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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은 Nov 01. 2021

무이

창작시


얼마전 새로

하녀는

묘하다


세상의 모든 말이 담긴 검은 눈동자

 말들을 그러 모아 꼬옥 다문 입술

석가모니를 닮은,

오래된 조각같은 얼굴

구도하는 승려처럼 집안일을 하는

정직한 나의 하인


늦은 저녁

피아노에 앉으면

그녀는

작은새처럼

조용히 날아와

내 주위의 을 밝힌다

그녀의 손길이 닿으면

내 거실은 어느새

무대가 되어

젊은 작곡가의

하릴없던 방황

멈추게 한다

손끝으로 춤추게 한다


이상한 일이다

그녀가 곁에 있으면

나도 모르게

드뷔시를 연주하게 돼

'Claire de Lune'


은은한 달빛을 닮은 그대

내게는 아직

태양처럼 눈부신 애인이 있다

,

그러나  나는

멈출 수 없다

연주를

마음을


그대는 나의 뮤즈

음악이 육신을 입어

내 앞에

비루하고 숭고한 침묵같은 여인이여


나는 오늘도

망설이며

음표 대신

그대를

써 내린다

내가 그리는 음악은 온통 너일뿐

그대는 알까

나는 이미

그대의 하인

그대는 이미

내 영혼의 주인


하노이의 달빛처럼 영롱하고

파파야 향기처럼 생그러운

나의 여인

나의 무이





<드뷔시 'Claire de lune(달빛)' , 조성진 연주>

https://youtu.be/97_VJve7UVc





이 시는 영화 <그린파파야향기(1993)> 에서 가장 로맨틱했던 장면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주인공 무이는 부잣집 도련님 쿠엔의 하녀입니다. 쿠엔에게는 이미 부잣집 애인이 있습니다. 말이 없는 쿠엔은 작곡가답게 자신의 감정을 음악으로 표현합니다.


언젠가부터  쿠엔은 무이가 나타날 때마다 드뷔시의 몽환적이고 아름다운 피아노 곡  '달빛' 연주합니다. 이상하게도 무이의 고요한 얼굴이 자꾸만 떠오르고, 음표를 그려야 할 오선지에는 작곡의 흔적이 아닌 짝사랑의 고뇌만이 가득합니다.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 초록색의 '파파야'처럼 순수하고도 낭만적이었기에  영화를 본 지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의 느낌은 여전히 유효한가 봅니다.

어린날의 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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