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자기 인식의 깊이를 반영한다.
내가 끌어당기는 사람은 자기 인식의 깊이를 반영한다. 모든 로맨틱한 관계는 나의 무의식에 의해 작곡되어 세상으로 보내진 메시지와 같으며, 내가 어떻게 사랑하는지에 그 진실이 있다. - 칼 융-
우리는 종종 자신의 결핍이나 구원 이런 것들을 다른 사람에게 투사한다. 그리고 이런 투사를 사랑이라고 착각한다. 그래서 내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은 내가 ‘의식적‘으로 선택한 사람이 아니라, 내 무의식이 불러낸 사람일 때가 있다. 사랑은 이상하게도 자신이 아직 치유하지 못한 부분과 꼭 닮은 상황 혹은 그 결핍을 그대로 비추는 사람을 끌어당긴다. 그 만남은 거울이 되어 내 안을 깊게 들여다보게 하지만, 그 과정은 대게 고통스럽다.
이 사랑은 나를 비추는 거울이었다.
내 믿음과 상처, 감정의 역사,
그동안 부인해 왔던 나의 부분들,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미처 몰랐던 내 모습까지
그 모든 걸 비춰주었다.
이 사랑은,
내 안의 결핍을 마주하게 한 여정이었다.
나는 불안했다.
그래서 안정감을 원했고,
그 확신이 보이지 않으면 마음이 흔들렸다.
그래서 더 많이 표현했고,
그만큼의 대답을 원했다.
그게 내가 사랑을 안전하다고 느끼는 방식이었다.
처음엔 그 사람에게서 이유를 찾으려 했다.
하지만 그 질문의 방향을 '나'에게로 돌리는 순간
여정이 시작되었다.
"나는 왜 불안할까?"
"왜 안정감을 찾으려 했을까?"
그 답을 찾는 과정에서
나는 내 안의 불안과 마주했다.
그리고 그 불안을 피하려
안정감이란 이름으로 포장해 왔음을 알게됐다.
이젠 피하지 않고,
나 스스로 그 불안을 감싸 안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내가 바랬던 안정감을 내 안에 나를 통해 찾는 방법도.
나 자신을 마주 한다는 건 때론 고통스럽다.
하지만 나를 마주하지 않으면
똑같은 패턴을 또 반복하게 된다.
나는,
나 스스로 나의 불안을 마주하고,
안정감과 확신을 품으며 성장하고 있다.
그리고 내 안의 서사가 바뀌면
내가 끌어당기는 사랑의 모습도 달라질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언젠가,
나와 같은 속도로 리듬을 맞춰 걷는 사람을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이번엔,
서로의 계절이 같고
같은 장면에
비슷한 자막이 떠오르는 사랑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