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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autiPo Feb 24. 2018

[Part3] 나의 1호 팬, 인생의 동반자

[Part 3 : 행복하지만 불안한, 퇴사 이후의 삶]

2017.9.10(일) / 회사를 떠나고 234일 후.



어느덧 아침저녁으로 찬바람 냄새가 난다. 가을의 문턱이다.


좋은 말로 수능준비생, 실상은 백수에 가까운 나의 신선놀음도 이제는 막바지이다. 찬바람 냄새에 시험이 겨우 두 달 남았다는 사실이 훅 다가온다. 소슬하게 소름이 돋았다. 가슴이 쪼그라든다.


스물아홉살이 된 지금, 나는 하루에 네 시간 이상 공부를 하지 못한다. 10년 전, 열아홉살의 나는 하루종일 열 몇시간을 지독하게 앉아 공부했던 것 같은데. 그 집중력은 전부 어디로 간 것일까?




수능 공부는 하루에 서너시간이면 지쳐 나가떨어지고, 나머지 시간에는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거나 글을 쓴다.


회사를 다니던 때에는 회사에서 온 에너지를 탈탈 털리고 와서, 집에 오면 이불 뒤집어 쓰고 누워있기 급급했다. 물론, 나는 워낙 읽고 쓰는 것을 좋아해서 꾸역꾸역 일기를 썼고, 주말이면 하루종일 카페에 들러붙어 뭔가를 끄적끄적 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내가 읽고 싶은 만큼, 쓰고 싶은 만큼에는 한참 못 미쳤었다.


여하튼, 글을 쓰고 싶어서 회사를 그만둔 것은 아닌데, 일을 그만두고 시간이 넉넉해지니 자연스럽게 다독(多讀), 다작(多作), 다상량(多商量) 하게 된다.


그러면서 교대 진학-선생님이 되는 것 말고 또 다른 꿈이 슬그머니 자리를 잡았다.


글을 쓰자, 그리고 책을 내자.


지금 나는 <나의 똥같은 날들>이라는 제목으로 나의 취업준비부터 퇴사 이후까지의 일기를 연재하고 있다.


브런치를 염두에 두고 쓴 글은 당연히 아니었다. 취업준비를 하던 2013년부터 치면 장장 5년, 누구를 보여줄 것도 아니면서 열심히도 써왔던 일기들이다. 비공개로 티스토리에 차곡차곡 담겨있는 글들을 하나하나 읽어보고 다듬어서 브런치에 포스팅하고 있다. 보잘 것 없는 중얼중얼 독백들일 뿐이지만, 조회수는 별로 높지 않지만 어쨌거나 모아 놓으니 꽤 뿌듯한 기분이다.


대단한 문학작품을 창작할 수 있는 깜냥은 못 되지만, 적어도 나는 내 생각에 대해서 주절주절 글을 쓰는 것은 잘 한다. 그러니 퇴사할 때는 퇴사일기를 쓰고, 결혼할 때는 결혼일기를 쓰고, 육아를 할 때는 육아일기를 쓰고, 선생님이 되면 교사일기를 쓰자.


더불어 겸업 금지인 교사에게 유일하게 허락되는 것이 책을 쓰는 것이니, 여러가지로 안성맞춤이다.




나는 멍청하게도, 하필이면 인생에서 가장 돈이 많이 드는 이벤트 중 하나인 결혼을 앞두고 덜컥 회사를 뛰쳐 나왔다. 결혼을 염두에 두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다만 그 1,2년을 더 참다가는 내가 꼬르륵 질식해버릴 것 같았다. 그런 나를 원망한대도 나는 할 말이 없었을 텐데, 남자친구는 늘 나의 결정을 든든하게 지지해 준다.


돈 이야기를 할 때면 가끔은 남자친구에게 부끄러워진다. 세상 멋있는 척은 혼자 다 하면서 '철장에 갇힌 생활을 거부한다'며 회사를 뛰쳐나왔지만, 여전히 그 철장에서의 안락함이 필요한 때엔 남자친구에게 기댈 수 밖에 없는 삶이다.


자유롭지만 불안정한 현재의 생활. 곰곰이 생각해보니 자유로움은 나 혼자 즐기고 불안정함에 대한 댓가는 남자친구와 나누어 지고 있는 셈이다. 내가 쓰는 만큼은 내가 벌고 있다고 큰소리 쳐보지만, 여전히 내가 가진 것 이상을 은행에서 빌려야 해결이 되는 부분은 오로지 남자친구의 몫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나는 지금의 자유로운 생활이 위선자, 비겁자의 삶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데 남자친구는 반대로 생각해준다. '꿈을 찾겠다'는 허황된 말을 앞세워 부모 돈이든 남편 돈이든 받아내며 놀고 먹는게 아니라, 본인이 본인 생활비 다 벌면서 꿈 비슷한 것에 좀 기웃거리겠다는데 어찌 응원하지 않을 수가 있느냐는 것이다.


하고 싶은 일, 잘 하는 일을 마음껏 하라는 말을 태어나서 처음 들어본 것 같다. 남자친구에게서 이 말을 듣고서 나는 기쁘고 미안하고 고마워서 엉엉 울었다.


남자친구는 "나중에 니가 선생님 되고 책도 내면, 나는 회사 그만두고 셔터맨 할거야!"라는 실없는 농담으로 내 무거운 마음을 가볍게 해준다. 그리고 그 농담을 들은 나는, 정말로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으로 성공해서 남자친구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고 다짐했다.






취준생부터 퇴사 이후 새출발까지, <나의 똥같은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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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0 : D-Day, 회사를 나서다 (☞ 첫 글 보기)
Part 1 : 취업 준비  (☞ 첫 글 보기)
Part 2 : 직장 생활  (☞ 첫 글 보기)
Part 3 : 퇴사 이후  (☞ 첫 글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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