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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autiPo Feb 19. 2018

[Part3] 나는 돈을 팔아서 행복을 샀을 뿐이다.

[Part 3 : 행복하지만 불안한, 퇴사 이후의 삶]

2017.8.17(금) / 회사를 떠나고 210일 후.



네스프레소 캡슐을 사러 백화점에 다녀왔다. 한 층을 내려간 주차장은 만차. 나는 두 개 층을 더 내려간 뒤에야 주차를 할 수 있었다.


예전같으면 사지도 않을 생활용품 코너까지 구석구석 구경하며 두세시간을 훌쩍 보냈을테지만, 나는 서둘러 네스프레소 매장을 향해 직진했다. 나는 백수니까, 계획에 없는 소비를 하고 싶지 않았다.


평일 낮이었는데도 백화점에는 의외로 사람이 많았다.  '세상에 평일 낮에 쇼핑하고 팔자좋은 사람들이 참 많네.'라고 생각했다가 얼른 그 생각을 접었다.


이 사람들 중에는 낮에 쉬고 밤에 일을 하는 교대근무자도 있을 것이고, 나처럼 팔자는 별로 안좋아도(?) 자의 또는 타의에 의해 일을 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종일 육아에 시달리다가 아이가 어린이집에 간 겨우 몇 시간 백화점에서 콧바람을 쐬는 엄마인지도 모른다.


나는 한낮에 백화점에 있는 사람들을 향한 내 생각이 얼마나 편협했는가, 얼마나 출퇴근 사무직 직장인의 시선에 갇혀있었는가를 깨닫고 부끄러웠다.




그 다음으로는 과거의 나 자신에게 왠지 모를 우월감이 들었다. 회사를 다니던 시절의 나는, 점심시간만이라도 그 갑갑한 곳에서 벗어나 한 숨을 돌리고 싶어서, 점심도 거르고 스타벅스에 앉아 책을 읽고 음악을 듣다 들어갔었다. 그랬던 내가 오늘처럼 해가 머리꼭대기에 떠있는 시간에 백화점을 활보하다니. 말할 수 없이 신났다.


그러다가 이내 깨달았다. 나는 백화점에서 쇼핑을 할 수 있는 돈을 팔아서, 백화점에 자유롭게 올 수 있는 여유를 산 것 뿐이라는 걸.




그래, 모든 것을 가질 수는 없다.


나는 오후 세시 동네 카페에 앉아 통유리로 쏟아지는 햇볕을 누리며 이 글을 쓰고 있다.


되면 통장에 꽂히는 돈, 내 삶을 풍족하게 해주던 복지혜택을 포기한 대신, 숨막히는 사무실에 하루종일 앉아 의미없이 마음상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를 얻었다.


(적어도 당분간은)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는 딸래미가 되기를 포기했지만, 대신 가족들에게 더 많은 시간과 마음을 쏟을 수 있는 여유를 사기로 했다.




모든건 trade off 다.


내 이야기를 들은 지인들은 내게 "소신있다" "용기가 멋지다"고 해준다. 그러나 모든 걸 박차고 뛰쳐나온 내가 나을 것도 없고, 회사에 남아 삶을 꾸려가는 그들이 나을 것도 없다.


회사를 그만두기로 한 나의 결단이 "완벽한 행복"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건 한번도 내게도, 그 누구에게도 있었던 적이 없는 것이므로.


그저 내가 무엇을 포기할 수 있는지, 무엇을 가장 얻고 싶은지를 명확히 하고, 그에 따라 삶의 방향을 조정하고, 그리고 나서 후회가 없도록 열심히 충실히 사는 것.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인 것 같다.







취준생부터 퇴사 이후 새출발까지, <나의 똥같은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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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0 : D-Day, 회사를 나서다 (☞ 첫 글 보기)
Part 1 : 취업 준비  (☞ 첫 글 보기)
Part 2 : 직장 생활  (☞ 첫 글 보기)
Part 3 : 퇴사 이후  (☞ 첫 글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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