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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이 거지 같은 놈이

김소라 시점의 마지막 장면, 이제 한비의 시점으로 갑니다.

by 박재

나는 요즘 한비와 주하진을 보면, 목에 가시가 걸린 것처럼 답답했다. 더 이상 둘이 수업시간에 주고받던 이상한 장난은 없었다. 학교가 끝나고 둘이서 나란히 정글짐에 앉아 있던 모습도 사라졌다. 주하진이 변한 건 명백했다.


나쁜 놈. 사귄 지 한 달 좀 넘었다고 변한 놈. 한비만 불쌍하게 됐다.


가끔씩 내가 주하진을 험담해도, 한비는 웃으며 말렸다.

“주하진 게 좀 너무한 거 아냐?”


“그러지 마, 소라야.”
“나는 괜찮아. 하진이가 피곤해서 그런 거야.”

하지만 나는 안다. 괜찮다는 말은 거짓말이었다. 한비는 여전히 주하진에게 미소를 지었지만, 예전처럼 눈빛이 반짝이지 않았다. 그 웃음 속에 희미한 슬픔이 섞여 있었다. 한비는 계속 노력하고 있었다. 그 애는 사랑을 주는 법을 알았다.


문제는, 주하진 그놈은 받는 것에만 익숙한 놈이라는 거다. 그리고, 그마저도 이젠 귀찮아하는 눈치였다.


확실히, 저번 일 이후로 주하진은 나를 달갑지 않게 여기기 시작했다. 그날 이후로, 그는 나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미묘하게 얼굴을 찌푸렸다. 내가 한비와 이야기하고 있으면, 멀리서도 신경 쓰는 기색이 역력했다. 나는 1교시부터 등교하는 순간까지, 쉬는 시간부터 하교할 때까지 둘을 유심히 지켜봤다. 한비와 주하진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려고 했다. 한비는 주하진이 자신을 더 아껴주길 바랐고, 나는 주하진이 한비에게 기꺼운 마음을 가지길 바랐다. 하지만, 그런 마음이 단숨에 사라지는 순간이 있었다.


그날, 선생님이 주하진을 불렀다.

“야, 주하진. 멍 때리지 말고 앞에 집중해.”


‘대체 수업 시간에 어딜 보고 있었던 거지?’

나는 고개를 돌려 주하진을 봤다. 주하진은 창밖을 보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날, 내내 주하진의 시선을 확인했다. 그리고 알게 됐다. 주하진이 창밖을 보기 전, 꼭 한 번씩 시선을 두고 가는 곳이 있다는 걸. 나는 주하진이 바라보던 방향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거기엔- 홍혜진이 있었다.


홍혜진. 우리 반뿐만 아니라, 우리 학교에서 가장 예쁘다는 애. 조막만 한 얼굴에 크고 또렷한 눈, 키도 크고 성격도 좋은 애. 전교 1등. 그야말로 엄친딸이다. 고2, 고3 남자선배들 사이에서도 유명했다. 그 애가 바로 주하진이 힐끔힐끔 쳐다보던 주소였다. 그 눈빛엔 가벼운 호기심이 아니라, 가능성을 따지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게 기분이 더러웠다.


에이. 설마. 아니겠지.

처음엔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애써 침착하게 주하진을 다시 봤다. 주하진은 아직도 홍혜진을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손끝이 차가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단순한 우연일 수도 있다. 그리고, 홍혜진이 샤프심을 꺼내려고 몸을 살짝 돌린 순간, 주하진이 갑자기 정신이 든 것처럼 고개를 휙 돌렸다. 책상으로 시선을 피하는 동작이 어딘가 어색했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주시했다. 우연이 아니었다. 확실했다.


왜 불안한 예감은 틀리지 않는 걸까. 나는 손바닥에 손톱자국이 날 만큼 주먹을 꽉 쥐었다. 손 안에든 볼펜이 심하게 휘면서 타닥- 플라스틱 소리를 내었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한비가 이런 근본도 없는 놈한테 상처를 받아야 한다고? 그런데도, 한비는 여전히 주하진을 믿고 있다고? 나는 가슴이 먹먹했다.


그리고,

이 거지 같은 놈이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너무도 뻔히 보였다.


“이 새끼, 지금 계산하고 있네”






<계속, 매주 2편씩 올립니다>

(Image. @David Y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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