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밖으로 나온 날
두 발로 딛고 선 해변의
모래가
살갗을 뚫을 듯
따갑고 깔깔하다
물의 옷을 벗고
헐벗은 몸,
대기에 맡기자
바람의 손,
저마다 내 몸을 매만지고
바다에 이는 폭풍처럼
거세게 몰려드는 수치심
그래서 인간은 옷을 입는다지
깊은 바닷속 압력에서 벗어나자
지독한 중력, 나를 붙드네
날 선 태양의 눈빛에
온몸은
해파리가 쏘아 댄 듯
따끔따끔
벌겋게 부풀어 올라
어쩔 줄을 모르네
머리칼 해초 향이
이다지도 비릿했든가
사랑은 왜,
스스로를
하찮게 만드는 걸까
바다에 살 땐,
마리아나 해구처럼
깊이를 알 수 없는 곳을 들여다보면
뜻 모를 공포가 엄습했지
다리가 찢기는 고통보다
그대 오지 않을까 더 두려워
나를 잃어도
그대만 가질 수 있다면
지독한 욕심
해구처럼
끝도 없이 깊어져
해변에 어둠이 짙어지고
바다 저편
붉은 노을 번져오면
그대가 올 때까지
나는 눈물을 흘린다
피를 흘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