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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화 Jan 14. 2024

염원을 보다.

사진에도 감정이 담겨있음을

 오늘의 대한민국은 정말 살기 좋은 나라이다. 마흔이 넘은 국민은 위암을 대비하라는 지속적인 건강 검진을 알리는 연락을 준다. 


서른 후반까지 내시경의 두려움이 있었다. 

그간 누구보다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막 살아왔기에 혹시나 모를 병의 실체를 알게 되지는 않을까? 

아무래도 인지하지 못한 상태가 더 낫지는 않을까 하여 내시경 따위 생각해 본 적 없었지만 가까운 형님께서 

3년 전 즈음 노발대발 하시며 당장 내시경을 위아래 받으라 하셔서 경험해 본 적이 있다.



위내시경만 받을까 하다가 이왕 검사받는 거 대장내시경과 더불어 초음파 검사도 하기로 결심했다.


검사 당일 차가운 배드 위에 누워 숫자를 세어가며 이 악물고 강압적 수면욕과 싸웠지만 역시나 완패하였고

내시경에 대하여 간단하게 의사분 소견을 듣고 난 뒤, 차주에 정확하게 안내를 받으며 초음파 검사까지 진행하기로 하였다. 


1. 비형간염 항체가 없음

2. 용종 4개 중 1개는 선종으로 확인됨

3. 고지혈증 의심

4. 복부 초음파 진행 / 왼쪽 신장 쪽 3cm x 3cm 무언가 발견됨 


소견서와 초음파 촬영 CD를 가지고 큰 병원을 방문해 보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을 주셨다.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막 살아왔기에 항상 대비를 하고 있어서 그런가? 무언가 발견되었다 하여 딱히 절망스럽지는 않았다.


"하긴 이렇게 대충 살았는데 안 아픈 곳이 있다는 게 사실 말이 안 되긴 했어" 라며 집에 오는 길 혼잣말을 구시렁거렸다.


생전 병원을 가본 이력이 없기에 가까운 은평성모병원을 추천받아 집에 귀가 후 외래 진료예약을 바로 잡았다.



초진이라 30분 일찍 오라는 간호사분의 말씀대로 나는 무려 3시간이나 일찍 병원을 방문하였고, 병원 구석구석을 탐방하기 시작했다.


접수처는 사람으로 가득했지만 차례대로 순서를 기다리는 환자분들은 무척 질서 있었으며 모든 층이 바쁘고 시끌했지만 규칙적이게 대기 환자를 살피는 간호사분들 진찰을 바라는 환자 상태를 명확하고 구체적이게 내용을 전달하는 의사분까지 어느 것 하나 체계적이지 않은 곳이 없었다.


3시간 동안 모든 공간을 다니며 눈에 띈 공간이 있었는데, 병원 내 성당이었다. 어렸을 적 내 할머님을 따라 성당을 다니며, 세례까지 받았던 나였지만 다소 그들과는 다른 나는 또래들의 창피와 놀림의 대상이었던 게 항상 불만이어서, 스스로 개종을 선택하여 그 뒤로 쭉 교회를 다녔기는 하지만 뭐 장소가 꼭 중요한가? 마음이 중요하지 그리하여 오랜만에 성당을 들어가 보기로 했다.



역시나 예전 내가 어렸을 적 다니던 성당처럼 조용하고 무척이나 고요했으며 각자의 방식대로 방문객과 환자 의사와 간호사 분들이 앉아 기도를 하고 계셨다. 나도 그곳에 조용히 앉아 머릿속에 맴도는 말을 마음속으로 이야기했다.


누구보다 나를 가장 잘 아시는 내 아버지. 저는 내일의 삶에 큰 욕심 없으며, 부르시면 그날이 언제든 불평하지 않고 당신 곁으로 갈터이니, 혹시라도 제게 안 좋은 내일이 기다리고 있다면 부디 제 육체의 아픔이 크지 않기를 마지막으로 부탁드려 봅니다. 


또한 세상에 좋은 일 한번 한 적이 없사오니, 이 땅에 보내신 당신의 아들의 숨이 멎을 때, 당신이 빚으신 아들의 육체로 많은 사람들이 또 다른 새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장기기증의 온전한 육체를 주시옵소서


담당 의사 선생님은 내게 CT를 한번 찍어보고, 그래도 명확하지 않으면 MRI까지 찍어보자 하셨고 모레 있을 CT 촬영을 위해 채혈까지 마친 나는 음악을 들으며 조용히 병원을 걷기 시작하던 중 의자에 앉아계시는 그분을 멀리서 보게 되었다.



한걸음 가까이 다가가는데 손을 뻗어 내게 내밀고 계시는 그분의 손이 어찌나 반질반질하던지, 자연스럽게 카메라를 들어 셔터를 누르려던 순간 누군지 모를 분께서 오셔서는 그분의 손을 꼭 잡고는 빠르게 지나가셨다.


간절함이었다. 환자분이셨을까? 가족분이셨을까?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누군가의 쾌유를 바라는 간절함을 느꼈다. 수많은 사람들이 꼭 잡고 가셨을 그분의 바랜 손은 많은 이들의 건강을 바라는 기도와 염원이었다. 오늘 나는 보이지 않는 염원의 감정을 직접 눈으로 보았다.


염원 : 마음에 간절히 생각하고 기원함. 또는 그런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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