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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luie Jul 25. 2020

예식장 로비의 책 한권, 커피 한잔

사실은 로비가 너무 허전해서 어쩔 수 없었던 것도 있다

국립중앙도서관 결혼식 탐방을 마치고 우리의 계획은 다소 수정되었다. 생각보다 예식홀은 괜찮은 편이었지만, 1. 신부 대기실이 다소 별로였고  2. 하객들의 대기 장소가 생각보다 넓었던 것이었다.




넓은 대기 장소. 사실 문제랄 것은 없었다. 너무 좁아서 복작거리는 것보다는 낫기도 하다. (우리의 결혼식은 5월이었지만 겨울 예식이면 대기 장소는 넓어야 한다) 그래서 로비에서 하객들이 기다리는 동안 다소의 다과를 맛볼 수 있도록 하는 게 어떨까 싶었다.


그래서 여러 업체를 찾아 다니고 후기를 보면서 몇몇 업체에 견적을 문의했다. 보통은 잔당 단가를 책정해 주고, 서비스가 제공되는 경우도 있으며 사이드 접시를 따로 마련해 주는 경우도 있다.


커피 케이터링은 딜리버리 서비스와 바리스타 서비스, 그리고 머신 대여로 나뉘어 있었다. 요즘은 옵션이 다양해졌을 수도 있겠지만, 거의 비슷한 형태로 운영되는 것 같다. 결혼식에 조그맣게 할 케이터링이라면 이 정도로도 충분할 듯.


딜리버리 서비스는 말 그대로 배달 서비스, 커피를 내려 마실 수 있는 기계에 커피가 미리 담겨져 배달되어 온다. 컵과 슬리브, 스틱, 리드 등이 함께 들어오게 되며 하객들은 각자 커피를 원하는대로 따라 마시게 된다.


반면, 바리스타 서비스는 바리스타가 현장에서 직접 커피를 내려주는 형태다. 아무래도 후자 쪽이 좀더 맞춤형의 서비스지만 출장비가 따로 요구되는 경우도 있다. 머신 대여는 에스프레소 머신을 대여해 주는 형태인데, 결혼식보다는 좀더 전문적인 행사에 어울리는 것 같았다. (게다가 훨씬 비쌌다)


우리가 선택한 것은 바리스타 서비스로, 두 명의 바리스타가 직접 오셔서 커피를 만들어 주는 케이터링이었다. 잔당 단가도 비교적 저렴했고, 출장비가 따로 부과되지 않는 데다가 200잔 견적을 냈을 때 다른 업체에 비해서 경쟁력 있는 가격이었다. 예약금은 따로 없고, 현장에서 잔 수로 현금 결제를 하게 된다.


커피가 아주 맛있었다고, 하객들의 긍정적 피드백이 많았던 부분.




남은 것은 우리가 도서관 결혼식을 계획하면서 함께 꾸려 보고자 했던 작은 이벤트 준비였다. 우리는 스튜디오 촬영을 하지 않았는데 - 지금까지도 정말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 그렇다 보니 포토 테이블에 놓을 사진이 없었고, 자연스레 포토 테이블은 취소되었다.


그래서 대신 스케치북과 엽서를 이용한 방명록과 메모 테이블을 두어 하객들이 직접 쓴 축하 메시지를 받되, 메시지를 쓰러 온 사람들에게 작은 선물을 주고 싶었다.


어떤 선물이 좋을까 고민하다가, 도서관 결혼식이라는 점에서 생각한 것은 책 답례품이었다. 우리가 둘 다 좋아하는, 한 쪽만 좋아하는, 혹은 둘 다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내용이 좋은(?) 책들을 골라서 하객들께 선물할 겸, 메시지 테이블 옆에 두자는 것이었다.


한 권,  한 권, 열심히도 썼다

다행히 Y의 직업상 책이라면 남부럽지 않게 가지고 있어서 그 중에서 대강만 골라도 50권은 충분히 됐다. 마음 같아선 100권 정도 했으면 좋았겠지만, 그 책들을 다 보내고 옮기고 하는 데 너무 많은 힘이 들 것 같아서, 일찍 오는 하객들이 골라 가져가는 선택권을 얻을 수 있도록 했다.


원래 계획은 메시지 테이블에도 두고, 하객들이 앉을 의자 위에도 랜덤으로 놓아 두어서 깜짝 선물을 하려는 것이었는데 그건 당일에 시간적 여유가 너무 없어서 하지 못했다.


거의 대부분이 소설들인데, 인문사회서적이나 예술과학서적의 경우 상대적으로 대중성(?)이 떨어질 것 같아서 제외했다. 화집같은 것도 한두권은 섞고 싶었는데. 아무튼, 하루 날을 잡아 한 권 한 권마다 메시지를 썼다.


주로 결혼식 참석에 대한 감사의 인사였지만, 가끔 엄청 추천하고 싶은 책이 있는 경우에는 [정말 잘 고르셨네요, 즐거운 독서 되세요] [이 책은 조금 읽기가 힘들지만 끝부분이 재미있으니 꼭 끝까지 보세요] 등을 정성스럽게 썼다. 누가 이 책들을 어떻게 골라서 가져가게 될까 생각하면 재미났다.


그리고 얼마 전, 갑자기 결혼식에 참석해 줬던 동생에게서 카톡을 받은 적이 있다.


「 언니, 나 집 정리하다가 언니 결혼식 때 가져왔던 책을 찾았어요. 근데 여기 뭐라고 썼는지 기억나요? OO작가의 OOO라는 책인데 」

「 글쎄, 하도 오래 전이라 기억이 안 나는데? 」

'세상에, 50권의 책 중에 가장 야한 걸 고르셨네요, 축하드립니다' 라고 적혀 있어요 ㅋㅋ 」


이런 식으로 나의 옛 기억이 (강제) 소환되는 경우도 있다. 소소한 추억이지만 지인 혹은 친구와 나눠 갖지 않았더라면 잊혀졌을 순간들인데 말이다.




본 글 포함하여, 이렇게 짧은 시리즈로 기획된 글입니다. (네이버 블로그에 업로드했던 글을 다소 수정/추가함)


* 우리, 도서관에서 결혼했어요

* 도서관 결혼식 사전 탐방과 시식

* 국립중앙도서관의 신부 대기실, 이것이 실체다

* 로비가 허전해요, 커피 케이터링 업체 예약과 하객 선물 꾸리기

* 주례 없는 결혼식, 이벤트는 꼭 필요한가요?

* 폐백, 안 하려다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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