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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브브 Nov 06. 2024

15. <다운 독(Down Dog)>

- 사직서는 이미 시로 썼어요

다운 독 = 요가 기본 자세 중 하나 



 밤하늘의 별빛만 의지하고 어두운 사막길을 걷던 옛 실크로드의 상인들에게 저 별은 선망의 대상이었겠고 꿈이었겠지? 땅에 붙은 온갖 빛들에 가려져서 숨 막히지 않으면 다행인 요즘, 별은 그저 '따위'의 것으로 보인다. 그 대신 선망하는 것, 별빛보다 더 찬란해 보이는 것들은 네모난 것에 붙어서 시선을 빼앗을 뿐이다. 


 가끔 찬란해 보이는 빛들을 향해 드는 의문이 있다. 내가 제대로 바라보고 있는지, 제대로 소화하고 있는지, 제대로 가고 있는지 말이다. 의문이 자문으로 바뀌면서 그 순간만큼은 시간이 멈춘다. ‘지금 내가 뭐 하는 걸까?’ 집에 돌아와 거울을 보면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바뀌는 모습은 온데간데없는 나만 서 있을 뿐이다. 아니, 내가 원하던 게 대체 뭐지?




 무슨 기분이 들었나, 그날은 내가 약간 다른 사람의 영혼에 빙의가 되었던 것 같다. 집에만 가만히 있는 게 좀이 쑤셨다. 무심결에 원데이 클래스를 찾아 들으러 갔는데 그게 요가였다. ‘요가도 헬스 PT 수업 같은 운동이지 않을까?’, ‘자세를  보고 이렇게 저렇게 판단하는 자리이지 않을까?’ 보통의 나라면 그런 걱정부터 안고 수업을 들었을 텐데, 그날은 ‘그냥 가서 안 되면 말지.’ 싶었다. 그리고 그 수업 이후 난 잠깐 쉼이 있더라도 다시 꾸준히 요가하는 사람이 되었다. 

다운 독(Down Dog) 자세를 하고 있는 임보견 인형, 2024

 요가가 어떤 효과가 있고 아주 좋다고 칭찬하는 게 아니다. 다만, 요가가 미래나 어떤 불확실한 가능성의 이세계(異世界)로 떠난 뇌를 다시금 내 몸으로 돌아오게 하는 도움을 줬었다. 원데이 클래스의 요가 강사는 자세를 취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힘들거나, 자세가 불편하거나, 옷이나 머리카락이 자꾸 신경 쓰이면 그냥 그런대로 두세요. 불편하면 ‘아 불편한 느낌이 드는구나!’ 하고 바라보시면 돼요. 보다 보면 카운트 끝나고 바로 다음 자세로 넘어가니까 금방 잊혀요.” 


 오히려 이렇게 하면 틀린 거 아닌가, 이러면 어쩌나 저쩌나 하는 걱정을 하면 8초라는 카운트 시간을 채울 수 없었다. 어려운 것이었지만 한편 생각보다 쉬운 이치였다. 저 멀리 빛 나는 별이 나를 나아가게 하는 이유일 수 있지만, 지금의 내가 잘 있고 내가 ‘그냥 하고’ 있어야 다다를 수 있는 것이었다. 정말 카운트를 못 채울 만큼 아프거나 다칠 것 같다면 35년을 산 본능이 그 자세는 알아서 멈추라고 신호를 줄 테지. 그것도 자연스러운 현재의 내 결정이니 멈춰도 뭐라고 하지 않았다. 적어도 요가 수업에서는. 


 요가 수업이 끝나고 다시 바빠진 일상 때문에 클래스를 등록하지 않았지만, 그때 경험을 가지고 몇 개월 뒤 퇴사하자마자 나는 요가 정규 수업을 다니기 시작했다. 조금 더 일찍 배워볼 걸 그랬다.




"다운 독(Down Dog, Adho Mukha Svanasana, 견상)은 개가 앞다리를 늘리며 기지개 펴는 요가자세를 말합니다. 흔히 '엎드려 뻗쳐' 자세에서 등을 펴고 엉덩이를 올리는 자세입니다. 저는 여전히 잘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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