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정은 Jun 11. 2022

인어공주

물 밖으로 나온 날

두 발로 딛고 선 해변의

모래가

살갗을 뚫을 듯

따갑고 깔깔하다


물의 옷을 벗고

헐벗은 몸,

대기에 맡기자

바람의 손,

저마다 내 몸을 매만지고

바다에 이는 폭풍처럼

거세게 몰려드는 수치심

그래서 인간은 옷을 입는다지


깊은 바닷속 압력에서 벗어나자

지독한 중력, 나를 붙드네

날 선 태양의 눈빛에

온몸은

해파리가 쏘아 댄 듯

따끔따끔

벌겋게 부풀어 올라

어쩔 줄을 모르네


머리칼 해초 향이

이다지도 비릿했든가

사랑은 왜,

스스로를

하찮게 만드는 걸까

바다에 살 땐,

마리아나 해구처럼

깊이를 알 수 없는 곳을 들여다보면

뜻 모를 공포가 엄습했지

다리가 찢기는 고통보다

그대 오지 않을까 더 두려워

나를 잃어도

그대만 가질 수 있다면

지독한 욕심

해구처럼

끝도 없이 깊어져


해변에 어둠이 짙어지고

바다 저편

붉은 노을 번져오면

그대가 올 때까지

나는 눈물을 흘린다

피를 흘린다


이전 02화 무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