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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 Aug 14. 2020

폐백, 안 하려다 했는데!

너무 힘들어서 쓰러질 뻔했다

※ 2015년, 국립중앙도서관의 예식장 대관 초기의 내용입니다. 세부적인 내용들은 최대한 업데이트하였지만 조금씩 다를 수 있습니다 :)


'폐백'은 말하자면 결혼식을 올린 신부가 신랑 집의 부모님, 친척들에게 인사를 올리는 의식이다. 전통적으로 말하자면 '양가 부모님 및 친척'이 아니고 '시댁'에 국한된다. 그래서 '폐백' 자체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도 꽤 많고, 우리 또한 약간 고민했다. 


할 것인가, 하지 말 것인가, 혹은 양가를 모두 모시고 폐백을 할 것인가. 결국 우리는 양가 부모님과 주요 친척만을 모시고 폐백을 하기로 결정하고 준비를 진행했다. 안 하기에는 폐백 때 받을 돈이 좀 아깝기도 하고




폐백은 보통 한복을 입고 그 위에 폐백용 활옷을 걸친 후 진행한다. 도서관에서 폐백용 활옷은 대여해 준다. 경험자로서는 굳이 한복이 필요 없고, 활옷만 걸쳐도 무방하다고 본다. 어차피 한복을 입어도 다리밖에 안 보인다. 한복을 이왕 맞췄으면 상관없는데, 우리처럼 한복을 안 했다면 도서관에서 빌려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


왕과 왕비의 의식복이었다는데, 우리는 왕도 왕비도 아니건만 왜..


우리 결혼식 과정은 대부분 내 손에 맡겨졌고 내 결정이 중요했는데, 가장 많은 다툼(?)이 있었던 것이 바로 이 '한복' 부분이었다. 양가 어머님들이 모두 '한복은 하나 해야 한다. 나중에 집안 행사가 있을 때도 입을 수 있고 애기 돌잔치에도 입을 수 있다'라고 주장하셨는데, 난 집안 행사에서 한복 입고 다닐 생각 없었고 심지어 딩크로 합의했기에 돌잔치 할 애기가 없을 예정이었다. 게다가 난 스튜디오 촬영도 안 했고 피로연도 정장을 입고 참석할 예정이어서 더욱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활옷 안에 반드시 한복을 입어야 하는 줄 알았던 우리는 한복을 하루 대여하기로 했다. 실제로 대여를 알아보면서 느낀 것은, 대여료가 만만치 않게 비싸다는 것. 보통 본견(=실크, 견)이 아닌 화학섬유(=물실크, 화섬 등의 용어로도 쓴다)의 경우 저렴하게 잘 맞추면 인당 30-35만원에도 맞출 수 있다고 하는데, 대여료라고 해서 크게 싸지 않다. 오히려 25만원 정도 하는 게 일반적인 가격대. (2015년 기준)


게다가 더 큰 문제는, Y나 나나 대한민국 평균 남녀보다 키가 큰 편이라 더욱 대여 한복을 찾기가 어려웠다. 보통 나오는 한복은 155-64cm 정도 되는 신부, 173-6정도 되는 신랑의 몸에 맞춰져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우리는 둘다 그에 맞지 않아서, 이런 경우 대여점에 가면 '맞춤 대여'를 권한다. 내 몸에 맞춰서 한복을 지은 다음 대여료를 내고 대여하는 것인데, 이런 경우 대여료가 좀더 올라가 거의 맞춤 가격이 나오는데, 게다가 다시 고스란히 돌려줘야 한다.


그러다 결국은 '자기가 입었던 한복을 매우 저렴하게 대여하는' 일반인을 발견하여 거기서 대여를 했고, 픽업해서 당일에 잘 입었다. 하지만 안 빌렸어도 되었을걸, 후회하긴 한다.




폐백 음식도 은근히 신경 쓰이는 부분이다. 폐백 음식은 떡집에서 보통들 많이 하지만, 폐백과 이바지 음식을 따로 해 주는 인터넷 업체들도 많이 있는데 가격대는 천차만별이다. 원래 잡은 예산은 2-30만원이었는데, 크게 차이가 나지는 않지만 잘 하려고 하면 또 한없이 비싸지는 게 결혼 관련 상품들.


폐백 음식 결정하는 게 엄청 간단할 거라 생각했는데, 이리저리 알아보니 정말 천차만별이다. 사실 난 폐백에는 닭이 꼭 있어야 한다고 들었는데, 알아보니 꼭 그런 것도 아니고 생략하는 경우도 많다고 해서 더 고민했다. 제사 음식과 비슷해서 지방마다 다른 부분도 있다. 차라리 필수과목처럼 정해져 있으면 고르기가 쉬울 텐데.


당시 우리가 선택했던 업체는 현재 닫은 듯 하다. 친절하고 퀄리티도 좋았는데!


하지만 기본적으로 예산의 범위가 정해져 있고, 각 음식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생각해 보면 그 결정이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우선 가문의 융성을 기원한다는 밤대추고임은 있는 게 좋다. 그리고 자식을 잘 낳으라고 시어머니가 던져 주시는 의식이 있는데, 이 때 던질 대추와 밤이 없으면 좀 곤란하다. (문제는 우리가 딩크다. 던져 주시니 받긴 받는데..) 물론 폐백의 기원을 찾아 보니 그 대추/밤 던져주는 것도 정통 방식은 아니라고 한다.


그리고 폐백에는 이 따르고 - 음식 접대인만큼 마실 것이 빠질 수 없다 - 그에 따라 시아버지가 술안주로 쓰실 구절판이 포함된다. 술은 법주나 청주, 전통주 등을 올린다고 한다. 가장 일반적인 것은 청주라고.


그리고 육포가 있다. 육포의 경우 원래는 귀한 음식이라 양반집에서만 올렸고, 경상도의 경우 대신 닭이 올라가는 경우가 많았다는데 서울경기 지방은 또 육포라는 데도 있고 했다. 고민하다가 그냥 우리가 육포를 더 좋아하니까 육포를 골랐다.


그리고 그에 한과나 떡, 약과 및 정과 등의 군것질거리가 따른다. 물론 여기에 쌍닭이나 곶감, 떡 등 이것저것 더 포함해서 고급스럽게 만드는 경우도 많다고 하고, 폐백에 엄청 신경 쓴 신부들도 많다. 그도 그럴것이, 예전에는 폐백이 신부 어머니의 솜씨와 정성을 보는 거라고 했다고 하니. 물론 우리 엄마는 폐백 음식에 일절 관여를 안 하셨음


밖에 입고 있는 활옷이 도서관에서 빌려주는 것.


국립중앙도서관의 폐백실은 신부대기실과 커튼을 사이에 두고 있다. 그리 크지 않지만 폐백을 드리기에 모자람은 없는 곳. 음식을 주문한 업체에서 와서 세팅을 해 준다. 웨딩 드레스를 갈아 입고 정신 없이 폐백실로 들어갔더니 이미 수많은 친척들과 상차림이 준비되어 있었다.


웨딩 드레스를 잡아주시는 이모님('헬퍼 이모님'이라고 부른다)이 폐백 때도 도와주신다. 이 때는 어쩐지 '수모님'이라고 부르게 된다. 근데 보통은 그냥 같은 사람이 한다. 이 분이 옆에서 '자, 절 받으세요' 라며 분위기를 잡아 주시고, 우리는 그냥 서툴게 절을 하게 된다.


그러나 화기애애해서 그런지 폐백은 무척 재미있었고, 실수가 많아서 다들 웃기도 많이 웃었다. 그런데 무슨 친척이 이렇게 끝도 없이 있어서인지, 나중에는 온몸이 쑤시고 힘들었던 기억.


그래서 폐백이 끝나고 나서는 식당으로 가서 하객들에게 인사를 해야 했지만, 그 자리에서 술을 한잔 부어 마시고 약과도 집어 먹으며 당을 충전하고 나서야 겨우 나갈 수 있었다.


안 하려다가 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꽤 재미있고 수입도 쏠쏠했던(!) 의식이었다.




본 글 포함하여, 이렇게 짧은 시리즈로 기획된 글입니다. (네이버 블로그에 업로드했던 글을 다소 수정/추가함)


* 우리, 도서관에서 결혼했어요

* 도서관 결혼식 사전 탐방과 시식

* 국립중앙도서관의 신부 대기실, 이것이 실체다

* 로비가 허전해요, 커피 케이터링 업체 예약과 하객 선물 꾸리기

* 주례 없는 결혼식, 이벤트는 꼭 필요한가요?

* 폐백, 안 하려다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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