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에 뒤섞여 싸락눈이 내리는 저녁나절
한 끼 열량의 온기가 절실했던 우리는
동동걸음을 걸어 카페 작품 80을 찾아갔다
꽁꽁 언 손으로 피에로의 얼굴이 그려진 문을 열고
허겁지겁 가파른 계단을 올라
암막을 친 듯 어둡고 좁은 카페 안으로
젖어 후줄근해진 몸을 욱여넣었다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가 흐르고
소박한 벽난로가 온기를 전하고 있을 뿐
깊은 어둠 말고는 눈에 띄는 것이 없는
가난한 카페 작품 80에는
가난한 시대를 살아가는 가난한 사람들이
옹기종기 웅크리고 앉아
얼어붙어 추운 마음을 녹이고 있었다
저녁 대신 맥주로 허기진 뱃속을 채우면서
우리는 아무 말이 없었고
겨울 나그네도 거리의 악사를 마지막으로
깊은 침묵을 향해 잦아들 무렵
해 으스름에 거센 바람을 이기고
쌓여가고 있을 눈의 무게로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는 침묵은
우리를 미치도록 부끄럽게 만들었다
살아가는 시대가 부끄러웠고
부끄러운 시대를 살고 있다는 사실이 부끄러웠고
부끄러운 현실을 바꿀 힘이 없다는 사실이
무엇보다도 부끄러웠다
카페 안에서 음악에 빠져든 채 조용한
딜레땅트일지도 모를 사람들도
운동가를 꿈꾸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한 없이 춥고 가난한 시대를
내심 부끄러워하고 있었을 것이다
아무도 원하지 않았던 시대를
기꺼이 아파하거나 애써 외면하거나
부끄럽기는 마찬가지로
부끄러워서, 주눅 든 마음을 서로 포개고
말없이 함께 부족한 온기를 나누는 것,
그것이 꽁꽁 얼어붙은 1981년의 끝자락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사랑의 전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