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알지 못하는 것을 가르칠 수가 없다는 걸 석 달 열흘 폭염이 끝나고 억수같이 비가 쏟아지는 날 창 밖을 보다가 깨닫는다. 왜 하필 지금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것도 이제 때가 되어서 알게 된 것이라 여긴다.나는 행복한 시절을 길게 가져보지 않아서 어떤 감정에는 둔감하다는 걸 늦게 깨닫게 됐다. 찾아온 불행에 최대한 순응하기 위해 생활 반경을 좁히고 소비를 줄이고 마음을 접고 관계를 끊었다. 실업의 공격, 질병의 위협 그리고 절망의 침입을 막아내기 위해 나의 모든 힘을 썼다. 이십 년이라는 시간을 그렇게 살았다. 지금 나의 겉모습은 아주 건강하다. 그런데 마음이 부드럽지 못하다. 촘촘하지 않고 듬성듬성한 베옷 같다. 어지간한 건 다 걸러버리고 살았던 습관이 몸에 베버린 것이다. 나쁘다고 말할 수 없는 이 실용적인 습관으로 대했던 사람들 중에 내가 이제 미안함으로 가슴에 품는 대상이 있다. 정신없이 사느라 최소한의 필요만 채워주면서 더 이상의 요구는 무시했다. 그리고 그들의 불편과 부족은 정말 우리에겐 대수롭지 않게 여겨져야 살아갈 수 있었기에 못 본 체 모른척했다. 나의 두 딸이다. 딸들은 어떻게 살아왔을까. 엄마인 내가 자신들의 행복하지 않음을 읽어주지 않았을 때 어땠을까. 자신을 꾸며줄 삶의 모든 아름다운 장식을 달지 못하고 맨 몸으로 삶을 살아냈어야 할 나의 아이들. 늦게나마 딸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엄마의 마음이 나에게 찾아왔다. 참 다행이다. 내가 알지 못했다. 내가 그러고 있었다는 것을. 나는 행복해지려 한다. 알아야 더 행복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