⑪ AI 거울 속의 청소년 : 어떻게 정체성을 탐색할 것인가
청소년기의 핵심 발달 과업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일이다. 심리학자 에릭 에릭슨은 이를 ‘자아정체성(Self-Identity)’의 확립이라 불렀다. 이 시기의 청소년은 타인의 시선이라는 거울에 자신을 비춰보며 스스로를 탐색한다.
과거의 거울이 친구나 가족, 교사였다면, 오늘날의 청소년이 마주한 거울은 전혀 다른 형태, 바로 AI 기반 소셜 미디어와 생성형 AI가 만들어낸 ‘AI 거울’이다.
이 AI 거울은 분명 청소년들에게 전례 없는 기회를 제공한다.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방대한 지식에 접근할 수 있고, AI 도구를 통해 자신의 상상력을 표현하며 새로운 자아를 발견할 수도 있다. AI는 창조와 탐색의 파트너로서 잠재력을 확장시켜준다.
그러나 문제는 이 거울이 ‘참여’를 극대화하도록 설계된 알고리즘에 의해 작동한다는 점이다. AI는 사용자의 클릭, 시청 시간, 반응을 실시간으로 분석해 "너는 이런 사람이야"라는 신호를 스스로 만들어 낸다. 그 결과, 한 번의 호기심 어린 클릭이 ‘이것이 너의 정체성’이라는 낙인으로 변하고, 비슷한 콘텐츠만 끊임없이 추천되는 ‘알고리즘적 정체성 피드백 루프(Algorithmic Identity Feedback Loop)’가 시작된다.
아직 가치관이 형성 중인 청소년은 이 편향된 정보의 거울 속에서 자신을 규정하기 쉽다. 스스로 선택했다고 믿지만, 실은 보이지 않는 알고리즘의 손에 의해 ‘선택당하고 있는’ 셈이다. 무한히 확장되어야 할 정체성 탐색의 과정이 결국 AI가 만들어 준 ‘맞춤형 틀’ 안에 갇히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 생성형 AI의 또 다른 그림자가 더해진다. 바로 ‘비판적 사고의 외주화(Outsourcing of Thinking)’다. 에세이를 쓰고 토론을 준비하던 전통적인 학습 과정은 서로 다른 관점을 비교하고 자신의 주장을 세우는 ‘지적 분투(Intellectual Struggle)’의 시간이었다. 하지만 이제 AI가 순식간에 "그럴듯한 답"을 만들어준다. 생각하는 고통을 건너뛰는 대신, 생각하는 근육이 자라날 기회 또한 사라진다. 아이들은 답을 ‘찾는 법’보다 ‘요청하는 법’을 먼저 배우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강력한 AI 거울을 깨뜨려야 할까? 그것은 불가능할뿐더러, 해답도 아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아이들에게 그 거울을 ‘읽는 법’을 가르치는 일이다.
AI가 보여주는 정보가 세상의 전부가 아니라 ‘선별된 일부’임을 깨닫게 하는 것, AI가 내놓은 매끄러운 답변 뒤에 숨어 있는 편향과 오류를 의심해 보는 법을 배우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AI 리터러시(AI Literacy)’ 교육이다. AI를 다루는 기술보다 더 중요한 것은 AI를 비판적으로 해석하는 능력이다.
AI는 훌륭한 도구지만, 정체성을 형성하는 주체가 되어서는 안 된다. 청소년이 AI의 거울 속 ‘환상’에 머무르지 않고 거울 밖의 세상을 바라볼 수 있도록 어른들이 먼저 보는 눈을 길러주어야 한다.
우리 아이들이 알고리즘이 아닌 ‘자신의 의식’으로 나를 찾아가는 여정을 계속할 수 있도록, 이제는 그 거울을 다시 가르칠 때다.
▶김영기 위고컴퍼니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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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E동아(https://edu.donga.com) 김재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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