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쓰는
배추흰나비 애벌레를 만났네
변태를 하는 대신
노래하는 생을 택했노라고
아름다운 날개 대신
자유로운 영혼을 택했노라고
애벌레에게도
애벌레의 생각이,
애벌레의 사랑이,
애벌레의 인생에도 슬픔과 비극은 있는 거라고
육체의 미완이
때로는 후회도 되지만
한평생 배춧잎만 갉아 먹기에는
세상은 눈물겹도록 아름답다고
열세 장의 배춧잎을 모두 먹으면
날개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러면 내가 잠시 빌려 사는
배추는 영영
죽게 된다고
배추를 먹고
똥만 싸는 것은
부끄럽다며
나에게 가끔 시를 들려주는
배추흰나비 애벌레를 만났네
4월이 되면
배춧잎 사이에서
시 쓰는 애벌레를 만나려고
한 마리 한 마리 물어보지만
텃밭에서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나를 보고
사람들은 미쳤다고 하네
그래서 나는
시를 쓰는 애벌레에 대한 시를 쓰네
나의 시 안에서
그 애벌레
영원을 얻네
오래전 발행해두었다가 취소했던 시의 먼지를 털어 재발행해봅니다.
사진출처 :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solaris2001&logNo=2200219425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