습으로 교복을 입고 거기 책 속에 있었지요.
그런데 당신은 정작 살아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하더군요.
당신의 詩를 처음읽었어요. <序詩>였지요...
열두 살 어린 제게는 잘 알 수 없는 내용이었으나 그래도 참 좋았답니다.
'죽는 날까지'라는 말속에 결기가 느껴졌고, '하늘을 우러러'란 말속에 하나님을 믿는 제겐 그것도 공감이 됐어요.
부끄럼 없이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런 궁금증도 생겼지요.
그때부터 이미 저는 호기심천국이었나 봐요.. 물론 초등학교 저학년 땐 탐정소설을 좋아해서 '셜록 홈스'같은 탐정이 되겠단 생각도 했었지요. 그래서 저는 여전히 추리와 상상의 날개를 달고 시인이 되었나 봅니다.
2022년 9월 17일 발행글 스크린샷
'잎새에 이는 바람'이 중학교를 갔을 때 즈음 우리 민족을 향해 행해진 일제의 만행이었단 걸 알게 됐지요.. 허나 그 전이나 지금도 전 바람을 무척 좋아해서 그렇게 국어시간 배우는 것이 의무적인 암기였던 것 같아요. 물론 그 바람으로 당신이 '나는 괴로워했다'는 것을 보면 분명 바람은 부정적 의미가 맞았을 테지요.
'별을 노래하는 마음'은 누가 보아도 아름다운 마음이지요.열두 살 제게도 별은 아름다웠으니까요.
그런 아름다운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사랑'한 당신이 스스로에게 주문처럼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라고 했을 때의 마음을 이제는 어른이 돼서 당신이 <序詩>를 쓰신 1941년 당시 당신 나이의 두 배가 되어서 감히 생각해 봅니다. 아프고, 서럽고, 추웠을 당신의 그 마음을...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로 끝을 맺는 당신의 詩처럼 정말 오늘 이 밤에도 별은 바람에 스치우고 있을 테지요.
한 번도 자신의 별을 갖지 못했던 당신,
1917년 12월 30일 겨우 이틀 만에한 살을 먹고 태어나 1945년 2월 16일, 조국의 광복을 꼭 6개월 남긴 채 차가운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생을 마감한 당신이 너무 안쓰러워서 울기도 했던 시절이 있었답니다.
그렇게 당신을 그리워하며 함께 웃어보기를, 함께 차를 마시며 얘기를 나눠보고, 함께 단풍이 든 오솔길을 걸어보기를 상상했던 그 소녀가 이제는 반백의 여인이 되어버렸습니다.
지금 제 인생의 잔고가 얼마나 남은 것인지 알 수 없으나 언젠가 저도 당신이 계신 그곳에서 함께 웃어볼 날을 소망하며 여전히 당신의 詩心을 마음속 깊이 간직한 채로 시인 李恩熙로 살아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